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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피카소 상속세 4600억원, 작품으로 냈다

입력 2026-10-02 17:42   수정 2026-10-03 00:25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화가로 파블로 피카소를 꼽는 이가 많다. 피카소는 91세까지 살며 3만여 점, 많게는 5만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인류 역사상 자신의 노동만으로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 사람이 피카소라는 평가도 나온다.

피카소의 이름이 붙은 미술관은 파리와 바르셀로나 두 곳에 있다. 작품의 질은 파리 피카소미술관이 압도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바르셀로나에는 유년기와 청년기 습작이 많은 데 비해 파리에는 피카소가 죽을 때까지 팔지 않고 아껴둔 전성기 작품이 대부분 모여 있다.

파리 피카소미술관의 소장품이 이토록 방대하고 뛰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조건> 작가이자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의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 1960년대 말, 프랑스 정부는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뒤 작품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을 걱정했다. 유족이 상속세를 마련하려고 작품을 한꺼번에 내다 팔면 국보급 예술품이 미국 등지로 흘러갈 게 뻔했다. 말로는 정부 예산만으로 작품을 사들이기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현금 대신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게 하는 ‘미술품 물납제도’를 만들었다. 피카소를 겨냥해 ‘피카소법’으로도 불린다.

1973년 피카소가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 정부는 약 2억5000만프랑의 상속세를 부과했다. 지금 가치로 약 3억5000만달러, 원화로 4600억원이 넘는다. 현금으로 상속세를 낼 길이 없던 유족은 작품 수천 점을 통째로 국가에 넘겼다.

2020년 10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했을 당시, 2만3000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미술품 컬렉션이 화제가 됐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부터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 거장의 작품까지 망라했다. 김앤장법률사무소 실사보고서상 감정가는 약 3조원이었고, 상속세 최고세율 50%를 적용하면 미술품에 붙는 세금만 조 단위를 훌쩍 넘었다.

당시 국내에는 물납제도가 없었다. 미술 애호가들은 프랑스처럼 제도를 마련해 컬렉션을 국립미술관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물납이 고액 자산가의 세 부담을 줄여주는 편법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논의가 길어지는 사이 상속세 신고기한이 닥쳤고, 유족은 컬렉션 전체를 국가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컬렉션은 상속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2023년 1월 2일부터 미술품 물납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요건은 까다롭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유산물납심의위원회가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따져 물납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상속재산 중 현금성 자산보다 상속세가 더 많아야 하고, 미술품이 아닌 다른 재산에 매겨진 세금은 원칙적으로 미술품으로 낼 수 없다.

제도가 도입된 지 3년 남짓, 성패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기준은 분명하다. 공정한 감정이다. 재벌가의 소장품일수록 감정가를 부풀려 세금을 줄이려는 유혹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민간 감정, 국가기관 검토, 물납심의위 결정의 3단계 교차 검증 체계를 뒀다.

그래도 허점은 남아 있다. 희귀한 작품은 가치를 아는 전문가가 국내에 몇 명뿐일 수 있고, 이들이 재벌가와 인맥으로 얽혀 있다면 객관적 감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거래 기록이 풍부한 부동산과 달리 미술품은 시가를 정하기 나름이다. 감정에 따라 100억원짜리 그림이 250억원짜리가 될 수 있고, 그 차이는 상속세 수십억원으로 이어진다.

프랑스에서 이 제도가 자리 잡은 힘은 루브르, 오르세 등을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에서 나왔다. 한국의 제도 안착 여부도 위원회의 투명한 운영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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