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극장에서 영화를 본 관객 수가 1억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보다 두 달 이상 빠른 속도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 ‘오디세이’ 등 명맥이 끊겼던 ‘천만 영화’가 잇따라 등장해 침체된 극장에 활력을 불어넣은 결과다.
다만 흥행작 개봉 여부에 따라 관객 수가 크게 출렁이는 산업 특성상 올해 반등을 구조적 회복으로 보기 어렵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연간 2억 명이 관람했던 2010년대 극장가 호황이 재현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에다 상업영화 수익성 하락 등 악재가 겹치며 영화관 폐점이 이어지는 등 시장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 1월 1일부터 전날까지 총 누적 극장 관객 수가 1억142만7800여명으로 집계됐다. 한글날 연휴가 시작된 지난 9일 51만 명이 몰리며 1억 명을 돌파한 것으로 파악된다. 12월 21일에서야 누적 1억 명을 넘겼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70일 이상 앞당겼다.
‘1억 관객’은 영화산업 존속을 위한 하한선으로 여겨진다. 안정적인 관객 수요가 대규모 제작비가 소요되는 상업영화 투자를 촉진하는 등 시장의 양적·질적 성장을 이끄는 토대란 점에서다. 가까스로 1억 명 고지를 밟았던 지난해(1억609만) 영화산업 위기론이 대두되자 정부가 중예산영화 제작지원, 영화관 입장 할인권 등 긴급 지원책을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관객 수 반등의 견인차는 상·하반기에 한 편씩 등장한 ‘천만 영화’의 존재감이다. 2월 개봉한 ‘왕사남’이 누적 1693만명을 기록해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에 올랐고, 지난 8월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는 전날까지 1218만명을 동원하며 역대 국내 개봉 외화 매출액 1위에 올랐다. 천만 영화가 한 편도 없었던 지난해보다 이른 시점에 1억명 고지를 밟은 배경이다.
300만~700만명대 ‘중박 영화’가 대거 등장한 것도 관객 증가세를 뒷받침했다. 영화 ‘군체’(595만) ‘호프’(458만) ‘살목지’(324만)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영화가 고르게 흥행했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대박 영화 한두 편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중간 규모의 흥행작이 다수 등장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했다.
영화계는 올해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많은 관객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한다. 역사 왜곡 논란을 빚은 ‘암살자(들)’이 누적 300만명을 넘어서는 등 꾸준히 관객을 모으고 있는 데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둠스데이’와 ‘듄: 파트3’가 연말에 개봉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2020~2021년을 제외한 2022~2025년 연평균 극장 관객 수는 1억1679만 명이다.
다만 올해 반등이 향후 시장 전망까지 밝히는 것은 아니다. 영화계는 관객 수 증가를 회복 국면으로 받아들이는 데 신중한 분위기다. 생산설비, 수주물량을 토대로 업황 사이클을 가늠할 수 있는 제조업과 달리 영화산업은 작품 흥행 성패에 따라 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구조란 점에서다. 올해 상반기 배급사 NEW가 ‘왕사남’으로 역대급 실적을 냈는데도 주가는 뒷걸음질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나타나는 게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올해 천만 영화가 등장했다고 해서 내년에도 같은 수준의 흥행작이 나올 것이란 보장은 없다”며 “‘왕사남’ 역시 당초 이 정도로 흥행할 것으로 예상했던 작품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수년째 시장이 침체하고 신규 제작 편수도 줄어드는 추세라 내년에 흥행작이 나올 가능성은 적다”고 했다.

영화산업 기초체력은 여전히 취약한 상태다. 2019년 4.37회였던 1인당 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지난해 기준 2.08회로 반토막 났다. 2019년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으로 제작된 상업영화 평균 수익률(45편)이 10.93%였던 반면, 지난해에는 31편의 상업영화가 평균 33.13%의 손실률을 기록했다. 업계에서 연간 관객 2억명 시대가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극장업계는 위축된 시장 규모에 맞춰 몸집을 줄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3대 멀티플렉스 체인 수는 415개로 전년 대비 5.5% 감소했다. CGV 판교점과 롯데시네마 부평점이 지난 8월 영업을 종료하고 메가박스 신촌점이 지난달 문을 닫는 등 올해도 수익성 낮은 지점의 구조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한 극장 관계자는 “현재 관람 수요로는 과거처럼 대규모 상영관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며 “객단가 높은 특수상영관 등 프리미엄 공간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재편하는 추세”라고 했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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