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경제에는 서로 엇갈리는 신호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황에 힘입어 경상수지 흑자는 크게 늘었고, 원화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정작 반도체 기업 주가는 조정을 받고 있다. 수출은 잘되고 달러도 많이 벌어들이는데 왜 내수는 부진하고 주가는 떨어지는가. 이 질문은 올해 노벨경제학상이 던지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올해 노벨경제학상은 로버트 홀과 마이클 우드퍼드에게 돌아갔다. 두 경제학자의 연구를 관통하는 핵심은 경제주체가 현재의 수치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계는 오늘의 소득뿐 아니라 미래의 소득을 고려해 소비를 결정하고, 기업과 금융시장은 현재 이익보다 미래 수익 전망을 바탕으로 투자와 가격을 결정한다.
홀의 통찰은 반도체 호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일시적인 성과급과 지속적인 연봉 인상은 같은 소득 증가가 아니다. 사람들은 일시적인 성과급의 상당액을 저축하지만, 연봉이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면 소비를 더 적극적으로 늘릴 수 있다. 수출과 국민소득이 크게 증가해도 기업과 가계가 그 호황의 지속성을 확신하지 못하면 소비와 국내 투자는 제한적으로만 늘어난다.
최근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매우 크다. 이는 달러를 많이 벌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벌어들인 소득이 국내 소비와 투자에 충분히 사용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민경제에서 경상수지 흑자는 저축이 국내 투자를 초과한 결과다. 따라서 큰 경상수지 흑자를 곧바로 경제 전반의 활력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 호황이 국내 소비, 고용, 투자로 얼마나 확산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물론 이번 호황은 과거와 다를 수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은 반도체 수요를 구조적으로 키우고, 교역조건 개선은 한국의 실질 구매력을 크게 높이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도 반도체 가격 상승에 힘입어 실질 국내총소득이 실질 국내총생산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핵심은 지속성이다. 최근의 반도체 주가 조정은 이 점을 보여준다. 주가는 현재 이익의 성적표가 아니라 미래 이익의 현재 가치다. 지금 실적이 좋아도 중국 기업의 기술 추격, 공급 확대 가능성, AI 투자 수요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 주가는 조정받을 수 있다.
우드퍼드의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통화정책의 효과는 오늘의 금리뿐 아니라 정책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기대에도 좌우된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또한 경상수지와 환율, 주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각 지표가 바라보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은 당장의 수출 실적이나 주가 부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소득을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AI와 반도체 호황의 성과가 대기업과 특정 산업에 머무르지 않고 제조업, 서비스업, 중소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으로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경상수지 흑자 확대에 따른 원화 절상 압력은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에 부담을 줄 수 있으며, 산업 간 경쟁력 불균형은 장기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현재의 지표만으로 미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라고 해서 미래가 자동으로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호황의 진정한 성공은 오늘의 수출액이 아니라 미래 한국 경제의 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지고, 그 과실이 경제 전체에 얼마나 널리 확산하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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