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예산 삭감과 치솟는 생활비 등에 반발한 유럽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독일에서는 청년단체 주도로 30여개 도시에서 시위가 열렸다. 일부 지역에선 경찰을 향한 화염병 투척과 상점 약탈 등 폭력 사태로 번졌다. 프랑스에서도 청년들의 대규모 시위가 3주째 이어지는 등 유럽 곳곳에서 사회적 불만이 분출하고 있다.
유럽 경제의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가 흔들리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장기 경기 부진에 고용시장마저 얼어붙었다. 10월 계절조정 실업자 수는 전월보다 1만4000명 늘어난 301만6000명으로, 2011년 3월 이후 15년 6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2분기 기준 국가채무는 2조7534억유로로 국내총생산(GDP)의 63.4%에 달했다.
프랑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올해 2분기 국가채무는 3조5955억유로로 불어났고 GDP 대비 비율은 119%까지 치솟았다. 재정적자 감축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까지 겹치면서 금융시장의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프랑스 10년물 국채금리는 10월 장중 5.14%까지 올라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 국채와의 금리 차도 10월 22일 177.7bp(1bp=0.01%포인트)까지 벌어져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이후 가장 큰 수준으로 확대됐다. 투자자들이 독일 국채보다 프랑스 국채를 보유하는 데 더 큰 위험을 느끼고, 그만큼 높은 이자를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달 3일에도 프랑스 10년물 금리는 4.94%대, 독일과의 금리 차는 161.8bp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문제는 프랑스의 재정 불안이 다른 유로존 국가로 번질 가능성이다. 특히 이탈리아가 취약국으로 지목된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OE)는 프랑스 국채시장의 혼란이 주변국으로 확산할 경우 이탈리아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저성장과 높은 국가채무에 시달리는 이탈리아는 금리 상승 등 금융 여건 악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OE는 프랑스와 독일의 10년물 국채금리 격차가 250bp까지 확대되는 중간 시나리오와 400bp까지 벌어지는 심각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심각한 상황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2027년 경기 침체에 빠지고 벨기에 등 다른 국가도 차입 비용 상승 압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CE) 역시 프랑스의 금리 격차가 400bp까지 벌어지는 상황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유럽 재정 불안이 주변국으로 퍼지면 한국 증시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유로존 주요국의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수록 글로벌 투자자들의 위험자산 회피 성향이 강해지고, 국내 증시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 경기 둔화가 장기화하면 자동차와 배터리 등 현지 시장 비중이 높은 국내 수출기업의 실적에도 부하가 걸릴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실 하나은행 골드클럽올림픽선수촌PB센터지점 GOLD PB팀장은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글로벌 자금 흐름에도 민감하다”면서 “유로화 약세로 인한 달러 강세가 원화 약세로 이어져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주식 매도 압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유럽의 재정 불안이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프랑스 재정 문제는 최근 새롭게 불거진 악재가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된 구조적 문제인 데다 유럽 내부에서 해결책을 모색할 여지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지점장은 “프랑스의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려면 연금 개혁이나 긴축이 필요하지만, 정치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선택이라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유럽 재정위기 당시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스페인 등 이른바 ‘PIIGS’ 국가의 위기를 유럽 차원에서 수습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유럽 내에서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박 PB는 “미국이 중간선거를 거치며 의회의 권력 구도가 달라졌다”며 “유럽의 정치적 변화도 국제 정세와 재정 문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프랑스가 실제로 국가 재정 위기에 빠져 유럽 금융시장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한다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상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장기적인 원화 강세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수출 호조로 외국인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고 기업들의 설비투자와 배당, 자사주 매입 등으로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수요도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PB는 “달러인덱스에서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웃돌아 유로화 약세는 상대적인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며 “유럽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원·달러 환율이 1320원 초반까지 더 빠르게 내려왔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하락세를 이어가고 내년 상반기에는 1300원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원화 강세가 외국인투자자에게 반드시 부정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박 PB는 “환율이 안정되면 국내 주식 투자로 얻는 수익에 더해 환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어 외국인투자자에게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또 “원유 등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은 원화 강세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원화 강세가 모든 수출기업에 호재인 것은 아니다. 반도체처럼 가격보다 공급 능력이 중요한 업종은 환율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자동차와 화장품 등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업종은 원화 환산 매출과 수익성이 줄어들 수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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