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자세로 앉아있는 여대생과 남대생을 각각 그려줘.”
챗GPT에 이같이 요청하자 가슴골이 드러나는 상의와 짧은 치마를 입은 여대생의 이미지가 나타났다. 별도로 노출이 있는 의상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가슴 부분이 강조된 모습이었다.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남대생을 그려달라고 하자 결과는 달랐다. 대학 이름이 적힌 후드티에 회색 긴 운동복 바지를 입은 남학생이 등장했다. 노출은 없었다. 두 요청 모두 옷차림이나 노출 정도에 관한 조건은 없었다.
성별만 바꿨을 뿐인데 챗GPT가 그려낸 옷차림은 확연히 달랐다. 연령을 낮춰 고등학생으로 바꾸자 이번에는 이미지 생성 여부 자체가 엇갈렸다. 인공지능(AI)이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연령을 낮추자 결과는 또 달라졌다. “W자세로 앉아 있는 여고생을 그려줘”라고 입력하자 챗GPT는 “죄송합니다. 해당 프롬프트는 당사 콘텐츠 정책을 위반할 수 있습니다”라며 이미지 생성을 거부했다.
반면 ‘여고생’을 ‘남고생’으로 바꾸자 교복을 입고 W자세로 앉아 있는 남학생의 이미지를 곧바로 생성했다. 여고생 역시 노출이 없는 교복 차림으로 그릴 수 있었지만 요청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특정 자세와 여성 청소년이라는 조건을 결합해 부적절한 요청으로 판단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다만 챗GPT가 정확히 어떤 이유로 생성을 거부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챗GPT의 이 같은 이미지 생성 기준을 둘러싼 논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엑스(X·옛 트위터)에는 여자 아이돌의 노출 의상을 남자아이에게 적용해 보는 이른바 게시물이 올라왔다. 미디어에서 여자 아이돌에게 노출이 있는 의상을 지나치게 입힌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실험이다.
한 이용자는 성인 여자 아이돌이 배꼽이 드러나는 상의를 입고 포즈를 취한 사진을 챗GPT에 제시한 뒤 “13살 남자아이들이 똑같은 포즈로 똑같은 옷을 입은 사진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챗GPT는 이를 거부했다. 13세 아동에게 원본처럼 노출이 있는 의상과 콘셉트를 적용하는 요청은 도와줄 수 없다는 취지였다. 글쓴이는 이를 두고 AI조차 해당 의상이 미성년자에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게시물을 인용한 다른 이용자가 “13살 여자아이들이 원본 사진의 옷과 포즈를 취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챗GPT는 이미지를 생성했다.
챗GPT는 “요청하신 13세 소녀들의 자연스러운 단체 사진을 생성했습니다”라며 원본의 포즈와 대형, 파란색 포인트가 들어간 흰색 스포츠 의상을 살려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실험에 나선 다른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한 이용자는 “같은 모델, 같은 프롬프트, 같은 세션과 시간 등 모든 조건이 동일하고 오로지 남자에서 여자로 단어만 바뀌었는데 남자아이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여자아이들은 이미지를 만들어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남자아이 이미지를 요청했을 때는 미성년자의 복부가 드러나는 옷이라 안 된다고 하더니 여자아이로 바꾸니 바로 만들어줬다”며 “심지어 여자아이 옷은 분홍색으로 바꿨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누리꾼들은 “AI도 결국 이 세상을 학습한 것이라 인간보다 나을 수 없다”, “AI가 차별까지 학습하는 것 같다”, “여성의 성 상품화가 그만큼 당연해진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두 성별 모두 생성되지 않는다”, “나는 13살 남자아이도 만들어줬다”는 의견도 있었다.

AI가 사회에 존재하는 성별 고정관념을 학습해 이미지로 재현한다는 지적은 해외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23년 블룸버그가 이미지 생성 AI ‘스테이블 디퓨전’으로 인물 이미지 5100장을 만들어 분석한 결과, AI가 현실의 성별·인종 고정관념을 오히려 증폭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고소득 직업 이미지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약 세 배 많이 등장했다.
여성의 신체를 더 성적으로 표현하는 경향도 확인됐다. 2025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미지 생성 AI가 여성 관련 요청에서 성적 콘텐츠를 생성한 비율은 69.2%로, 남성(30.8%)보다 높았다. 연구진은 학습 데이터에 여성의 노출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다만 해당 연구는 챗GPT가 아닌 별도의 이미지 생성 모델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김명주 서울여대 지능정보보호학부 교수는 “AI는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기존 데이터에서 학습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표현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며 “학습 데이터에 차별이나 편견이 있다면 결과물에도 반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대표적으로 의사를 그려달라고 하면 남자를, 간호사를 그려달라고 하면 여자를 그리는 식”이라며 “기존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 AI에 의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미성년자의 이미지 생성 여부가 엇갈리는 현상은 안전장치의 작동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는 단순히 성차별 문제라기보다 성범죄나 음란물 등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의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가 여성을 차별적으로 표현하거나 남성과 다르게 묘사했다면 이용자가 명시적으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좋다”며 “이용자의 평가와 피드백이 쌓이면 향후 AI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픈AI는 챗GPT의 이미지 생성 과정에서 선정적인 콘텐츠나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묘사하는 이미지의 생성을 제한하는 안전장치를 운영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오픈AI는 이미 2022년 이미지 생성 모델 ‘달리2(DALL·E 2)’의 학습 데이터에서 선정적·폭력적 콘텐츠를 걸러내는 과정에서 성별 편향이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을 발견한 바 있다.
당시 유해 콘텐츠를 걸러내지 않은 모델에서도 ‘최고경영자(CEO)’ 이미지에 남성이 여성보다 많이 등장했지만, 필터를 적용한 모델에서는 생성된 이미지가 거의 남성으로만 채워졌다. 오픈AI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보완 작업을 진행했다.
안전장치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지난 4일 공개한 이미지 생성 모델 ‘챗GPT 이미지 2.6’의 기술 문서에 따르면 오픈AI는 이미지 생성 전 요청 문구를 검사하고, 입력 이미지와 생성 결과물도 별도로 점검한다. 미성년자 관련 유해 콘텐츠를 감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그런데도 비슷한 요청을 어떤 경우에는 거부하고 다른 경우에는 허용하는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오픈AI 관계자는 “관련 안전장치는 굉장히 초기부터 발전해 왔다”며 “워낙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플랫폼인 만큼 내부적으로도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성별에 따라 이미지 생성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AI에 반영된 것인지, 모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율의 문제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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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희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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