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집값과 자산시장은 여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앞선 세대가 걸어온 삶의 공식도 희미해졌습니다.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지금 이 기사를 읽는 우리는 그 어느 세대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연금은 더 이상 은퇴를 앞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연금 빌드업>은 가장 긴 투자, 연금을 처음부터 배우고 차근차근 쌓아가기 위한 기록입니다. [편집자주]
퇴직연금도 '갈아타기' 시대다. 보유 상품을 팔지 않고 금융회사를 바꾸는 실물이전 서비스가 시행 2주년을 앞둔 가운데, 올해 상반기 이전 규모는 1년 전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ETF·펀드 투자 선택지를 넓혀 노후자금을 더 불리려는 수요가 움직이고 있다. 다만 증시가 출렁이는 요즘, '옮기면 더 벌겠지'라는 기대만으로 연금을 옮기기 전 따져볼 게 있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퇴직연금 실물이전 금액은 6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3조2000억원의 두 배를 웃돌았다. 서비스가 시작된 2024년 10월 말부터 올해 6월 말까지 누적 이전 금액은 15조9000억원이다.
실물이전은 기존에 운용하던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퇴직연금 사업자를 바꾸는 서비스다. 이달 말이면 시행 2년을 맞는다. 이전에는 금융사를 바꾸려면 상품을 현금화해야 해 예금 중도해지에 따른 이자 손실이나 펀드 환매 후 재매수까지 투자 공백이 발생할 수 있었다. 실물이전은 이러한 부담을 줄여 가입자의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 도입됐다.
은행서 증권사로 5.2조…투자 선택지 찾아 이동
연금 이동의 중심에는 '은행에서 증권사로' 향하는 흐름이 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후 현재까지 실물이전으로 들어온 퇴직연금만 2조원을 넘어섰다. 전체 금융권에서는 서비스 개시 이후 올해 6월 말까지 은행에서 증권사로 5조2000억원어치가 이동했다. 은행에서 다른 은행으로 옮긴 금액인 4조5000억원보다 많았다.한 증권사 관계자는 "ETF·펀드·채권 등으로 투자 대상을 넓혀 수익률을 높이거나 수수료 부담을 줄이려는 가입자들이 은행에서 증권사로 이동하고 있다"며 "최근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보유 상품을 팔지 않고 옮길 수 있는지 묻는 상담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산을 분산하거나 직접 매매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자산배분·리밸런싱 문의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증권사로 옮기면 연금 수익률도 높아질까.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의 올해 3분기 말 공시를 토대로 원리금비보장 상품의 사업자별 수익률을 단순평균한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개인형 IRP는 은행이 21.44%로 증권사(15.24%)보다 평균 수익률이 높았다. DC형도 은행 18.46%, 증권사 16.22%였다.
다만 이는 금융사별 수익률을 더해 회사 수로 나눈 단순평균이다. 적립금이 적은 금융사와 많은 금융사를 같은 비중으로 계산해, 각 업권에 맡겨진 전체 연금자금의 수익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옮기기 전 상품·수수료 확인…옮긴 뒤엔 장기·분산투자
결국 중요한 것은 계좌를 어디에 두느냐뿐 아니라 어떤 상품에 얼마나 투자하느냐다. 과거 수익률이 높은 금융사로 옮겨도 자신이 다른 상품을 사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이 투자하려는 ETF·펀드를 살 수 있는지, 상품 선택과 관리를 도와주는 서비스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보유 상품을 팔지 않고 옮길 수 있는지는 '실물이전 사전조회'로 알아볼 수 있다. 현재 가입한 금융사의 홈페이지나 앱에서 옮기려는 금융사를 선택해 조회하면 된다. 이후 이전을 결정하면 새 계좌를 만들고 이전 신청을 별도로 해야 한다.
수수료도 따져봐야 한다. 같은 금융사라도 앱으로 만든 계좌인지, 영업점에서 만든 계좌인지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 KB증권은 비대면 IRP의 운용·자산관리 수수료를 면제한다. 미래에셋증권도 비대면 다이렉트 IRP는 해당 수수료가 무료지만, 일반 영업점 관리 계좌는 개설 방식과 납입한 돈의 종류에 따라 조건이 다르다. 계좌 관리 수수료가 무료여도 펀드·ETF 자체에 붙는 보수와 비용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사를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투자 원칙을 세우고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라며 "단기 수익률보다 은퇴까지 남은 기간과 위험 감수 능력에 맞춰 분산투자하고,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안전자산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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