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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품의 가치의 원천과 상품 설계의 방식 [양동운의 금융 관찰기]

입력 2026-11-08 16:19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재화나 용역을 생산, 소비, 분배하는 활동을 경제활동이라 합니다. 경제활동 중에 여유 물자나 돈이 수요자로 유입되었다가 공급자에게 반환되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바로 금융(finance) 현상입니다. 이를 포착해 상품화한 것이 바로 주식, 채권, 펀드 등의 금융상품입니다. 이 금융상품들을 매개로 자금이 흘러 사람과 실물과 경제를 활발히 움직입니다.

금융상품도 상품이라 불리지만 다 같은 상품은 아닙니다. 금융상품은 그 자체를 직접 소비해 만족을 얻는 재화와 다릅니다.

즉, 쌀, 생선, 석유 등의 상품(재화)은 사용가치(쓸모)와 교환가치(가격)를 지니지만 금융상품은 자금의 매개체로 교환가치만 있습니다. 마치 자연계에서 파동 등의 물리작용이 다른 곳으로 미치려면 매질이 있어야 하듯, 경제계를 움직이는 돈은 금융상품을 매개로 합니다.
결국 '실물'에 종속되는 금융상품의 가치


금융이 돈을 매개하는 기능은, 집합적으로는 경제순환에 중대한 의미를 갖지만, 개별 금융상품의 가치(가격)가 매개기능으로부터 나오지는 않습니다. 금융투자로 기대수익을 올릴 가능성, 즉 돈을 벌 가능성으로 금융상품의 가치는 매겨집니다.

금융상품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17세기의 튤립 버블 사태를 통해 조망해 볼 수 있습니다. 왕관(꽃)과 칼(잎)과 황금(뿌리)을 지닌 튤립은 16세기에 터키로부터 유럽으로 수입된 이래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때마침 네덜란드에는 1602년 동인도회사 설립 이후 아시아 무역으로 축적한 자금이 넘쳐났습니다. 이 돈은 희귀하고 매혹적인 튤립 구근에 대한 투자로 향했습니다.

희귀 구근의 가격은 치솟았고, 진귀한 구근을 확보하기 위한 욕망은 강물처럼 불어났습니다. 네덜란드의 넘쳐나는 유동성과 유럽 각지의 자금까지 가세해 튤립 구근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지의 구근을 선매하기 위해 부동산담보를 제공하고 미리 가격을 정해 특정 시점에 사고 팔기로 약속했습니다. 선도, 선물, 공매도 등의 각종 금융기법이 사용된 것입니다.

이때 꽃의 모양과 색 등의 내역을 기재한 약속어음(promissory notes)이 거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구근을 묘사하고 그에 대한 권리를 약속해 둔 이 종이조각은 엄청난 교환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미래의 튤립 실물의 재현체인 이 어음은 무수한 사람의 손을 통과하며 날로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화제성 선물(futures) 거래 상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튤립 버블은 거짓말처럼 붕괴되었고, 투기의 광풍에서 정신을 차린 네덜란드는 수많은 법적 분쟁과 경제적 진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법원은 이 전대미문의 분쟁을 해결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 편의 동화같은 400년 전의 튤립 버블 사태는 금융상품의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적나라 하게 보여 줍니다. 수 년간 광풍이 불다 튤립(실물) 가격이 주춤하고 하락하자 이내 평범한 꽃으로 인식되었고 약속어음(상품)의 가치는 즉시 붕괴되어 종이조각으로 전락했습니다. 종국적으로는, 금융상품의 가치(가격)는 그 바탕에 있는 실물의 가치에 종속되기 마련입니다.
합리적 금융상품의 설계
따라서 실물과 금융상품의 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해 합리적인 거래구조를 짜고 안전·신용보강장치를 잘 반영하는 것이 금융상품 설계의 핵심입니다. 중고 항공기 대여사업에 투자했던 실제 펀드 상품을 예시로 들어 보겠습니다.

중고 항고기도 사용·교환가치를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기업 A는 중고 항공기를 매입해 수리하고 리모델링한 후 가치를 높이고 이를 항공사에 임대해 임대료를 버는 사업을 하기로 계획했습니다. 그 자금은 펀드로부터 받기로 했습니다.

Y펀드는 A가 발행하는 기업어음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제공하고, A는 그 돈으로 취득한 항공기를 리모델링해 대여하고 임대수입을 거두어 기업어음을 상환하면, Y펀드 투자자는 그 돈으로 투자수익을 얻습니다.

어음의 상환을 담보하기 위해 A에 대한 출자지분과 A가 취득한 항공기와 엔진은 Y펀드에게 담보로 제공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실물(중고 항공기)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금융상품의 설계로 볼 수 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들


위와 같은 상품설계라면 Y펀드는 A의 사업이 성공하면 기대수익을 얻고, 실패해도 큰 손실을 입지는 않을 듯 보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중국에서의 항공기 수리 지연, 비용 증대, 이 비용을 보충하는 약정의 위반 등으로 수리업체가 항공기에 대해 유치권을 행사함으로써 Y펀드의 담보는 무력해지고 Y펀드 투자자들은 대부분의 원금 손실을 입었습니다.

펀드 투자자 X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Y펀드 판매사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했습니다. 수리과정에서 위와 같은 위험으로 담보가 실효될 가능성 등에 대한 설명 없이 펀드 판매를 함으로써 X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수리업체의 유치권 행사로 담보가 실효될 위험 등은 판매사가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없었고, 자금보충 당사자의 자력이 부족하게 되어 자금보충을 못하게 될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당연하여 X에게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다고 보아 판매사의 설명의무 위반을 부정하고, X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선박에 투자하는 금융상품도 위 항공기 투자 상품의 설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00년 초 활발하게 판매되었던 선박투자 금융상품들은 해운시황의 추락과 용선료 수입의 급감으로 투자원리금을 제대로 회수할 수 없게 되고, 그토록 믿었던 선박의 가치도 해운시황과 동반 추락하고, 이는 오롯이 투자자들이 감수하여야 할 위험임을 깨닫게 되자 민간의 선박투자는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이렇듯 실물과 금융상품의 가치는 결합되어 있고, 그 위험은 투자자에 귀속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기호(sign)로서의 금융상품
위와 같은 실물과 상품의 관계를 통해, 금융상품의 본질은 실물(그와 연계된 사업)의 가치가 유지되거나 높아지면 투자자에게 그 수익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약속(contract) 내지 증서(instruments)로서 하나의 '기호(sign)'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미술(이미지)이 실재(사물)를 반영하거나 재현한 사물인 점과 유사합니다. 우리는 금융투자를 통해 그 약속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의 고도화로 가상이 강력하고 무수한 실재들(realities)을 만들어 내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실재보다 더 가까이에서 더 강력하게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가상(시뮬레이션)을 장 보드리야르는 '초실재(hyper reality)'라 불렀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상상된 실재(imagined realities)라 칭했습니다.

finance(금융)의 어원은 'finis'로 영어 final과 같은 어원입니다. 즉, 고대에 금융은 끝내고 매듭짓는 것이었으나, 오늘의 금융은 니체의 '영원회귀'와 같아 보입니다. 금융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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