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도 지금은 시가 산문보다 더 유용할 겁니다. 시가 더 빠르니까요. 모두가 서두르고 있잖아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앤 카슨(76)은 8일(현지시간) 수상 직후 아이슬란드 공영방송 RUV와의 인터뷰에서 시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시는 기본적으로 짧다는 점이 좋다”며 곧바로 “호메로스는 빼고요. 호메로스는 짧지 않으니까”라고 덧붙였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화와 고전을 현대적으로 변주해 온 작가다운 답변이다. 카슨은 고전학자이자 시인으로, 시와 소설, 에세이, 번역, 학술적 글쓰기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고전 전통과 유희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현대문학을 위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고 했다.
정작 카슨 자신은 수상자 선정 소식에 어리둥절해했다. RUV가 소감을 묻자 그는 “미쳤다. 제 생각엔 다들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노벨상 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세상에, 이걸 누가 예상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들은 순간도 소박했다. 그는 레이캬비크 자택 부엌에서 크래커를 먹으며 차를 마시고 <런던 리뷰 오브 북스>(London Review of Books)를 읽고 있었다.
바닥이 지저분해 보여 청소를 하던 중 전화가 계속 걸려 왔지만, 평소처럼 전화를 꺼버렸다고 한다. 남편이 번호를 보고 다시 전화해 보라고 권한 뒤에야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사실을 알게 됐다.
노벨상 수상자 선정이 자신의 작품과 삶에 어떤 의미인지 묻는 말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신 상금을 어떻게 쓸지를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집이 필요한 친구를 돕고, 평소처럼 국경없는의사회에 기부할 생각이라고 했다.
수상을 어떻게 축하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숲으로 산책하러 갈 것”이라며 “그러고 나서 합창단 노래를 들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카슨은 자신의 작가 생활을 ‘의도치 않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항상 다른 무언가를 하려고 시도하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라는 설명이다.
새 독자에게 어떤 작품부터 읽으라고 권하겠느냐는 질문에도 독특한 답을 내놨다. 그는 <빨강의 자서전>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작품이라면서도 “나는 항상 ‘중간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새 작품을 쓸 때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는 질문에도 답은 같았다. “중간부터 시작하는 것. 그게 제가 가진 유일한 규칙이에요.” 작가 지망생에게 해줄 조언을 묻는 말에도 ‘중간부터 시작하라’고 답했다.
노벨상이 독자층을 넓힐 것 같으냐는 RUV의 질문에도 카슨 특유의 유머가 이어졌다. 그는 “책 앞표지에 스티커가 하나 붙겠죠”라고 말했다. “스티커는 도움이 되니까요.”
카슨은 2024년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당시 이 잡지에 투병 전에는 공책에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었지만 "특히 괴롭고, 민망한 증상 중 하나는 글씨체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었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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