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I''m Mr. Black Bean."

입력 2010-05-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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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장과 헤어진 이후 본격적인 유학 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에세이 작성과 GMAT 시험 준비는 물론이거니와 회사에 유학에 대해 미리 보고해야 했다.

정말 숨가쁘게 두 달을 보내는 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응원해 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바로 이한구 전 대우경제연구소장님(現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내 아내이다.

이 전 소장님은 사내 MBA 지원프로그램까지 만드시며 내 유학경비 마련을 적극 도와주셨다.

그리고 아내는 당분간 아이들과 한국에서 지낼 테니 먼저 떠나 공부하라고 흔쾌히 수락했다.

오히려 "여보, 나 생활력 강한 여자라는 거 알지? 나랑 애들은 걱정하지 마. 어차피 당신은 만날 회사일 한다고 늦게 와서, 애들도 당신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을거야." 라고 말했다.

이는 분명 내가 가족에게 미안해 쉽게 유학을 떠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가 미리 선수치며 걱정을 덜어준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늘 중요한 일에 앞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마다 어머니나 누님같이 말해주는 고마운 사람. 항상 내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한결같이 날 믿어주는 사랑하는 내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와튼에서 어드미션(admission, 입학허가)을 받고 미국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때는, 햇볕이 점점 뜨거워지는 7월이 거의 다 되어서였다.

기숙사에 짐은 풀었으나 유학 준비가 제대로 안 되었던 터라 내 몸과 마음은 늘 긴장모드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당시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는 ‘빨리 정착해서 마음의 안정 찾기’였다. 숙소나 음식 등에 적응하는 기초생활 준비,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요즘 젊은이들이야 어려서부터 해외에 나가 생활하는 기회가 많겠지만, 당시 나는 그런 경험이 전무했다. 중고차를 사고, 장 을 보거나 음식점에서 주문하기, 하다못해 길에서 차 한 잔 사먹는 일조차 정말 낯설었다.

이런 기초적인 생활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대학시절 선후배나 새로 그곳에서 알게 된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해결해 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의 인연이 정말 소중한 것임을 새삼 느꼈다.

특히 영어로 예배 본다는 소리에 찾아간 임마누엘교회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크게 얻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와튼 스쿨은 당시 소위 파일럿 시스템이라하여, 연간 수업 과정을 학기제가 아닌 사실상 쿼터제(quarter system)로 운영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수해야 할 과목이 많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부족한 외국인들, 특히 유학 준비가 부족했던 내겐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강의에 들어가면 빠른 수업진행 중에 혹 교수가 나를 시키면 어쩌나 하고 가슴 졸이는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학업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상당히 쌓였던 어느 날로 기억된다. 잔디밭을 거닐다가 학교 설립자인 벤자민 프랭크린의 동상 옆에 걸터앉아 그를 바라보며‘당신이 미국 실용주의의 대부(大夫)인 걸 압니다. 저는 한국 실사구시의 대부인 정약용 선생의 후예입니다. 지금은 많이 힘들지만 와튼 MBA 과정을 반드시 버텨내 앞으로 한국 업계에서 실제 유용하게 사용할 툴 (tool)을 배우고 만들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한편 답답한 가슴을 안고 방에 돌아와 리스닝을 늘리려고 숙제 하면서도 TV를 틀어놓고, 잠을 잘 때도 잠재의식 속에 영어가 꽂히길 갈망하면서 TV를 틀어놨다.

내 딴엔 수면학습법이라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매일 아침 잠이 덜 깨어 오전 수업시간마다 졸음을 쫓느라 커피를 들고 살아야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룹 별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수업이라 조원끼리 역할 분담을 한 후, 방에 돌아와서는 고민에 쌓여 있었다.

어찌해야할 지 몰라 당황해하며 스스로를 한심해 하는데, 기숙사에서 친해진 같은 반 친구 짐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 왔던 그는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얘기해주며, "유신아, 넌 방금 미국에 온 외국인이니까 못하는 게 당연해. 단, 네 의견에 논리만 있으면 돼. 그리고 배우가 되어 연기한다고 생각해 봐. 오히려 다들 재미있어할 거야."라고 격려했다.

''그래. 배우처럼 감정을 실어 대사처럼 외워보자.'' 짐의 격려에 힘을 얻었던 난 내가 맡은 발표 부분을 통째로 외웠다. 거울을 보며 몇 번씩이고 반복하며 연습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같은 그룹의 월터라는 친구가 “유신, 잘 했어. 너 꼭 배우 같더라.”라고 했을 때 ''좋았어! 내가 결국 해냈구나.''라며 자신감을 회복했다.

또 외지에서 혼자 생활하며 빡빡한 수업을 소화해야하는 늦깎이 학생으로서 체력 챙기기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생각 끝에 한국에서의 경험을 응용해 지구력을 길러주는 검정콩 즙을 달여 마시기로 했다.

검정콩이 몸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미국에서는 콩을 가루로 만들어 주는 데도 없고 옆에 아내도 없을 뿐더러, 직접 만들 시간도 없었다.

''어떻게 할까?'' 궁리 끝에 월마트에서 슬로우 쿠커(slow cooker)를, 한인 슈퍼에서는 ‘아씨 방 검은콩’을 사들고 왔다.

슬로우 쿠커에 검정콩과 물을 넣은 후 자동 스위치를 눌러 7~8시간이 지나면 아주 걸쭉한 즙이 됐다. 소위 신장과 폐를 강화시키고 정력과 지구력에 최고라는 흑두전즙(黑豆煎汁)이 바로 이것이다.

매일 아침 아무리 바빠도 슬로우 쿠커에 검은콩과 물을 붓고 자동 스위치를 누른 후에야 기숙사 방을 나섰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밤 늦게 오면 탕약처럼 진한 검은콩 즙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곤 했다.

하루는 짐이 “유신아, 너 되게 좋아 보인다. 얼굴에서 빛이 나네. 비결이 대체 뭐야?”라고 묻길래, 도움만 받고 있던 나는 뭔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다 싶어 내가 아는 건강 지식과 짧은 영어로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인 슈퍼에 콩을 사러 갔을 때 일이다. 이게 웬 일인가? 아무리 찾아도 늘 같은 자리에 있던‘아씨 방 검은콩’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상점에 있던 콩이 전부 동나버렸다고 했다. 이틀 전인가 학생 같은 애들 몇 명이 와서 다 사갔다시며 신기해하셨다.

''짐이 다녀갔구나.'' 순간 절로 웃음이 났다. 그 사건 이후 학교에서 내 별명은 영국 코미디언 미스터 빈과 비슷한 미스터 블랙 빈(Mr. Black Bean)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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