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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은행은 왜 같은 돈을 두 번 지급하게 됐나

입력 2026-10-16 09:00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 10월 7일 눈길을 끄는 조정안을 내놓았다. 어머니가 본인 명의 정기예금을 해지하러 창구에 갔는데 직원이 착오로 아들 명의 예금 5000만원을 해지해 어머니 계좌로 보냈고, 어머니는 그 돈을 포함한 현금을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건넨 사건이다. 분조위는 금융회사가 아들에게 원금 5000만원과 만기까지의 약정이자를 지급해야 하고, 돈을 받았던 어머니는 금융회사에 돌려줄 의무가 없다고 보았다.

언뜻 보면 이상한 결론이다. 돈은 이미 창구에서 나가 사기범 손에 들어가 사라졌는데, 금융회사는 5000만원을 다시 내놓아야 하고 그 돈을 받았던 사람에게 돌려받지도 못한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같은 돈을 두 번 내주는 셈이다. 왜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일까.

출발점은 빚을 갚으려면 빚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에게 갚아야 한다는 간단한 원칙이다. 예금은 법적으로 보면 고객이 금융회사에 맡긴 돈을 돌려받을 권리, 곧 채권이다. 아들 명의 예금의 채권자는 아들이므로 금융회사는 아들에게, 또는 아들이 권한을 준 사람에게 돈을 내줘야 빚을 갚은 것이 된다. 아들이 아닌 사람에게 준 돈은 아무리 선의로 지급했더라도 아들에 대한 빚을 없애지 못한다. 창구에서 돈이 나갔다는 사실과 금융회사가 빚을 벗어났다는 사실은 다른 말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민법 제470조는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는 변제자가 선의이며 과실 없는 때에 한하여 효력이 있다’고 정한다. 쉽게 말해 금융회사가 확인 절차를 철저히 거쳤음에도 출금을 요청한 사람이 예금주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면 그 지급은 유효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의 조건은 ‘과실이 없을 때’다. 어머니가 해지를 요청한 것은 본인 예금이었고, 아들 예금을 해지한 것은 직원의 착오였다. 금융회사가 실수했다는 점이 분명하므로 이 예외는 적용되지 않고, 아들의 예금은 해지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렇다면 잘못 받은 돈을 어머니가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민법은 이유 없이 이익을 얻은 사람은 그 이익을 반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계좌에 돈이 들어왔으니 이익을 얻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사기범에게 속아 넘겨준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다가 그대로 인출된 사건에서 다르게 보았다. 계좌에 돈이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사람이 돈을 실제로 쥐고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실질적으로 이익을 얻었다고 볼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11. 9. 8. 선고 2010다37325 판결). 돈이 계좌를 거쳐 그대로 사기범에게 넘어갔을 뿐이라면 그 사람은 통로였지 이익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머니가 돈을 쓰지 않고 그대로 사기범에게 전달했다면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이런 결론이 늘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실무에서 금융회사와 예금주가 지급의 효력을 두고 다투면 금융회사가 이기는 경우가 훨씬 많다. 금융실명제 이후 금융회사는 신분증과 서명으로 본인 확인을 하고 그 기록을 남기므로 실수가 없었다는 점을 비교적 쉽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이 다른 것은 금융회사가 실수를 다툴 여지 자체가 없었다는 데 있다. 또 돈을 거쳐 보낸 사람의 반환 책임은 대법원 판결 가운데 결이 다른 것들이 있어 사건마다 결론이 갈린다. 계좌에 들어온 이상 이익이 있다고 본 판결도 있으므로, 돈을 받은 사람이 그 돈을 어떻게 처분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핵심은 금융회사가 돈을 내줬는가가 아니라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에게 내줬는가이다. 가족 명의 계좌 여러 개를 한 창구에서 한꺼번에 다룰 때 명의인마다 해지 의사를 따로 확인하는 절차가 그래서 필요하다. 사기범에게 간 돈을 되찾는 일보다, 애초에 엉뚱한 사람에게 지급되지 않게 하는 일이 금융회사가 할 수 있는 몫이다.

글 박찬호 법무법인 위온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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