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창 W] 알뜰주유소 700개 `불편한 진실`
1. 정유사의 기존 계약 이용한 자금압박
2. `건수 늘리기` 급급한 정부
3. 싸지 않은 석유공사 의무구입 물량
4. ‘규제책’만 늘어놓은 사후대책 관련 조항
<앵커> 정부가 기름 값 인상을 막기 위해 도입한 알뜰주유소가 700호점을 돌파했는데요. 유가 당국의 올해 목표인 1천호점 도달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특히 정유사가 문제인데요. 정유사에서 기존 계약을 걸고넘어지며 알뜰주유소 전환을 방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주유소들이 이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취재한 내용 먼저 보시겠습니다.
[리포트 1 - 기존 계약을 이용한 정유사의 자금압박]
주유소들이 알뜰주유소로 전환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정유사와의 기존 계약입니다.
기존 계약이 없는 무폴주유소의 경우엔 조건만 충족시키면 비교적 수월하게 알뜰주유소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반면 브랜드주유소들은 정유사와의 기존 계약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빠지기 쉽습니다.
<인터뷰> 정원철 자영주유소연합회장
“계약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과 함께 가압류신청을 건다. 영세한 주유소들은 소송 진행되는 동안 이미 망한다.”
석유공사가 알뜰로 전환한 주유소와 정유사 간의 분쟁 사례를 취합한 결과, 계약 문제로 세 자리수의 분쟁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네 건에 관련해서는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일반적으로 주유소 사업자는 언제든지 정유사와의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종료일 1~3개월 전에 서면통보를 하지 않을 경우 계약 위반이 됩니다.
이 경우 정유사들은 계약서에 근거해 분기 매출액의 약 30%의 위약금을 주유소로 청구하는데, 이 규모가 수억 원대에 달해 영세 주유소들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공급계약을 정상 해지하더라도 정유사로부터 시설물 등을 지원받은 적이 있다면 안심할 수 없습니다.
정유사들은 주유기 등을 제공하면서 맺은 부수계약을 근거로 계약기간이 남아있다며 계약을 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정상적으로 계약을 종료해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은 있습니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유소가 대리점이나 타 정유사를 통해 자체적으로 혼합판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정유사들이 자사 브랜드가 아닌 다른 회사 주유소에 공급가격을 더 낮게 책정하기 때문입니다.
정유사들은 이 점을 이용해 계약서상의 전량구매 조건 위반을 근거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거나, 기존 브랜드폴을 유지하도록 회유합니다.
8월 말 기준으로 알뜰주유소 전환을 신청했다가 정유사 계약 문제로 포기한 사례가 69건에 이릅니다.
계약 일자도 제대로 모르는 주유소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정유사들이 이처럼 계약 위반을 잡고 늘어지면 주유소로서는 쉽사리 알뜰로 전환하기 어렵습니다.
[스튜디오]
<앵커> 알뜰주유소 전환과 관련된 문제점을 취재한 유기환 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유 기자, 알뜰주유소 전환 시 주유소와 정유사 간의 분쟁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요. 분쟁에 휘말린 주유소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기자> 상당수 주유소들은 알뜰주유소로의 전환을 포기하는 쪽을 택합니다. 정유사들이 계약 위반을 하면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알뜰주유소를 택할 주유소는 별로 없습니다. 정유사에서 주유소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함께 가압류를 신청할 경우 결론이 날 때까지 일단 자금이 묶일 수밖에 없는데요. 영세 주유소들은 당장 운영할 자금이 없으면 몇 달 내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앵커> 주유소들과 정유사 간에 실제 이런 문제가 불거지며 법정 소송 사례도 이어진 사례도 있습니까?
<기자> 물론입니다. 현재 4건의 소송이 진행 중인데요, 진행 되고 있는 소송 중 다음 달 12일에 내려질 첫 판결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GS칼텍스가 자사브랜드에서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한 주유소를 대상으로 내건 손해배상청구소송인데요. 주유소 측은 현재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원천 무효라며 맞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주유소들이 정유사와의 계약에 묶여있는 만큼, 이 재판의 방향에 따라 앞으로 주유소들의 알뜰주유소 전환이 더욱 활성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침체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주유소의 기존계약 해지 과정에서 정유사들이 주유소를 가만히 두지 않고 있군요. 그런데 정부도 알뜰주유소 전환 과정에서 적절치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점이 문제인지 함께 살펴보시죠.
[리포트 2 - `건수 늘리기`에 급급한 정부]
알뜰주유소 전환을 가로막는 두 번째 장애물은 조건이 이상한데도 `일단 계약부터 체결하자`고 밀어붙이는 정부의 실적 지상주의입니다.
정부는 알뜰주유소 전환 시 일정 조건을 갖추면 외상 거래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 기준이 다소 황당합니다.
<인터뷰> 송민영 석유공사 팀장
“외상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석유관리원이 운영하는 품질 보증프로그램에 가입해야 한다.”
정부는 이에 대해 알뜰 주유소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답합니다.
<인터뷰> 전동욱 지식경제부 사무관
“알뜰 주유소 신청과 품질 보증 프로그램은 별개다. 품질 보증 프로그램은 원래 존재했다. 품질 관리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문제는 이 품질보증 프로그램 가입이 알뜰주유소 전환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것.
자금력이 약한 주유소의 경우 외상거래가 될 줄 알고 알뜰주유소로 전환했다가 품질보증 프로그램 가입 심사에 떨어질 경우엔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인터뷰>손석원 (주)유풍주유소 대표
“정유사에 빌린 돈을 갚고 나니 정부에서 외상거래를 안 해주면 기름을 살 돈이 없다. 대리점 통해 매일 외상으로 간신히 물량을 조달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계약 이후에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는 주유사업자 개인의 책임이라는 반응입니다.
<인터뷰> 전동욱 지식경제부 사무관
“계약할 때 이런 점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설명 의무는 충분히 이행했다고 본다.”
[스튜디오]
<앵커> 상식적으로 금융 지원에 품질 기준을 끼워 넣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그렇다면 품질 보증 프로그램에만 가입하면 다른 조건은 없는 것인가요?
<기자> 아닙니다. 석유관리원의 품질 보증프로그램에 가입하더라도 보증서나 유가증권, 부동산 등 담보를 제공해야 기본 1억 5천만 원 한도에서 외상거래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빵집을 운영하는 사장이 슈퍼에서 밀가루를 외상으로 사려는데, 슈퍼 주인이 “빵의 품질을 확인해야 밀가루를 외상으로 주겠다”고 말하는 꼴입니다. 그러면서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밀가루 값에 해당하는 금품도 맡기라고 종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좀 황당하군요. 그런데 이 품질 보증프로그램 가입은 알뜰주유소 전환 시 필수사항인가요?
<기자> 이 부분이 조금 이상한데요. 알뜰주유소로 전환할 때는 품질 보증 프로그램 가입이 권장 사항이지 필수는 아닙니다. 그런데 전환된 이후에는 계약서에 ‘주유소의 권리와 의무’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지속적으로 품질 보증프로그램에 가입해야 한다’고 명시돼있습니다.
<앵커> 가입할 때는 아니지만, 가입 이후에는 의무 사항이 된다는 말씀이군요?
<기자> 맞습니다. 정부에서 말한 대로 ‘품질 관리를 위한 것’이라면 품질 보증프로그램을 가입 단계에서부터 의무화하는 게 상식적인 상황인데요. 지금 상황은 가입 조건을 쉽게 만들어 일단 알뜰주유소 수를 늘려 놓고 보자는 식입니다.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주유소 중 원하는 경우에는 품질 보증프로그램에 가입하라는 것인데, 여기서 통과 못 하는 주유소가 발생한다는 것은 그만큼 알뜰 주유소 전환 시 사전 품질 검사가 소홀하다는 반증이 될 수 있습니다.
<앵커> 품질 검사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정책이 필요할 텐데요. 품질 뿐 아니라 공급가격에도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석유공사의 공급가격이 생각보다 싸지 않다는 지적인데요. 자세한 내용, 화면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리포트 3 - 싸지 않은 석유공사 의무구입 물량]
서울의 한 주유소.
얼마 전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이곳은, 의무적으로 50%이상 구입해야 하는 석유공사의 공급가격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터뷰> 손석원 (주)유풍주유소 대표
“석유공사에서 공급하는 가격이 다른 정유사보다 별로 싸지 않다. 심지어는 더 비싼 경우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석유공사에서 주유소에 공급할 때 일괄적으로 같은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인터뷰> 전동욱 지식경제부 사무관
“석유공사가 알뜰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은 중부권과 남부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권역별로는 가격이 같다.”
지역별로 차이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지급하다 보니 원래 기름 값이 싼 지역에서는 오히려 석유공사의 공급가격이 더 비싼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해당 주유소에서 밝힌 공급가격을 살펴 본 결과, 석유공사의 공급가격이 대리점이나 정유사의 공급가격과 대체로 비슷했고,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비싸기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석유공사의 공급가격이 이처럼 유동적이지 못한 이유는, 석유공사 제품의 대부분이 정유사로부터 공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송만영 석유공사 팀장
“2011년 말 현재 공사와 농협중앙회 물량은 중부지역은 현대오일뱅크에서, 영남지방은 GS칼텍스에서 공급 중이다. 현재 정유사 물량이 80%고 나머지는 20%이다.”
정유사에서 공급받는 물량이 대부분이다 보니, 가격 결정권이 석유공사가 아닌 정유사에 넘어가는 형국입니다.
정유사가 악의적으로 석유공사보다 개별주유소에 더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해 알뜰주유소를 압박해도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석유제품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유사들을 견제하기 위해 알뜰주유소를 도입했지만 정작 석유 제품은 정유소에서 공급받는 안일한 대처가 현 상황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튜디오]
<앵커> 값 싼 주유소를 만들겠다며 시작했는데 공급가격이 오히려 비싸다니, 공급체계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가 아닌가 싶네요. 어떻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위에서 보신 것처럼 정유사에서 가격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한 알뜰주유소는 가격 경쟁력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석유공사에서 시중 공급가보다 싸게 입찰을 했더라도 정유사에서 알뜰주유소를 견제하기 위해 주변 주유소에만 더 싸게 공급한다는 식으로 나오면 대치할 방법이 없습니다. 얼핏 보면 가격 경쟁을 유도해 기름 값 인하 효과가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알뜰주유소를 압박하기 위한 일종의 덤핑이나 다름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브랜드 주유소들을 프랜차이즈 빵집 브랜드라고 치면 알뜰주유소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새로 생긴 빵집 브랜드인데요. 새 빵집이 다른 데보다 싼 값에 물건을 팔자, 주위 다른 주유소들이 일제히 가격을 내려 새 빵집에 손님이 끊기게 하려는 상황입니다. 주변 주유소가 싼 공급가를 바탕으로 가격을 낮추면 알뜰주유소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더 낮출 수밖에 없는데요. 모 알뜰주유소의 경우 “주변 주유소는 리터당 100원씩 남기는데 우리는 20원도 못 남긴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럴 경우 적정 마진을 유지하기 힘들어 장기적인 운영이 어려워집니다.
<앵커> 알뜰주유소가 공급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자> 근본적으로 정유사가 아닌 다른 공급원을 찾아야 합니다. 삼성토탈과 공급계약을 체결했지만 7월 말 들어온 첫 물량 알뜰주유소 전체 공급량의 10% 남짓한 수준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 지는 지켜봐야겠지만 80%를 차지하는 정유사를 대체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현재 유가 당국에서는 다음 달부터 공개입찰을 통해 국제 석유시장에서 직접 석유제품을 수입해 올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이것이 제대로 자리 잡아야만 석유공사가 4대 정유사에 이은 ‘제 5의 공급사’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앵커> 공개입찰을 통해 얼마나 싸고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받느냐가 관건이겠군요. 현재 알뜰주유소 전환 이후의 관리는 어떻습니까? 잘 이뤄지고 있나요?
<기자>알뜰주유소의 사후관리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정기적인 품질이나 시설물 관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모 주유소 대표는 “알뜰주유소 전환 전에는 그렇게 자주 찾아오던 담당자가 전환 이후에는 얼굴도 비추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정부에 문의한 결과 정기적인 점검 제도는 없고, 문제가 있다고 접수할 경우에만 해당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나선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따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 정부에서는 운영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단 얘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정부에서 밝힌 사후관리정책은 엄밀히 말하면 규제정책 뿐이었는데요. 계약서상에 나와 있는 대로 석유공사 물량을 50%이상 구매하고 있는지, 주변 주유소보다 가격이 싼 지 등을 체크해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제재를 가한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것 때문에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엔 어떻게 되나요? 가령 전환할 때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일시적으로 석유공사 물량 구입 자금이 부족하다든지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기자> 말씀하신 사례가 발생해서 정부에 문의했더니 “그럼 계약 위반이니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현재 알뜰주유소로 전환을 신청한 주유소의 4분의 3은 브랜드 주유소인데요. 브랜드 주유소의 경우 정유사의 소송 위협과 각종 금융 문제들을 감안하고서 알뜰주유소로 넘어간 건데, 그런 사업자들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참 야박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다 새로운 브랜드로 넘어갔더니 ‘빵에 곰팡이가 폈나’ 정도만 점검하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 셈입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주유사업자들이 과연 알뜰 주유소로 전환할 생각을 할지는 의문입니다.
<앵커> 정부가 사후관리를 소홀히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기자>정유사와는 달리 정부는 주유소를 ‘고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유소의 경우에는 주유소를 이용하는 소비자 뿐 아니라 주유사업자를 위해 장비지원이나 마케팅지원 등을 펼치고 있는데요. 정부는 주유소를 ‘규제 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습니다. 알뜰주유소가 4대 브랜드에 이어 제5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좀 더 고객 중심의 마인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지식경제부에서도 앞으로 알뜰주유소 담당부서 인원을 두 배로 늘려 유지보수 담당인원을 확충한다고 하니 변화를 기대해봐야겠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알뜰주유소 전환 시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기존 계약을 이용한 정유사의 견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고, 정부의 허술한 정책과 정유사에 의존하는 공급방안도 문제입니다. 다음 달 내려질 첫 소송의 결과와 함께, 품질 관리와 공급선 다변화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알뜰주유소가 올해 목표인 1천호점 도달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1. 정유사의 기존 계약 이용한 자금압박
2. `건수 늘리기` 급급한 정부
3. 싸지 않은 석유공사 의무구입 물량
4. ‘규제책’만 늘어놓은 사후대책 관련 조항
<앵커> 정부가 기름 값 인상을 막기 위해 도입한 알뜰주유소가 700호점을 돌파했는데요. 유가 당국의 올해 목표인 1천호점 도달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특히 정유사가 문제인데요. 정유사에서 기존 계약을 걸고넘어지며 알뜰주유소 전환을 방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주유소들이 이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취재한 내용 먼저 보시겠습니다.
[리포트 1 - 기존 계약을 이용한 정유사의 자금압박]
주유소들이 알뜰주유소로 전환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정유사와의 기존 계약입니다.
기존 계약이 없는 무폴주유소의 경우엔 조건만 충족시키면 비교적 수월하게 알뜰주유소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반면 브랜드주유소들은 정유사와의 기존 계약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빠지기 쉽습니다.
<인터뷰> 정원철 자영주유소연합회장
“계약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과 함께 가압류신청을 건다. 영세한 주유소들은 소송 진행되는 동안 이미 망한다.”
석유공사가 알뜰로 전환한 주유소와 정유사 간의 분쟁 사례를 취합한 결과, 계약 문제로 세 자리수의 분쟁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네 건에 관련해서는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일반적으로 주유소 사업자는 언제든지 정유사와의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종료일 1~3개월 전에 서면통보를 하지 않을 경우 계약 위반이 됩니다.
이 경우 정유사들은 계약서에 근거해 분기 매출액의 약 30%의 위약금을 주유소로 청구하는데, 이 규모가 수억 원대에 달해 영세 주유소들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공급계약을 정상 해지하더라도 정유사로부터 시설물 등을 지원받은 적이 있다면 안심할 수 없습니다.
정유사들은 주유기 등을 제공하면서 맺은 부수계약을 근거로 계약기간이 남아있다며 계약을 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정상적으로 계약을 종료해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은 있습니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유소가 대리점이나 타 정유사를 통해 자체적으로 혼합판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정유사들이 자사 브랜드가 아닌 다른 회사 주유소에 공급가격을 더 낮게 책정하기 때문입니다.
정유사들은 이 점을 이용해 계약서상의 전량구매 조건 위반을 근거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거나, 기존 브랜드폴을 유지하도록 회유합니다.
8월 말 기준으로 알뜰주유소 전환을 신청했다가 정유사 계약 문제로 포기한 사례가 69건에 이릅니다.
계약 일자도 제대로 모르는 주유소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정유사들이 이처럼 계약 위반을 잡고 늘어지면 주유소로서는 쉽사리 알뜰로 전환하기 어렵습니다.
[스튜디오]
<앵커> 알뜰주유소 전환과 관련된 문제점을 취재한 유기환 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유 기자, 알뜰주유소 전환 시 주유소와 정유사 간의 분쟁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요. 분쟁에 휘말린 주유소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기자> 상당수 주유소들은 알뜰주유소로의 전환을 포기하는 쪽을 택합니다. 정유사들이 계약 위반을 하면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알뜰주유소를 택할 주유소는 별로 없습니다. 정유사에서 주유소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함께 가압류를 신청할 경우 결론이 날 때까지 일단 자금이 묶일 수밖에 없는데요. 영세 주유소들은 당장 운영할 자금이 없으면 몇 달 내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앵커> 주유소들과 정유사 간에 실제 이런 문제가 불거지며 법정 소송 사례도 이어진 사례도 있습니까?
<기자> 물론입니다. 현재 4건의 소송이 진행 중인데요, 진행 되고 있는 소송 중 다음 달 12일에 내려질 첫 판결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GS칼텍스가 자사브랜드에서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한 주유소를 대상으로 내건 손해배상청구소송인데요. 주유소 측은 현재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원천 무효라며 맞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주유소들이 정유사와의 계약에 묶여있는 만큼, 이 재판의 방향에 따라 앞으로 주유소들의 알뜰주유소 전환이 더욱 활성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침체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주유소의 기존계약 해지 과정에서 정유사들이 주유소를 가만히 두지 않고 있군요. 그런데 정부도 알뜰주유소 전환 과정에서 적절치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점이 문제인지 함께 살펴보시죠.
[리포트 2 - `건수 늘리기`에 급급한 정부]
알뜰주유소 전환을 가로막는 두 번째 장애물은 조건이 이상한데도 `일단 계약부터 체결하자`고 밀어붙이는 정부의 실적 지상주의입니다.
정부는 알뜰주유소 전환 시 일정 조건을 갖추면 외상 거래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 기준이 다소 황당합니다.
<인터뷰> 송민영 석유공사 팀장
“외상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석유관리원이 운영하는 품질 보증프로그램에 가입해야 한다.”
정부는 이에 대해 알뜰 주유소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답합니다.
<인터뷰> 전동욱 지식경제부 사무관
“알뜰 주유소 신청과 품질 보증 프로그램은 별개다. 품질 보증 프로그램은 원래 존재했다. 품질 관리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문제는 이 품질보증 프로그램 가입이 알뜰주유소 전환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것.
자금력이 약한 주유소의 경우 외상거래가 될 줄 알고 알뜰주유소로 전환했다가 품질보증 프로그램 가입 심사에 떨어질 경우엔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인터뷰>손석원 (주)유풍주유소 대표
“정유사에 빌린 돈을 갚고 나니 정부에서 외상거래를 안 해주면 기름을 살 돈이 없다. 대리점 통해 매일 외상으로 간신히 물량을 조달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계약 이후에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는 주유사업자 개인의 책임이라는 반응입니다.
<인터뷰> 전동욱 지식경제부 사무관
“계약할 때 이런 점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설명 의무는 충분히 이행했다고 본다.”
[스튜디오]
<앵커> 상식적으로 금융 지원에 품질 기준을 끼워 넣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그렇다면 품질 보증 프로그램에만 가입하면 다른 조건은 없는 것인가요?
<기자> 아닙니다. 석유관리원의 품질 보증프로그램에 가입하더라도 보증서나 유가증권, 부동산 등 담보를 제공해야 기본 1억 5천만 원 한도에서 외상거래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빵집을 운영하는 사장이 슈퍼에서 밀가루를 외상으로 사려는데, 슈퍼 주인이 “빵의 품질을 확인해야 밀가루를 외상으로 주겠다”고 말하는 꼴입니다. 그러면서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밀가루 값에 해당하는 금품도 맡기라고 종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좀 황당하군요. 그런데 이 품질 보증프로그램 가입은 알뜰주유소 전환 시 필수사항인가요?
<기자> 이 부분이 조금 이상한데요. 알뜰주유소로 전환할 때는 품질 보증 프로그램 가입이 권장 사항이지 필수는 아닙니다. 그런데 전환된 이후에는 계약서에 ‘주유소의 권리와 의무’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지속적으로 품질 보증프로그램에 가입해야 한다’고 명시돼있습니다.
<앵커> 가입할 때는 아니지만, 가입 이후에는 의무 사항이 된다는 말씀이군요?
<기자> 맞습니다. 정부에서 말한 대로 ‘품질 관리를 위한 것’이라면 품질 보증프로그램을 가입 단계에서부터 의무화하는 게 상식적인 상황인데요. 지금 상황은 가입 조건을 쉽게 만들어 일단 알뜰주유소 수를 늘려 놓고 보자는 식입니다.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주유소 중 원하는 경우에는 품질 보증프로그램에 가입하라는 것인데, 여기서 통과 못 하는 주유소가 발생한다는 것은 그만큼 알뜰 주유소 전환 시 사전 품질 검사가 소홀하다는 반증이 될 수 있습니다.
<앵커> 품질 검사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정책이 필요할 텐데요. 품질 뿐 아니라 공급가격에도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석유공사의 공급가격이 생각보다 싸지 않다는 지적인데요. 자세한 내용, 화면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리포트 3 - 싸지 않은 석유공사 의무구입 물량]
서울의 한 주유소.
얼마 전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이곳은, 의무적으로 50%이상 구입해야 하는 석유공사의 공급가격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터뷰> 손석원 (주)유풍주유소 대표
“석유공사에서 공급하는 가격이 다른 정유사보다 별로 싸지 않다. 심지어는 더 비싼 경우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석유공사에서 주유소에 공급할 때 일괄적으로 같은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인터뷰> 전동욱 지식경제부 사무관
“석유공사가 알뜰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은 중부권과 남부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권역별로는 가격이 같다.”
지역별로 차이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지급하다 보니 원래 기름 값이 싼 지역에서는 오히려 석유공사의 공급가격이 더 비싼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해당 주유소에서 밝힌 공급가격을 살펴 본 결과, 석유공사의 공급가격이 대리점이나 정유사의 공급가격과 대체로 비슷했고,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비싸기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석유공사의 공급가격이 이처럼 유동적이지 못한 이유는, 석유공사 제품의 대부분이 정유사로부터 공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송만영 석유공사 팀장
“2011년 말 현재 공사와 농협중앙회 물량은 중부지역은 현대오일뱅크에서, 영남지방은 GS칼텍스에서 공급 중이다. 현재 정유사 물량이 80%고 나머지는 20%이다.”
정유사에서 공급받는 물량이 대부분이다 보니, 가격 결정권이 석유공사가 아닌 정유사에 넘어가는 형국입니다.
정유사가 악의적으로 석유공사보다 개별주유소에 더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해 알뜰주유소를 압박해도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석유제품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유사들을 견제하기 위해 알뜰주유소를 도입했지만 정작 석유 제품은 정유소에서 공급받는 안일한 대처가 현 상황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튜디오]
<앵커> 값 싼 주유소를 만들겠다며 시작했는데 공급가격이 오히려 비싸다니, 공급체계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가 아닌가 싶네요. 어떻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위에서 보신 것처럼 정유사에서 가격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한 알뜰주유소는 가격 경쟁력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석유공사에서 시중 공급가보다 싸게 입찰을 했더라도 정유사에서 알뜰주유소를 견제하기 위해 주변 주유소에만 더 싸게 공급한다는 식으로 나오면 대치할 방법이 없습니다. 얼핏 보면 가격 경쟁을 유도해 기름 값 인하 효과가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알뜰주유소를 압박하기 위한 일종의 덤핑이나 다름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브랜드 주유소들을 프랜차이즈 빵집 브랜드라고 치면 알뜰주유소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새로 생긴 빵집 브랜드인데요. 새 빵집이 다른 데보다 싼 값에 물건을 팔자, 주위 다른 주유소들이 일제히 가격을 내려 새 빵집에 손님이 끊기게 하려는 상황입니다. 주변 주유소가 싼 공급가를 바탕으로 가격을 낮추면 알뜰주유소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을 더 낮출 수밖에 없는데요. 모 알뜰주유소의 경우 “주변 주유소는 리터당 100원씩 남기는데 우리는 20원도 못 남긴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럴 경우 적정 마진을 유지하기 힘들어 장기적인 운영이 어려워집니다.
<앵커> 알뜰주유소가 공급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자> 근본적으로 정유사가 아닌 다른 공급원을 찾아야 합니다. 삼성토탈과 공급계약을 체결했지만 7월 말 들어온 첫 물량 알뜰주유소 전체 공급량의 10% 남짓한 수준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 지는 지켜봐야겠지만 80%를 차지하는 정유사를 대체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현재 유가 당국에서는 다음 달부터 공개입찰을 통해 국제 석유시장에서 직접 석유제품을 수입해 올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이것이 제대로 자리 잡아야만 석유공사가 4대 정유사에 이은 ‘제 5의 공급사’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앵커> 공개입찰을 통해 얼마나 싸고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받느냐가 관건이겠군요. 현재 알뜰주유소 전환 이후의 관리는 어떻습니까? 잘 이뤄지고 있나요?
<기자>알뜰주유소의 사후관리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정기적인 품질이나 시설물 관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모 주유소 대표는 “알뜰주유소 전환 전에는 그렇게 자주 찾아오던 담당자가 전환 이후에는 얼굴도 비추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정부에 문의한 결과 정기적인 점검 제도는 없고, 문제가 있다고 접수할 경우에만 해당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나선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따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 정부에서는 운영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단 얘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정부에서 밝힌 사후관리정책은 엄밀히 말하면 규제정책 뿐이었는데요. 계약서상에 나와 있는 대로 석유공사 물량을 50%이상 구매하고 있는지, 주변 주유소보다 가격이 싼 지 등을 체크해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제재를 가한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것 때문에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엔 어떻게 되나요? 가령 전환할 때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일시적으로 석유공사 물량 구입 자금이 부족하다든지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기자> 말씀하신 사례가 발생해서 정부에 문의했더니 “그럼 계약 위반이니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현재 알뜰주유소로 전환을 신청한 주유소의 4분의 3은 브랜드 주유소인데요. 브랜드 주유소의 경우 정유사의 소송 위협과 각종 금융 문제들을 감안하고서 알뜰주유소로 넘어간 건데, 그런 사업자들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참 야박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다 새로운 브랜드로 넘어갔더니 ‘빵에 곰팡이가 폈나’ 정도만 점검하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 셈입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주유사업자들이 과연 알뜰 주유소로 전환할 생각을 할지는 의문입니다.
<앵커> 정부가 사후관리를 소홀히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기자>정유사와는 달리 정부는 주유소를 ‘고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유소의 경우에는 주유소를 이용하는 소비자 뿐 아니라 주유사업자를 위해 장비지원이나 마케팅지원 등을 펼치고 있는데요. 정부는 주유소를 ‘규제 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습니다. 알뜰주유소가 4대 브랜드에 이어 제5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좀 더 고객 중심의 마인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지식경제부에서도 앞으로 알뜰주유소 담당부서 인원을 두 배로 늘려 유지보수 담당인원을 확충한다고 하니 변화를 기대해봐야겠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알뜰주유소 전환 시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기존 계약을 이용한 정유사의 견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고, 정부의 허술한 정책과 정유사에 의존하는 공급방안도 문제입니다. 다음 달 내려질 첫 소송의 결과와 함께, 품질 관리와 공급선 다변화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알뜰주유소가 올해 목표인 1천호점 도달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