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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에서 시장 논리(돈)에 사회적 가치·체제가 지배당하는 세태를 분석했습니다. 교육, 환경, 안보, 스포츠, 사법, 여가, 결혼, 심지어 삶과 죽음까지 그 무엇이든 시장에서 사고파는 세상에서 돈이 유일한 가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돈과 분리되어 있던 가치들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시장사회’의 풍경입니다.
퍼블릭 시어터는 매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무료 셰익스피어 공연을 펼칩니다. 선착순으로 줄을 선 시민들에게 이 특별한 공연을 즐길 기회를 준다는 공공적 가치를 담은 기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숙자나 줄서기 대행업체에 돈을 주고 순번을 구매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공공재를 사고파는 시장이 순식간에 형성되고 지급 능력 있는 자들이 돈으로 이를 취한 것입니다.
줄 서는 비용이 더 크다고 보는 측에서, 최소 비용과 노력으로 그 특별한 공연을 보겠다는 생각에 ‘대리 줄서기’ 용역을 구매한 것인데, 이는 시장 논리상 지극히 합리적 선택입니다. 효율성과 유용성에 따라 선택하는 도구적 이성은 가치나 윤리적 질문을 배제하기 때문입니다.교육의 영역에서도 유사한 사태가 심화하고 있습니다.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고 상생의 바탕이 되는 교육은 공적 가치·사명을 갖습니다. 시장 논리에 따르는 사교육은 이러한 공적 가치·사명을 고려하기 어렵습니다. 지급 능력 있는 자들이 구매하는 교육용역상품의 성격이 강합니다. 한국 사교육시장 규모는 초중고에 한정된 국가데이터처(통계청)의 공식 집계로는 연간 약 30조 원 정도이나, 영유아, 재수생, 공시생 등을 포함하면 50조 원 이상으로도 추산됩니다. 사교육에 투자해 얻은 학력 자본의 가치가 투자금을 넘어서면 개인으로서는 성공한 투자일 것입니다.
도박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팔리는 작품을 써야만 했던 도스토옙스키처럼, 셰익스피어는 극단 경영자로서 흥행을 위해 재미난 희곡을 써야만 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인간 내면으로 깊이 침잠했듯, 셰익스피어도 우울증, 치매, 망상, 사이코패스 등 당대의 의사들이 접근·인식하지 못했던 여러 증상을 지닌 인간군상을 선구적으로 발굴해 역동적 드라마로 펼쳐 냈습니다. 돈의 힘은 탁월한 정신과 재능을 깨우기도 하고 몰락시키기도 했습니다.
디카프리오가 사냥꾼으로 열연했던 영화 <레버넌트>는 미국 로키산맥 일대를 누비며 채취한 모피를 모피상에게 납품해 돈을 벌던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서부 개척 시대 전인 18세기 초, 아직 금광·석유산업의 맛을 볼 수 없었던 미국이 유럽에서의 열렬한 모피 수요에 부응해 모피 무역에 눈을 돌리게 된 상황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눈으로 뒤덮인 웅장한 산맥과 급류, 절벽의 파노라마 속에서 모피에 목숨 건 원주민, 프랑스계와 미국계 사냥꾼들이 경쟁자를 죽이고 동료를 배신하며 처절한 복수극을 펼칩니다. 그런데 이 사냥꾼들은 고용된 피용자들로 그 이면에는 모피 무역을 통해 이윤을 취하는 모피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가 투자받은 돈의 일부가 사냥꾼들에게 지급되며 이에 사냥꾼들은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고자 합니다. 이처럼 이윤이 있는 곳에 금융이 수반되고, 그 돈의 흐름이 인간의 삶과 생사를 규정하게 되는 일은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일상이고, 하버마스, 샌델 등은 이를 분석했던 것입니다.
금융은 점점 더 넓고 촘촘하게 일상적 삶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신용카드사와 결제대행업자 등이 제공하는 금융, 광역의 금융결제망, 고도의 핀테크 기술에 기반한 신용카드·간편결제를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현대인들의 삶 그 자체가 금융시스템과 단단히 결합하여 있습니다. 지급 능력을 상실하면 이 시스템에 결합했던 일상의 삶은 중단되고, 대금 연체로 발생한 빚은 자산유동화를 통해 기초자산에 편입되어 다시 금융상품화가 되기도 하며, 금융에 편승했던 삶은 망가집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영역이 거의 사라지고 있듯, 신용, 신체정보 등도 데이터 자본화, 금융화되는 마당에 ‘금융화할 수 없는 것들’ 역시 거의 없을 듯합니다. 전쟁과 안보에 빅테크 기업과 전쟁용역업체들을 포함한 사적 회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거대한 금융거래와 투자도 수반되면서, 폭력행사의 권능을 국가에만 귀속시키고 그 나머지의 폭력행사를 모조리 불법화했던 근대국가의 규범도 자연스럽게 무너지고 있습니다.사회와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동시킬 잠재력을 보이는 AI 기술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 분류, 계산, 추론, 결정하는 도구적 이성의 능력을 넘어서서 감정적 교류, 멘토링, 의료와 돌봄, 사법의 영역까지 떠맡을 기세입니다. 반면 우리는 학생들의 과제부터 학술 논문까지 AI에 맡겨 정신 능력을 외주화해버리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으며, 인간관계마저도 손익계산 하는 사회적 분위기(이승연, <손절사회>) 속에서 차가운 도구적 이성의 기계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AI 기술, 인프라에 천문학적인 금융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26년 한 해 동안 천조 원을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광범위하고 촘촘한 금융화와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삶과 시스템을 변동시키고 있는 AI 기술과 산업이 막대한 금융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의 함의는 심상치 않습니다.
중세의 봉건사회와 자본주의사회는 상반된 것으로 보이지만, 영주계급의 인클로저(Enclosure)로 토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공장에 들어가 공장주의 지휘, 통제 아래 자본주의적 생산을 수행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가능성과 양 사회의 관련성을 논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 논리가 타당하다면, 역으로 자본주의에서 봉건주의로의 이행도 가능할 것입니다. 무섭게 금융화되어 가며, 거대한 금융투자에 힘입어 인간의 고유성을 대체할 기술과 사업 모델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플랫폼과 데이터를 장악한 빅테크 기업들이 전쟁, 국가안보는 물론 일상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현재 상황은 심상치 않습니다.
금융자본주의의 고도화로 경제(금융)시스템과 사회시스템은 일체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하나만의 충격에도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 사태는 두 시스템 각각에 큰 충격을 줄 만한 것으로, 과연 이 경우 어떤 형태의 사회로 이행될 것인지, 누가 결정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근본 물음을 던지고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위 사냥꾼들과 다를 바 없는 처지일지라도, 우리를 사냥터로 불러들인 로키산맥 너머의 동인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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