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6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해외 초청작으로 초대된 이번 공연은 지난 10일부터 11일까지 단 이틀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열렸다. 지난 7월 2000석 규모의 야외 무대인 아비뇽 교황청 명예의 뜰을 가득 채웠던 작품이 이번에는 500석 규모의 실내 무대에서 관객과 만났다. 거대하고 서늘한 아비뇽의 석조 무대가 선사하던 압도감은 줄었지만, 그만큼 무대 위 배우와 관객이 한층 가까워진 공간이었다.
서울 공연은 석 달 전 아비뇽 무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극의 흐름도, 텅 빈 무대 연출도 똑같았다. 배우 이혜영이 목공 작업 도중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는 '인선' 역을,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고 제주도로 떠나는 '경하' 역을 맡은 점도 같았다. 그런데도 지난 10일 서울 공연이 아비뇽 공연과 전혀 다르게 다가온 이유는 두 주연의 정교해진 호흡에 있었다.
이날 두 배우는 원고에 시선을 고정하기보다 서로의 눈빛과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대사를 주고받았다. 아비뇽 초연 당시 두 배우는 대사의 흐름을 놓치는 것을 우려해 원고를 따라 읽어 내려가는 데 신경을 쏟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거듭된 무대를 거치며 여유를 갖게 된 두 배우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한층 매끄러운 호흡으로 극을 이끌었다.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가 좁혀진 만큼, 두 캐릭터의 유대감도 강화된 느낌이었다.
배우들의 낭독과 연기도 무르익었다. 이혜영은 대사 사이에 나지막한 헛웃음을 짓거나 순간 울컥해 떨리는 목소리로 대사를 이어가는 등 섬세한 완급 조절을 보여줬다. 피아노 연주에 빗대자면 한 프레이즈(악구) 안에 보다 풍성해진 꾸밈음으로 선율의 완성도를 높인 셈이었다. 위페르는 이혜영이 어린 시절 인선의 가출 경험을 이야기할 때 가만히 서 있는 대신 무대 위를 천천히 거닐며 교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두 배우의 작은 손짓과 몸짓이 더해지며 이전보다 깊은 여유와 애틋함이 실렸다.

비극의 맥락을 공유하는 한국 관객들의 몰입도 역시 남달랐다. 아물지 않은 제주의 상처가 전해지는 대목에선 객석 전체가 숨을 죽이고 무대를 응시했다. 위페르의 입을 통해 제주 방언이 서툴게 흘러나올 땐 옅은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아쉬움도 있었다. 아비뇽 공연 말미 서늘하면서도 정갈한 목소리로 극의 여운을 더한 한강 작가의 목소리가 빠진 점이었다. 이번 공연에 참여하지 못한 한강 작가 대신 황주현 학생이 낭독을 이어받았다. 젊은 세대가 역사의 아픔을 직접 기억하고 전달한다는 상징적 의미는 있었지만, 다소 평면적인 내레이션으로 인해 완성도 면에선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마지막 공연에는 박찬욱 영화감독, 박정희 국립극단 예술감독 등 국내 예술계 주요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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