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증시 과연 ‘성장의 덫(growth trap)’에 빠지나?
우리 경제 성장세가 급속히 둔화되고 있다. 대부분 예측기관들은 올해 성장률은 2% 중반, 내년에는 3%대 초반으로 내다봤다. 현재 우리 경제 잠재성장률이 3.7%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GDP갭⑴상으로 올해는 1% 포인트, 내년에도 0.5% 포인트 2년 연속 디플레 갭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자연스럽게 우리 경제 앞날과 관련해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단기적으로 연착륙과 경착륙 간의 논쟁 속에 갈수록 후자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장기적으로 지속 성장 여부와 관련해서는 ‘성장의 덫(growth trap)`에 걸릴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성장의 덧’이란 개발도상국이나 신흥국들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유치단계의 이점을 누리면서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중진국 수준에 와서는 어느 순간에 성장이 장기간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현상을 말한다. 1인당 소득으로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으로 분류할 때 한국은 아직까지 중진국으로 분류된다.
역사적으로 ‘성장의 덫’에 빠져 경제발전 단계가 다시 후퇴했던 국가들은 의외로 많았다. 197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 등과 같은 중남미 국가들은 전형적인 ‘성장의 덫’에 빠져 ‘종속이론’이 탄생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동남아 국가들도 필리핀 등은 ‘성장의 덫’에 빠져 아직까지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정국이 ‘성장의 덫’에 빠지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으나 경험국의 사례를 볼 때 비교적 보편적인 성격을 갖는 네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짧은 기간 안에 성장단계를 일정수준 끌어올리는 이른바 압축 성장(reduce growth)을 주도하는 경제 각료들의 사고가 경직적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경제운영체계도 소득이 일정수준 도달할 때 임금상승 등 ‘고(高)비용-저(低)효율 구조로 바뀔 때 시장경제 도입 등을 통한 생산성 혹을 효율성 제고에 소홀히 한 것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동일한 맥락이 되겠지만 산업구조 전환도 선진국의 첨단기술과 인력도입 등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초기 단계에 성장을 주도했던 주력산업을 고집한 것도 원인이다.
경제와 사회에 대한 통제력도 약화돼 정치적 포퓰리즘이 성행하면서 노조 등 경제주체들의 분출되는 욕구를 쉽게 수용한 것도 한편으로 경제주체들의 의욕을 꺾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고비용-저효율 경제구조를 빠르게 정착시켰다. 특히 우리 경제처럼 부존자원이 부족한 국가일수록 성장을 정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론적으로 우리 경제처럼 뒤늦게 경제발전에 참여한 국가들은 ‘외연적 단계(extensive growth path)’에서 ‘내연적 단계(intensive growth path)’로 이행되는 것이 정형적인 성장경로다. 전자는 개발 초기에 노동 등 생산요소의 양적인 투입을 통해 성장하는 국면을, 후자는 일정시점 이후 생산요소와 경제시스템의 효율성을 제고시켜 성장하는 단계를 말한다.
이미 오래됐지만 우리 경제는 개발 시작 이후 주력산업이었던 제조업의 생산여건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우리의 제조업 비중은 30.1%로 한 단계 낮은 브라질 23.4%, 러시아 29.7%, 인도 21.0%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현재 서비스 산업으로의 경제구조 전환을 서두르고 있으나 과도기에는 제조업이 받쳐줘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제조업 환경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것은 낮은 출산율로 생산가능인구. 특히 청년층들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한국은 ‘루이스 전환점’⑵에 도달한지 오래됐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외국인 인력에 의해 부분적으로 보완되고 있으나 인력수요와 공급 간의 불일치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만성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노동력에 이어 생산에 필요한 자본도 저축률 하락 등으로 갈수록 성장률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축률이 하락하는 요인으로 정치권의 포퓰리즘적인 사회보장지출 확대, 가계는 사회안전망 강화에 따른 예비적 동기의 저축필요성 감소와 소비여건 개선 등이 지적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우리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높아진 국제위상에 맞게 내수시장이 발전되지 않음에 따라 통상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기업 간 불균형이 심화된 상황에서 특정기업의 경우 세계 최고의 반열 위에 올라간 것에 따른 착시현상까지 겹치면서 한국 기업들이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통상마찰의 표적이 되고 있는 점도 우리 경제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경제가 장기간 침체국면에 빠져들 때 겪었던 고질적인 5대 함정이 우리 경제 내부에서 나타나면서 ‘일본화(Japanization)`에 대한 우려도 가세되고 있다. 5대 함정이란 무엇보다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주체들이 반응하지 않아 모든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정책함정(policy trap)`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경기부양 방안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화정책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정책과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주체들이 과도한 부채에 시달려 소비나 투자를 하지 못하는 `빚의 함정(debt trap)`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문제도 최종 목표인 경쟁력 개선여부와 관계없이 구호만 반복적으로 외치는 `구조조정 함정(structure trap)`에 빠져 있는 점도 동일한 맥락에서 나오는 우려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확실성은 증대돼 예측기관들이 전망이 또 다른 전망을 불러일으키는 `불확실성 함정(uncertainty trap)`에 빠지게 된다.
최근 우리 경제 움직임을 보면 5대 함정과 이에 따른 ‘일본화(Japanization)’에 대한 우려가 충분히 나올 만한 상황이다. 정책당국이나 정책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신뢰가 종전만 못하다. 일부에서는 우리도 일본처럼 아무리 좋은 정책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정책 수용층은 정작 반응하지 않는 ‘좀비 국면’을 우려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는 이미 적정수준 밑으로 떨어졌다. 유동성 조절정책도 최근처럼 통화승수⑶, 통화유통속도⑷와 같은 경제활력지표가 떨어진 상황에서는 앞으로 추가적으로 돈을 공급한다 하더라도 경기회복에 별다른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시각이 갈수록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나라 살림과 국민들의 빚은 위험수위에 도달했기 때문에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 이 때문에 국내 예측기관들은 직전 전망치의 잉크가 채 굳기도 전에 또 다른 전망치를 내놓기에 바쁘고 최소한 6개월 원칙을 지켰던 전망시점도 2개월로 단축됐다.
앞으로 우리 경제가 성장률 둔화와 함께 제기되는 ‘성장의 덫’의 우려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독자적인 방안이 많다 하더라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이끌어 가는 국가들의 성장동인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 대외환경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새로운 성장전략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글로벌 추세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한계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 한 것은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형성되는 대외환경을 보면 상품과 돈의 흐름에 공정한 경쟁의 틀(level playing field)이 마련될수록 각국 간의 성장에 있어서는 차별화(nifty fifty)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점이다. 비단 이 같은 현상은 국가 뿐만 아니라 기업 간에는 더 심하게 나타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이끌어가거나 위기를 빨리 극복하는 국가들은 거시정책 기조가 분배보다는 성장을 우선하는 국가일수록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상대적으로 분배 요구와 노조가 강한 국가는 성장률이 낮은 점이 먼저 눈에 띤다. 올해 12월에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 경제 내부에서 마치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쟁에 대한 해외 시각은 곱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제운영 원리로 정부의 간섭은 최소한에 그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주체들에게 창의와 경쟁을 최대한 북돋는 국가일수록 고성장한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 정도가 커지고 있으나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이은 ‘친기업 정책’과 ‘작은 정부론’임을 환기시키는 대목이다.
단순히 인구가 많은 국가가 아니라 경제연령을 젊게 유지하는 국가일수록 성장세가 빨라지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요즘처럼 공급과잉시대에 있어서는 한 나라의 성장은 시장규모와 상품흡수 능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등이 이민정책에 적극적인 입장으로 변하고 있는 것도 이 맥락에서 보면 쉽게 이해된다.
부존자원이 많은 국가들도 성장률이 높다. 산업별로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통신(IT) 산업이 강한 국가들도 자원부족 문제를 메워줄 수 있기 때문에 성장세가 빠르다. 하지만 제조업을 받쳐주지 않을 경우 경기 사이클이 단기화되는 점은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IT산업도 제조업이 받쳐줘야 경제안정과 지속 성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영어 공용권에 속하는 국가일수록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한때 컴퓨터 등을 이용한 통역기술 발달로 영어 공용권의 정체설이 있었으나 오히려 늘어남에 따라 글로벌 시대에서는 세계를 대상으로 비즈니스할 능력이 중요해 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글로벌 추세는 갈수록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환경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금융위기 이후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거나 빠르게 부상하는 국가들의 성장동인을 감안해 새로운 성장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특히 우리 경제의 경우 정치권과 정책당국의 ‘마라도나 효과’⑸가 절실하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정책 수용층이 알아서 행동하면 ‘성장의 덫’의 우려와 같은 당면한 현안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우리 경제 성장세가 급속히 둔화되고 있다. 대부분 예측기관들은 올해 성장률은 2% 중반, 내년에는 3%대 초반으로 내다봤다. 현재 우리 경제 잠재성장률이 3.7%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GDP갭⑴상으로 올해는 1% 포인트, 내년에도 0.5% 포인트 2년 연속 디플레 갭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자연스럽게 우리 경제 앞날과 관련해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단기적으로 연착륙과 경착륙 간의 논쟁 속에 갈수록 후자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장기적으로 지속 성장 여부와 관련해서는 ‘성장의 덫(growth trap)`에 걸릴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성장의 덧’이란 개발도상국이나 신흥국들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유치단계의 이점을 누리면서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중진국 수준에 와서는 어느 순간에 성장이 장기간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현상을 말한다. 1인당 소득으로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으로 분류할 때 한국은 아직까지 중진국으로 분류된다.
역사적으로 ‘성장의 덫’에 빠져 경제발전 단계가 다시 후퇴했던 국가들은 의외로 많았다. 197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 등과 같은 중남미 국가들은 전형적인 ‘성장의 덫’에 빠져 ‘종속이론’이 탄생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동남아 국가들도 필리핀 등은 ‘성장의 덫’에 빠져 아직까지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정국이 ‘성장의 덫’에 빠지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으나 경험국의 사례를 볼 때 비교적 보편적인 성격을 갖는 네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짧은 기간 안에 성장단계를 일정수준 끌어올리는 이른바 압축 성장(reduce growth)을 주도하는 경제 각료들의 사고가 경직적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경제운영체계도 소득이 일정수준 도달할 때 임금상승 등 ‘고(高)비용-저(低)효율 구조로 바뀔 때 시장경제 도입 등을 통한 생산성 혹을 효율성 제고에 소홀히 한 것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동일한 맥락이 되겠지만 산업구조 전환도 선진국의 첨단기술과 인력도입 등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초기 단계에 성장을 주도했던 주력산업을 고집한 것도 원인이다.
경제와 사회에 대한 통제력도 약화돼 정치적 포퓰리즘이 성행하면서 노조 등 경제주체들의 분출되는 욕구를 쉽게 수용한 것도 한편으로 경제주체들의 의욕을 꺾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고비용-저효율 경제구조를 빠르게 정착시켰다. 특히 우리 경제처럼 부존자원이 부족한 국가일수록 성장을 정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론적으로 우리 경제처럼 뒤늦게 경제발전에 참여한 국가들은 ‘외연적 단계(extensive growth path)’에서 ‘내연적 단계(intensive growth path)’로 이행되는 것이 정형적인 성장경로다. 전자는 개발 초기에 노동 등 생산요소의 양적인 투입을 통해 성장하는 국면을, 후자는 일정시점 이후 생산요소와 경제시스템의 효율성을 제고시켜 성장하는 단계를 말한다.
이미 오래됐지만 우리 경제는 개발 시작 이후 주력산업이었던 제조업의 생산여건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우리의 제조업 비중은 30.1%로 한 단계 낮은 브라질 23.4%, 러시아 29.7%, 인도 21.0%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현재 서비스 산업으로의 경제구조 전환을 서두르고 있으나 과도기에는 제조업이 받쳐줘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제조업 환경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것은 낮은 출산율로 생산가능인구. 특히 청년층들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한국은 ‘루이스 전환점’⑵에 도달한지 오래됐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외국인 인력에 의해 부분적으로 보완되고 있으나 인력수요와 공급 간의 불일치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만성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노동력에 이어 생산에 필요한 자본도 저축률 하락 등으로 갈수록 성장률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축률이 하락하는 요인으로 정치권의 포퓰리즘적인 사회보장지출 확대, 가계는 사회안전망 강화에 따른 예비적 동기의 저축필요성 감소와 소비여건 개선 등이 지적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우리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높아진 국제위상에 맞게 내수시장이 발전되지 않음에 따라 통상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기업 간 불균형이 심화된 상황에서 특정기업의 경우 세계 최고의 반열 위에 올라간 것에 따른 착시현상까지 겹치면서 한국 기업들이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통상마찰의 표적이 되고 있는 점도 우리 경제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경제가 장기간 침체국면에 빠져들 때 겪었던 고질적인 5대 함정이 우리 경제 내부에서 나타나면서 ‘일본화(Japanization)`에 대한 우려도 가세되고 있다. 5대 함정이란 무엇보다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주체들이 반응하지 않아 모든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정책함정(policy trap)`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경기부양 방안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화정책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정책과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주체들이 과도한 부채에 시달려 소비나 투자를 하지 못하는 `빚의 함정(debt trap)`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문제도 최종 목표인 경쟁력 개선여부와 관계없이 구호만 반복적으로 외치는 `구조조정 함정(structure trap)`에 빠져 있는 점도 동일한 맥락에서 나오는 우려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확실성은 증대돼 예측기관들이 전망이 또 다른 전망을 불러일으키는 `불확실성 함정(uncertainty trap)`에 빠지게 된다.
최근 우리 경제 움직임을 보면 5대 함정과 이에 따른 ‘일본화(Japanization)’에 대한 우려가 충분히 나올 만한 상황이다. 정책당국이나 정책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신뢰가 종전만 못하다. 일부에서는 우리도 일본처럼 아무리 좋은 정책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정책 수용층은 정작 반응하지 않는 ‘좀비 국면’을 우려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는 이미 적정수준 밑으로 떨어졌다. 유동성 조절정책도 최근처럼 통화승수⑶, 통화유통속도⑷와 같은 경제활력지표가 떨어진 상황에서는 앞으로 추가적으로 돈을 공급한다 하더라도 경기회복에 별다른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시각이 갈수록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나라 살림과 국민들의 빚은 위험수위에 도달했기 때문에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 이 때문에 국내 예측기관들은 직전 전망치의 잉크가 채 굳기도 전에 또 다른 전망치를 내놓기에 바쁘고 최소한 6개월 원칙을 지켰던 전망시점도 2개월로 단축됐다.
앞으로 우리 경제가 성장률 둔화와 함께 제기되는 ‘성장의 덫’의 우려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독자적인 방안이 많다 하더라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이끌어 가는 국가들의 성장동인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 대외환경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새로운 성장전략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글로벌 추세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한계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 한 것은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형성되는 대외환경을 보면 상품과 돈의 흐름에 공정한 경쟁의 틀(level playing field)이 마련될수록 각국 간의 성장에 있어서는 차별화(nifty fifty)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점이다. 비단 이 같은 현상은 국가 뿐만 아니라 기업 간에는 더 심하게 나타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이끌어가거나 위기를 빨리 극복하는 국가들은 거시정책 기조가 분배보다는 성장을 우선하는 국가일수록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상대적으로 분배 요구와 노조가 강한 국가는 성장률이 낮은 점이 먼저 눈에 띤다. 올해 12월에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 경제 내부에서 마치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쟁에 대한 해외 시각은 곱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제운영 원리로 정부의 간섭은 최소한에 그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주체들에게 창의와 경쟁을 최대한 북돋는 국가일수록 고성장한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 정도가 커지고 있으나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이은 ‘친기업 정책’과 ‘작은 정부론’임을 환기시키는 대목이다.
단순히 인구가 많은 국가가 아니라 경제연령을 젊게 유지하는 국가일수록 성장세가 빨라지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요즘처럼 공급과잉시대에 있어서는 한 나라의 성장은 시장규모와 상품흡수 능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등이 이민정책에 적극적인 입장으로 변하고 있는 것도 이 맥락에서 보면 쉽게 이해된다.
부존자원이 많은 국가들도 성장률이 높다. 산업별로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통신(IT) 산업이 강한 국가들도 자원부족 문제를 메워줄 수 있기 때문에 성장세가 빠르다. 하지만 제조업을 받쳐주지 않을 경우 경기 사이클이 단기화되는 점은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IT산업도 제조업이 받쳐줘야 경제안정과 지속 성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영어 공용권에 속하는 국가일수록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한때 컴퓨터 등을 이용한 통역기술 발달로 영어 공용권의 정체설이 있었으나 오히려 늘어남에 따라 글로벌 시대에서는 세계를 대상으로 비즈니스할 능력이 중요해 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글로벌 추세는 갈수록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환경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금융위기 이후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거나 빠르게 부상하는 국가들의 성장동인을 감안해 새로운 성장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특히 우리 경제의 경우 정치권과 정책당국의 ‘마라도나 효과’⑸가 절실하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정책 수용층이 알아서 행동하면 ‘성장의 덫’의 우려와 같은 당면한 현안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