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때를 잘 만나야지만 빛날 수 있다. 시대를 앞선 아이디어는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거나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기술적인 한계, 시장의 미성숙, 혹은 대중의 인식 부족으로 인해 실패한 것처럼 여겨지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위대한 아이디어로 재평가받는 사례는 역사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잠자는 미녀들 (Sleeping Beauties)>은 위대한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할 수 있는지를 흥미진진한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아카데미상, 골든 글로브상, 그래미상 등을 수상한 영화 <마지막 황제>의 OST를 만든 작곡가이자, 공연연출가와 작가 등, 예술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은 어떤 이유로든 사장되어있다가 극적으로 부활한 위대한 아이디어와 인물의 역사를 펼쳐놓는다.
1912년, 독일의 기상학자이자 지구물리학자인 알프레드 베게너(Alfred Wegener)는 과거 지구의 모든 대륙이 하나의 거대한 초대륙을 이루고 있었으며, 이 대륙들이 쪼개져 서로 멀어졌다는 ‘대륙 이동설’을 발표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대륙들의 해안선 일치, 그리고 바다를 두고 멀리 떨어진 두 대륙에서 똑같은 고생물 화석이 발견된다는 점 등, 명백한 증거들을 제시했지만, 학계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주류 지질학자들은 “대륙을 밀어내는 거대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면서 베게너의 이론을 철저히 무시했고, 대륙 이동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해양학 및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발견이 이어졌다. 음파탐지기로 바다 밑바닥을 관찰하면서 해저 지형도가 만들어졌고, 알프레드 베게너가 밝혀내지 못했던 대륙 이동의 원동력이 해저 밑바닥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대륙 이동설은 다시 ‘판 구조론’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책은 “대륙 이동설의 재등장은 때로는 아이디어 자체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 배경’과 ‘인프라’가 성숙하지 않아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라면서, 시대를 앞선 아이디어의 운명에 주목한다.
<잠자는 미녀들>은 한동안 잊혔던 아이디어와 발명이 부활하게 되는 이유를 ‘6가지’로 분석한다. 첫 번째는 ‘옹호자와 대변인의 등장’이다. 안목 있는 누군가에 의해 묻혀버린 아이디어나 예술품이 발굴되는 경우다. 미술 평론가 테오필 토레가 당시 거의 알려지지 않던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모으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재평가한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기술의 진보와 새로운 도구’ 때문이다. 판 구조론으로 부활한 알프레트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이 대표적이다. 세 번째는 ‘우연이나 뜻밖의 발견’이다. 이그나즈 제멜바이스가 주장한 ‘손 씻기’ 처방은 당대 의학계의 반발로 사장됐지만, 훗날 박테리아의 존재와 감염 경로가 밝혀지면서 의학계의 표준 가이드라인으로 부활했다. 이 밖에도 ‘경제적 장벽과 비용의 한계’ 때문에, ‘위기와 대재앙’ 덕분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화적 변혁’으로 인해 잠들었던 아이디어들이 다시 깨어나곤 한다.
기존 질서와 기득권은 새로운 것의 탄생을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잠들어있다가 때를 만나면 다시 깨어난다. 책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주면서, 어딘가에서 깊은 잠에 빠진 미녀를 찾아내 깨울 것을 요구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