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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소송 법정에서 필자는 납세자 쪽에 앉기도 하고, 세무서 쪽에 앉기도 한다. 국세청 송무국에서 소송을 지휘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과세관청을 대리해 온 사건도 적지 않다. 그런데 과세관청 쪽에서 거둔 승소사건을 돌아보면, 상당수는 과세 논리가 탁월해서라기보다 납세자가 스스로 무너진 경우였다.
반대편 대리인석에서 보면 분명히 보인다. 납세자의 패소는 판결 선고일이 아니라 훨씬 앞에서, 대개는 세무조사 첫 주에 이미 결정된다. 법리에서 지기보다 절차와 증거를 다루는 습관에서 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상대편에서 지켜본, 납세자가 반복하는 네 가지 패착을 짚어본다.
막바지에 서명한 '확인서' 한 장이 판결을 좌우
과세관청 대리인이 소송에서 가장 먼저 꺼내는 서류는 조사 과정에서 받아둔 확인서와 문답서다. 조사 종결을 앞두고 "일단 서명하고 나중에 다투자"는 판단으로 사인한 그 한 장이, 법정에서는 납세자 본인이 사실관계를 인정한 증거로 등장한다. 대법원은 확인서가 작성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작성됐거나 내용이 부실해 입증자료로 삼기 어렵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증거가치를 쉽게 부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두13378 판결 등).
이 사건에서 납세자는 확인서에 관한 판례를 바꿔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사 분위기에 눌려 서명했다"는 사정을 몇 년 뒤 법정에서 구체적으로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확인서는 조사관이 작성하지만, 그 문구는 협상의 대상이다. 서명 전에 사실과 다른 표현이나 '가공', '사적 사용', '은닉'처럼 평가가 담긴 표현은 수정을 요청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견을 별지로 남겨야 한다. 소송의 첫 서면은 사실상 이때 쓰인다.
조사·심판·소송, 단계마다 달라지는 이야기
조사 단계에서는 '대여금'이라 했다가, 조세심판원에서는 '용역 대가'가 되고, 소송에 와서는 '공동사업 정산금'이 된다. 대리인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법리가 덧붙여지면서 생기는 일이다.
조세소송은 처분의 위법성을 다투는 절차여서 사실심 변론종결 때까지 새로운 주장을 내는 것 자체는 허용된다.
문제는 신빙성이다. 과세관청 대리인은 납세자의 과거 진술을 시간 순으로 표 하나에 정리해 재판부에 내미는 것만으로 반박의 상당 부분을 끝낸다. "그때는 왜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설득력 있게 답하는 납세자는 드물다. 좋은 불복은 처음부터 하나의 사실관계 위에 서 있다. 과세전적부심사 청구서를 쓸 때부터 소송의 마지막 준비서면까지 내다봐야 하는 이유다.
"입증은 국세청 몫"이라는 착각

과세요건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과세관청에 있다. 많은 납세자가 이 원칙에서 생각을 멈춘다. 그러나 법정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규칙은 한 줄 더 있다. 과세관청이 경험칙상 과세요건이 추정될 만한 사실을 밝히면, 납세자가 그 사실에 경험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사정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과세처분을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다(대법원 1998. 7. 10. 선고 97누13894 판결 등).
법인 계좌에서 대표이사 개인 계좌로 거액이 반복 이체된 내역이 드러났다면, 그것이 정당한 대여나 비용 정산이라는 점은 납세자가 증빙으로 보여야 한다. 필요경비나 비과세·감면 요건처럼 애초에 납세자에게 증명책임이 있는 영역도 넓다. 과세관청 대리인에게 가장 편한 사건은 납세자가 "국세청이 증명하지 못했다"는 말만 반복하는 사건이고, 가장 부담스러운 사건은 계약서·이체 내역·당시 이메일을 시간 순으로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제출하는 사건이다. 증명책임의 원칙은 방패가 아니라 출발점일 뿐이다.
'실질과세'라는 양날의 검
"형식은 그렇지만 실질은 다르다"는 주장은 납세자가 즐겨 쓰는 논리다. 명의는 자녀지만 실제로는 부모 재산이었다거나, 계약서상 매매지만 실질은 담보였다는 식이다.
그러나 실질과세 원칙은 본래 과세관청이 납세자가 갖춘 형식을 걷어내기 위해 쓰는 도구에 가깝다. 법원은 납세자가 스스로 선택한 거래 형식을 원칙적으로 존중하며, 그와 다른 실질을 납세자가 주장할 때는 엄격한 입증을 요구한다. 계약서와 등기, 신고서를 자기 손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더 큰 위험은 그 다음이다. 실질을 주장하는 순간 다른 쟁점의 문이 열린다. 명의와 실질이 달랐다고 인정하면 명의신탁 증여의제 등 새로운 과세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 실질 주장은 그것이 받아들여졌을 때 무엇이 따라오는지까지 계산한 뒤에 꺼내야 한다.
소송은 조사 첫날 이미 시작된다
네 가지 패착은 모두 소송이 시작되기 전에 벌어진다. 확인서는 조사 현장에서, 주장의 뼈대는 과세전적부심사에서, 증빙의 공백은 거래 당시에 이미 만들어진다. 법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때 놓인 재료를 정리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소송 대리인은 소송 때 찾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현실에서는 세무조사 대응과 소송 대리가 서로 다른 사람에게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앞서 본 패착들은 대부분 바로 그 이음매에서 생긴다. 조사 현장에서 확인서 한 줄을 고칠 때 그 문장이 몇 년 뒤 법정에서 어떻게 읽힐지 아는 사람, 과세관청이 사건을 만드는 과정과 법정에서 지켜내는 과정을 모두 겪어본 사람이 처음부터 곁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반대편 대리인석에 앉아 본 사람이 납세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상대가 꺼낼 카드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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