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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쓰면 안 된다고?"…수주 대박 뒤 K원전 '초비상'

입력 2026-10-20 16:24   수정 2026-10-20 16:38


유럽연합(EU)이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불리는 산업가속화법(IAA)을 발효하면 체코 두코바니 원전을 수주한 한국의 ‘테믈린 추가 수주’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IAA가 원전 분야에서도 ‘유럽 역내산’ 부품 조달을 강제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0일 카렐 하블리첵 체코 산업통상부 장관과 제3차 ‘두코바니 이행점검 협의체’ 화상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는 현재 진행 중인 두코바니 원전 사업의 현황을 확인하는 동시에 최근 EU 차원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입법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김 장관은 또 체코 측에 첨단산업 파트너십으로 진화하는 한-체코 관계 속에서 IAA가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체코 정부가 EU 내 외교적 노력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김 장관이 언급한 ‘보호무역주의 입법’이란 EU판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 불리는 IAA를 말한다. IAA는 공공조달, 보조금 지급 등에서 ‘유럽산 우대’와 ‘저탄소 강제’ 요건을 담은 산업정책 법안이다. IAA는 철강·자동차·배터리와 함께 원자력(SMR 포함)을 전략산업으로 묶어, 공공조달과 정부 보조금 지급 시 ‘메이드 인 EU 원산지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논의 중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작년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을 수주하면서, 향후 체코 정부가 테믈린 지역에 추가 원전 2기를 건설하기로 확정할 경우 우선협상권을 받는 확약을 확보했다. 이미 본계약을 체결하고 궤도에 오른 두코바니와 달리, 테믈린 사업이 발주될 경우 IAA 사정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IAA 초안은 집행위원회 안과 각이사회(각국 통상장관 회의) 안, 유럽의회 안 등 3갈래로 마련되고 있다. 최종안이 확정되면 내년 3자(집행위·이사회·의회) 간 비공개 협의를 통해 법안을 조율하고, 표결을 거쳐 발효되는 구조다.

집행위원회 초안에서 EU는 한국에 공공조달 시 EU 내 다른 회원국들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사회안에는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한 신규 원전 건설 시, 일정 개수 이상의 ‘핵심 구성품’을 반드시 EU 역내산으로 조달해야 하는 조건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집행위원회 안에선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거나 WTO 정부조달협정(GPA) 가입국인 경우, 해당 국가의 제품·콘텐츠를 ‘유럽산’과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규정해 두 협정 모두에 해당하는 한국은 원산지 규제를 면제받는 구조였다”며 “그러나 이사회 수정안은 EU가 해당 협정에서 ‘특정 품목’의 조달 시장을 한국에 개방하기로 명시적 약속을 했는지를 따지도록 동등성 지위 범위가 좁아졌다”고 설명했다.

전력과 에너지 등 ‘유틸리티’ 산업의 경우 EU가 정부조달협정의 예외로 적용해 장벽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원자력 핵심 기자재 및 핵연료 관련 기술은 통상협정상 일반 조달 개방 목록에서 제외하거나, 모호하게 규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사회안에선 IAA 발효 후 공사계약 시 유럽산 의무조항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 원전의 경쟁력은 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주기기·보조기기 생태계를 통한 ‘온 타임 온 버짓(공기 내 예산 준수)’에 있다. 원자로 설비, 증기발생기, 터빈발전기 등 핵심 구성품 중 2~3개 이상을 유럽 현지 제조품으로 채워야 한다면, 한국 원전 생태계의 일괄 공급 구조가 깨지고 단가 상승 및 공기 지연 리스크를 감당해야할 수 있다. 바뀐 룰로 테믈린 수주전이 치러진다면 한수원 등은 국내 생태계 대신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 현지 부품사를 강제로 하도급 파트너로 편입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IAA 이사회안 배후에 두코바니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신 프랑스(EDF)와 같은 EU 내 원전 강국의 보호주의 전략이 숨어 있다고 분석한다. 김 장관이 체코 장관에게 적극적인 공조와 외교적 노력, 테믈린 사업에서도 한·체코 간 협력을 당부한 것도 이런 움직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다른 통상 전문가는 “EU가 비공개로 진행하는 3자 협의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원전 및 기자재에 대한 한국산 동등성 인정을 되살리고 테믈린 사업 등에 대한 예외적 경과조치를 확보하는 데 통상외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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