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가 K콘텐츠에 열광하고 있지만 K주얼리의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은 있다. ‘올드하다’고 여겨진 옥반지를 사기 위해 젊은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 종로로 향하고, 궁궐의 조형미는 현대 주얼리의 영감이 된다. 색동과 기와, 전통 문양도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반지와 목걸이로 재탄생하고 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이들이다.

한국의 전통 문양과 장신구는 현대적인 디자인을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다. 1989년 탄생한 국내 대표 파인주얼리 브랜드 골든듀는 2024년 창립 35주년을 맞아 헤리티지 컬렉션을 선보였다. 궁궐의 처마와 한복의 색동을 비롯해 한글의 조형미, 사군자와 조선시대 민화의 문자도, 문살 패턴 등을 유색 보석과 정교한 금속 라인으로 재해석했다. 수십 년 경력의 장인들이 한 점씩 제작하는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희소성도 더했다.
소규모 사업체가 대다수인 국내 주얼리 시장에서 골든듀의 시도는 의미가 크다. 제작 역량과 유통망을 갖춘 브랜드가 한국적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의 색과 문양을 현대적인 하이엔드 주얼리로 발전시키며 K주얼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골든듀가 궁궐과 전통 문양에서 영감을 얻었다면 더단장은 선조들이 몸을 단장하던 장신구에서 오늘의 디자인을 찾는다. ‘전통을 일상으로’를 내세운 더단장은 금속 공예가 최인숙 작가와 아들 류기국 대표의 감각이 만난 브랜드다. 40년 넘게 전통 장신구와 은제 기물, 사극 소품 등을 제작한 어머니의 작업실에서 자란 류 대표가 2018년 설립했다.
대표작은 패랭이꽃과 모란 문양을 투각과 24K 금부 기법으로 표현한 은반지, 비취와 산호를 조합한 가락지 등이다. 목걸이 펜던트를 노리개의 중심 장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도 선보였다. 한복에 달던 장식을 셔츠와 니트에도 어울리도록 재해석한 것이다.

한국적 아름다움을 되살리는 또 다른 축은 전통 공예 기술이다. 오랜 세월 갈고닦은 장인의 솜씨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옛 소재와 기법의 새로운 쓰임을 찾아낸다. 종로의 가원공방은 옥의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중심에는 서울시 무형유산 옥장(玉匠) 보유자 엄익평이 있다. 영국 빅토리아앤드앨버트(V&A) 박물관이 작품 다섯 점을 소장한 장인이다. 1974년 옥공예에 입문한 그는 1999년 문을 연 가원공방에서 옥을 비롯해 호박과 산호 등을 활용한 장신구를 제작해왔다.
딸이자 옥장 이수자인 엄가원 작가는 여기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다. 옥가락지의 옆면 두께를 조정해 착용감을 높이고, 노리개는 일상복에도 어울리도록 작게 제작한다. 특별한 날에만 꺼내던 전통 패물을 일상에서 즐기는 주얼리로 바꾸고 있다.

옥이 깎고 다듬는 기술로 완성된다면 칠보는 불과 색으로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칠보(七寶)는 금속 위에 유리질 유약을 올리고 고온에서 구워 색과 광택을 내는 공예 기법이다. 해외 주얼리에서는 에나멜(enamel)로 친숙하다. 37년 넘게 칠보 작업을 해온 김인자 작가는 전통적인 금속 테두리의 틀에서 벗어나 색을 더한 섬세한 주얼리를 완성한다.
대표작인 나비 목걸이와 귀걸이는 두께 0.1㎜의 은판을 직접 오려 칠보 유약을 입히고 구운 뒤 큐빅을 세팅한 작품이다. 한복의 마고자 단추를 모티브로 한 브로치는 동판을 성형하고 여러 차례 구워 색을 완성했다. 옥과 칠보라는 서로 다른 재료를 다루지만 두 공방이 추구하는 방향은 닮았다. 전통 기술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에도 착용하고 싶은 주얼리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옛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유한 아름다움에 정교한 기술과 현대적인 디자인, 시간이 지나도 손이 가는 매력이 더해져야 한다. 궁궐의 선과 색동의 빛깔, 정갈한 옥, 옛 장신구의 낭만, 불 속에서 완성되는 칠보의 색까지. 한국의 전통은 이제 박물관에 보존된 유산을 넘어 오늘날 몸에 걸치고 즐기는 주얼리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다.
민은미 Wave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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