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 정책의 핵심 기준은 효율성과 형평성이다.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을 불필요하게 왜곡하지 않으면서 납세 능력에 따라 세 부담을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한국재정학회장)는 한국의 상속세가 이 두 가지를 모두 놓쳤다고 말했다. 높은 세율에도 부의 재분배 효과는 충분하지 않고, 기업은 성장에 쓸 자본을 세금을 피하는 데 쏟으면서 경제 전체의 비효율을 가져온다는 진단이다.
Q. 상속세 논의를 민주당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의미 있는 움직임입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상속세 개편안을 내놓았지만 좌초됐습니다. 당시 중산층 과세 문제와 기업 승계의 안정성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개편 논의가 진행됐고, 사회적 합의에도 이르렀다고 봅니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고 이후 탄핵 정국으로 넘어갔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첫 세법 개정에서는 오히려 대기업을 중심으로 상속세 증세가 이뤄졌습니다. 올해는 가업상속공제의 위력을 사실상 상당히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요. 그런 상황에서 다시 상속세 개편 이야기가 나온 만큼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내용을 보면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뿐 아니라 과표구간까지 손대는 만큼, 법안이 통과하면 30년 만에 처음으로 상속세 현실화에 가까워지는 셈이죠.”
Q. 내년부터 시행될 정부의 가업상속공제 개편은 어떻게 보십니까.
“개편으로 오히려 후퇴했다고 봅니다. 가업상속공제는 지난 10여 년간 정권과 여야를 막론하고 확대해 온, 거의 유일하게 합의된 세제 개편 방향입니다. 이번 정부는 그 흐름을 되돌리고 있습니다. 베이커리나 주차장처럼 일부 업종의 악용 사례가 있다면 해당 문제를 바로잡으면 됩니다. 그런데 업종 변경에 대한 규제나 경영 기간이 크게 늘었습니다. 특히 공제 여부를 법이 아닌 심사위원회의 판단에 맡기는 것은 조세법률주의를 훼손할 우려가 있습니다.”
Q. 업종 변경에 관한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처럼 전기차를 만들다가 로켓 사업에 뛰어든다고 해봅시다. 정부가 ‘전기차 회사가 왜 로켓을 만드느냐. 기존 사업을 유지해야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업을 바꿔야 합니다. 혁신이라는 것 자체가 새로운 사업으로의 전환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업승계 지원의 본질은 기업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고용을 창출하며 법인세를 내고 부가가치를 생산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Q. 한국에서 상속세 현실화가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행 상속세가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부터 봐야 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재벌 기업을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이 크게 투입되던 상황이었죠. 재벌의 책임과 부의 세습 문제가 크게 부각되던 시기에 만들어진 틀입니다. 우리나라 상속세 논의가 다른 나라와 다른 점입니다. 다른나라에서는 상속세를 부의 재분배나 기업의 안정적인 승계라는 관점에서 논의하는데, 우리는 아직까지도 부자 감세나 부의 대물림이라는 낡은 인식으로 바라봅니다. 정부가 개편을 추진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을 느끼는 이유죠.”
Q. 현행 상속세 제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한국은 상속세 최고세율과 실효세율이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4년 전체 조세수입에서 상속·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2.4%로 회원국 중 가장 높습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0.6%에 불과합니다. 다른 나라들이 워낙 적게 걷다 보니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지, 상속세가 부의 재분배라는 본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완화론자들은 높은 상속세가 투자와 성장을 막는다고 하지만, 삼성 같은 기업들은 꾸준히 투자하고 성장했습니다. 강화론자들은 상속세가 불평등을 완화한다고 하지만, 높은 세율에도 양극화는 뚜렷하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양쪽 모두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Q. 더 걷느냐 덜 걷느냐보다 중요한 본질은 무엇입니까.
“과세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높은 세율과 평생 축적한 재산을 사망 시점에 한꺼번에 과세하는 구조는 납세자에게 조세회피를 유도합니다. 현금 재원을 마련하기 힘들거나, 경영권이 흔들릴 위험이 있는 경우 이를 위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투입해야 합니다. 정부도 조세회피를 막기 위해 행정력을 쏟아 붓습니다. 기업이 성장을 위한 투자보다 세금을 줄이는 데 자원을 쏟게 만드는 역설도 발생합니다. 수익성이 높은 사업에 투자해야 할 자본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생산성이 낮은 사업으로 이동하는 것이죠.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대신 세금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결국 납세자가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는 것이 유리한 구조를 만들고, 상속 세율을 낮춰야 조세회피를 줄일 수 있습니다.”
Q. 그런 대안이 있을까요.
“미리 걷고, 실제 상속 시점에는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동안 보수 학자들 사이에서는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세율을 대폭 낮추자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방적인 접근으로는 사회적 합의를 얻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상속세 선납·분리과세 제도’입니다. 기업의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미리 내고, 실제 상속 시점에는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자본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7년에 걸쳐 선납하면, 해당 기업의 주식을 상속할 때 5~10%의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구상입니다. 기업은 주주총회 동의를 거쳐 배당 등을 활용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대주주는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할 수 있고 국가는 미래에 걷힐지 불확실한 세금을 미리 확보할 수 있습니다. 조세회피에 투입되는 자원 낭비도 줄어듭니다.”
Q. 기업의 자본으로 상속세를 미리 낸다면 일반 주주들은 반대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반 주주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를 생각했습니다. 상속세를 선납한 기업의 주식은 누가 보유하든 상속 시 낮은 세율을 적용받도록 하는 겁니다. 이를 '조세 옵션(tax option)'이라고 부릅니다. 상속을 준비하는 자산가들이 이런 주식을 선호하면 새로운 수요가 생기고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기업이 투자에 사용할 자금을 세금으로 미리 납부한다는 부담은 있습니다. 따라서 주주총회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핵심은 대주주와 일반 주주, 정부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유인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경제학적으로는 '유인합치적 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스웨덴이나 호주처럼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하거나 폐지하는 방안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상속세를 폐지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적인 세제 개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스웨덴은 높은 상속세 부담에 따른 기업과 자산가의 해외 이탈, 과세 형평성 논란 등을 겪다가 상속세를 폐지했습니다. 기업 성장과 자산가 유치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과 상속세가 담당하던 세수 확보·재분배 기능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스웨덴은 상속세 폐지 이후에도 상속받은 자산을 처분할 때 자본이득세를 부과합니다. 자산을 처분하기 전까지는 세금을 안 내는 거죠. 스웨덴 산업경제연구소(IFN) 연구진이 2023년 발표한 연구에는 부유층의 자산에 상당한 미실현 자본이익이 포함돼 있어, 이익을 실현할 때만 과세하는 방식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상속세를 폐지하면 기존 상속세가 담당하던 세수 확보와 재분배 기능 문제를 논의해야 합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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