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과 싱가포르가 아시아 금융 중심지의 주도권을 놓고 세제 경쟁에 나섰다. 홍콩이 글로벌 헤지펀드와 자산운용사를 유치하기 위해 투자 수익과 성과보수에 대한 세금 감면을 추진하자 싱가포르도 유사한 면세 정책을 내놓으며 맞불을 놨다.
양측의 경쟁은 글로벌 자본과 금융 전문인력 확보에서 금 보관·거래 인프라 구축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미국 퀀트 트레이딩 업체 제인스트리트와 헤지펀드 운용사 포인트72, 영국 큐브리서치앤드테크놀로지스(QRT) 등이 대규모 사무실 임대계약을 체결했다. 제인스트리트는 6개 층을 확보했고 포인트72는 7개 층으로 임차 면적을 확대했다. QRT도 국제금융센터(IFC) 빌딩 6개 층을 임차하기로 했다. 일본과 호주의 금융 거래팀들도 홍콩 이전에 따른 세금 부담과 비용을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서비스업체 존스랑라살(JLL)에 따르면 올 9월 말 홍콩 센트럴의 A급 오피스 공실률은 7.2%까지 떨어졌다. 최고급 오피스 임대료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홍콩 정부는 올 6월 펀드와 패밀리오피스의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연말까지 입법 절차를 마무리하고 2025~2026 과세연도부터 적용한다는 목표다.
핵심은 기존 적격 펀드의 투자 수익에 적용하던 16.5%의 법인세 면제 범위를 확대하고 펀드 운용 성과에 따라 지급하는 성과보수인 캐리드인터레스트의 면세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주로 사모펀드(PE)와 벤처캐피털(VC)의 투자 성과보수에 세제 혜택이 적용됐다. 개정안은 적격 헤지펀드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힌다. 투자 대상도 신용·채권·디지털자산·원자재·탄소배출권·해외 부동산 등으로 확대한다. 국부펀드와 연기금, 대학 등의 기부금 운용기금도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성과보수 지급 구조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점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는 홍콩의 인가받은 운용사를 거쳐 직원에게 성과보수가 지급돼야 면세 혜택을 받기 쉬웠다.

앞으로는 해외 계열사 등을 통한 지급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인정한다. 여러 국가에 투자팀을 두고 있는 글로벌 운용사의 실제 운영 방식에 맞춰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다.
허룬헝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중국 남부지역 세무 담당 파트너는 "해외 고객 상당수가 홍콩의 펀드 세제 개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특히 성과보수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헤지펀드의 기대가 크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는 세제 혜택과 함께 헤지펀드 투자 프로그램도 신설한다. 현지에 진출하거나 사업을 확대하는 헤지펀드 운용사와 투자 협력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5년짜리 원패스 비자에도 투자운용 전문가 부문을 추가할 계획이다.
양측이 세금을 포기하면서까지 운용사 유치에 나서는 건 금융산업 전반의 파급효과 때문이다. 운용사가 이전하면 펀드 매니저뿐 아니라 법률·회계·감사·수탁·금융 서비스 수요가 함께 늘어난다.
홍콩에는 이미 2000개 이상의 유한합자펀드(LPF)가 설립돼 있다. 펀드 등록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률 서비스 수입만 수천만홍콩달러에 달하고 연간 회계감사 수요도 1억홍콩달러를 웃돈다는 게 현지 업계의 설명이다.
자산관리 시장의 판도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홍콩의 지난해 역외자산 관리 규모는 2조9000억달러(약 3948조원)로 스위스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싱가포르도 글로벌 자산가들의 자금 유입에 힘입어 세계 3위 자리를 차지했다.
양측의 경쟁은 금 보관·수탁과 거래 인프라로도 확산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면서 중앙은행과 글로벌 투자자들이 금 보관 지역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에 대응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홍콩이 중국 본토와 연결된 자본시장·역외 위안화 거래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데 비해 싱가포르는 외환·원자재 거래와 글로벌 자산가들의 자산관리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운용사 중에서는 아예 두 금융 중심지에 동시에 거점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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