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핵추진잠수함 보유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해군의 활동 범위가 서태평양으로 확대되면서 장기간 고속 잠항이 가능한 핵추진잠수함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해군 관계자와 싱크탱크에서도 일본의 보유가 대중국 억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일본 내부에서는 막대한 비용과 법적 제약, 군사적 효용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건조 승인을 확보한 데 이어 특별법 제정과 구체적인 전력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 움직임이 동아시아 해양 안보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미국에서도 긍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 해군 고위관계자는 지난 9월 일본이 핵추진잠수함 보유를 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미국기업연구소(AEI)도 같은 달 보고서에서 일본이 핵추진잠수함을 확보하면 “중국 해군의 확장과 현대화에 맞서는 데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수심이 깊은 남중국해를 잠수함 운용 거점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중국 잠수함이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할 가능성이 있어 미군의 감시·초계 활동도 중요해지고 있다. 일본이 핵추진잠수함을 확보하면 이런 미군의 활동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추진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보다 오랜 기간 고속으로 잠항할 수 있다. 먼 해역으로 신속하게 이동하거나 작전 구역을 변경하고, 임무 수행 후 위험 해역에서 빠져나오는 데 유리하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브렌트 새들러 선임연구원은 일본이 요코스카 기지를 거점으로 핵추진잠수함을 운용하면 남중국해에서 수중 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이 79일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디젤잠수함의 4.6배다. 대만해협과 필리핀해에서도 활동 기간이 각각 2.4배로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일본이 이미 첨단 재래식 잠수함 함대를 운용하고 있다는 점도 쟁점이다. 재래식 잠수함은 장시간 고속 잠항에 한계가 있지만 일본 남서부 도서 주변의 해상 요충지에서 저속으로 은밀하게 움직이며 매복 작전을 수행하는 데 강점이 있다.

미국 허드슨연구소의 무라노 마사시 연구원 등 5명이 지난 6월 발표한 연구는 비슷한 예산으로 일본이 핵추진 공격잠수함(SSN) 6척 또는 대형 재래식 미사일 잠수함 10척을 확보·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어느 쪽을 택하든 기존 재래식 잠수함 22척을 보완하는 구상이다.
무라노 연구원은 핵 추진이 작전 범위를 넓혀주지만 잠수함 한 척으로 광활한 태평양 전역에서 중국 잠수함을 수색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해역의 작전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부터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랜드연구소의 제프리 호르눙 일본 담당 책임자도 재래식 잠수함과 수중 드론, 첨단 기뢰로 전력 공백을 메울 수 있다면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신중하게 판단할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원자로 기술과 연료를 어떻게 확보할지도 불확실하다. 일본은 자체 추진체계를 개발하거나 미국·프랑스 등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 미국의 핵추진잠수함은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반면 프랑스는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한다.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 기술 확보와 핵 비확산 관련 쟁점도 달라질 수 있다.
전용 건조·정비시설과 독립적인 안전 규제·감독 체계도 필요하다. 인력 부담 역시 크다. 미국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은 승조원이 약 140명으로 일본 다이게이급 잠수함의 약 두 배다. 운용 인력뿐 아니라 원자로 관리와 유지·보수를 담당할 전문가도 양성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금 개발에 착수하더라도 일본의 첫 핵추진잠수함 실전 배치까지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현실적인 배치 시점으로는 2030년대 후반이나 2040년대를 제시했다.

한국은 일본보다 사업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핵추진잠수함용 연료 공급을 요청했다. 이후 미국은 한국의 핵추진 공격잠수함 건조를 승인했으며, 같은 해 11월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도 이를 명시했다. 다만 연료 조달 방안은 후속 협력 사안으로 남겼다.
국내에서는 사업 추진을 뒷받침할 법적 기반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9월 29일 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핵추진잠수함 등의 획득·운영 및 안전관리 등 핵추진잠수함 사업에 관한 특별법’을 심의·의결했다. 정부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연내 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특별법은 핵추진잠수함의 획득·운영에 관한 특례와 원자력 안전관리 규정을 함께 담았다. 무기체계와 원자력 기술이 결합하는 사업인 만큼 방위사업법과 원자력안전법 등에 흩어진 규정을 아우르겠다는 취지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장보고 N사업’은 2030년대 중반 선도함 진수, 2030년대 후반 전력화를 목표로 한다. 보유 타당성에 관한 조사·연구를 검토하는 일본과 달리 건조·운영을 위한 제도와 일정 마련에 들어간 것이다. 다만 미국과의 핵연료 공급 협의 등 실제 사업 추진을 위한 과제는 남아 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