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대 인생특강,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3회. 모범생이라는 불리는 아이들의 어두운 이면
스물일곱 살인 제시카는 지금까지 학교생활을 성공적으로 해왔고, 갓 진출한 직업 세계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제시카는 명문 사립학교와 대학을 졸업했고, 최고 수준의 대학원을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다. 그녀를 채용하고 싶어 하는 여러 회사들로부터 이미 채용 제의도 받은 바 있다. 그녀는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까지 운동과 학업, 모든 면에서 인기 스타였다. 하지만 제시카는 스스로를 모범생이나 스포츠우먼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사실 그녀의 삶에서 여행을 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이외에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활동은 없었다.
영국 웰링턴대학교의 학장 앤서니 셀던(Anthony Seldon)은 최근 한 신문 칼럼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우울증과 과다한 강박감은 거의 유행병 수준에 이르렀다. 런던 중심부 할리 가의 한 정신과 의사는 런던대학교에서 학업 성적이 매우 뛰어난 학생들 중 다섯 명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했다. 너무나 많은 대학생들이 역경을 헤쳐 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최근 미국에서 수행된 연구들은 학부생 중 45퍼센트가 심각한 우울증 징조를 보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세상이 미쳤다.”
임상심리학자 매들린 레빈(Madeline Levine)은 ‘단절의 세대와 불행한 아이들’을 주제로 한 최근의 저서에서 자신이 진료했던 십대들에게서 관찰된 내적 공허감의 유형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십대 중 몇몇은 심각한 자기 파괴적 행동을 보였다.
교육 기고가 로라 파파노(Laura Pappano)는 청소년들이 중고등학교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성취했지만 대학에서는 자신의 관심을 지속시킬 만한 도전이 아닌 허탈함만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 실린 파파노가 최상위권 학생들에 대해 연대기 형식으로 기록한 이야기인 “믿기지 않는 아이들”에서 한 MIT 학생은 여가 시간이면 수구, 서핑, 텔레비전 시청을 한다고 답했다.
파파노는 엘리트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장기적인 관심사를 단기간 내에 성취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점차 증가해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이런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압박을 가하지 않는 교육 시스템이 지닌 문제점을 제기했다. 파파노는 한 고위 교육행정가의 언급을 인용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대학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하도록 압박합니다. 그렇다면 입학 허가를 받고 나서는 뭘 할 겁니까?”
하지만 나는 다른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만약 그들이 무엇을 왜 성취하고자 하는지 좀 더 잘 이해했다면 대학에 가서도 동기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 학생들이 청소년기에 좋은 성적이나 상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인생에서 중요한 목적을 찾았다면 대학에 들어가서도 잘 적응했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목적을 더 잘 성취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데 더 열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대학 시절 인생의 목적을 찾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부정적인 심리적 영향에는 근거가 있다. 겉보기에는 성공적이지만 불행하게도 목표가 없는 젊은이들은 예상치 않은 때 자기 파괴적 행동을 드러낼 수 있다. 해마다 높은 성취도를 보이는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고, 그중 상당수가 실제로 자살에 이른다.
청소년과 청년층의 자살에 대한 가장 최근의 보고에서 미국 질병관리국(U.S.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은 청소년과 청년층의 자살률이 2004년에 비해 8퍼센트 증가한 것으로 기록했다. 이 수치는 최근 15년 이상의 기록 중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최근 고등교육의 전당인 대학교에서 학생들의 자살 위험에 대한 염려가 점증하고 있다. 대학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상담가들은 학업과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라고 말한다. 나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전적으로 이해하지만 이러한 ‘스트레스’ 가설을 납득할 수 없다. 학업과 경쟁에 대한 부담감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면 이들의 영혼을 파괴할 수 없다.
2005년 PBS 다큐멘터리, <단계적 쇠퇴Declining by Degrees>는 오늘날 대학생들 사이에서 만연하는 환멸, 목적으로부터의 이탈 현상을 다루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는 모습, 주중 몇 날 밤을 파티로 보내는 모습, 4년제 대학 교육을 받는 동안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목적은 고등교육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학생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의 시각을 통해 우리는 대학 교육 시스템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추론할 수 있다. 이 학생들은(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또는 더 나은 학점을 얻기 위해 좀처럼 책을 펴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꽤 좋은 학점을 취득하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보게 되는 끔찍한 환경들을 생각한다면 이렇듯 좋은 환경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학생들이 도대체 왜 삶에서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지 상상하기가 힘들다. 과거에 몇몇 교육자들은 이 부족한 요소로 ‘동기’를 꼽았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동기의 원천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 바로 목적의식의 부족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목적의 부재는 행복과 만족스러운 삶을 근본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
<윌리엄 데이먼 스탠포드대 윤리교육학 교수>
스물일곱 살인 제시카는 지금까지 학교생활을 성공적으로 해왔고, 갓 진출한 직업 세계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제시카는 명문 사립학교와 대학을 졸업했고, 최고 수준의 대학원을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다. 그녀를 채용하고 싶어 하는 여러 회사들로부터 이미 채용 제의도 받은 바 있다. 그녀는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까지 운동과 학업, 모든 면에서 인기 스타였다. 하지만 제시카는 스스로를 모범생이나 스포츠우먼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사실 그녀의 삶에서 여행을 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이외에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활동은 없었다.
영국 웰링턴대학교의 학장 앤서니 셀던(Anthony Seldon)은 최근 한 신문 칼럼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우울증과 과다한 강박감은 거의 유행병 수준에 이르렀다. 런던 중심부 할리 가의 한 정신과 의사는 런던대학교에서 학업 성적이 매우 뛰어난 학생들 중 다섯 명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했다. 너무나 많은 대학생들이 역경을 헤쳐 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최근 미국에서 수행된 연구들은 학부생 중 45퍼센트가 심각한 우울증 징조를 보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세상이 미쳤다.”
임상심리학자 매들린 레빈(Madeline Levine)은 ‘단절의 세대와 불행한 아이들’을 주제로 한 최근의 저서에서 자신이 진료했던 십대들에게서 관찰된 내적 공허감의 유형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십대 중 몇몇은 심각한 자기 파괴적 행동을 보였다.
교육 기고가 로라 파파노(Laura Pappano)는 청소년들이 중고등학교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성취했지만 대학에서는 자신의 관심을 지속시킬 만한 도전이 아닌 허탈함만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 실린 파파노가 최상위권 학생들에 대해 연대기 형식으로 기록한 이야기인 “믿기지 않는 아이들”에서 한 MIT 학생은 여가 시간이면 수구, 서핑, 텔레비전 시청을 한다고 답했다.
파파노는 엘리트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장기적인 관심사를 단기간 내에 성취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점차 증가해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이런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압박을 가하지 않는 교육 시스템이 지닌 문제점을 제기했다. 파파노는 한 고위 교육행정가의 언급을 인용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대학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하도록 압박합니다. 그렇다면 입학 허가를 받고 나서는 뭘 할 겁니까?”
하지만 나는 다른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만약 그들이 무엇을 왜 성취하고자 하는지 좀 더 잘 이해했다면 대학에 가서도 동기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 학생들이 청소년기에 좋은 성적이나 상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인생에서 중요한 목적을 찾았다면 대학에 들어가서도 잘 적응했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목적을 더 잘 성취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데 더 열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대학 시절 인생의 목적을 찾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부정적인 심리적 영향에는 근거가 있다. 겉보기에는 성공적이지만 불행하게도 목표가 없는 젊은이들은 예상치 않은 때 자기 파괴적 행동을 드러낼 수 있다. 해마다 높은 성취도를 보이는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고, 그중 상당수가 실제로 자살에 이른다.
청소년과 청년층의 자살에 대한 가장 최근의 보고에서 미국 질병관리국(U.S.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은 청소년과 청년층의 자살률이 2004년에 비해 8퍼센트 증가한 것으로 기록했다. 이 수치는 최근 15년 이상의 기록 중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최근 고등교육의 전당인 대학교에서 학생들의 자살 위험에 대한 염려가 점증하고 있다. 대학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상담가들은 학업과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라고 말한다. 나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전적으로 이해하지만 이러한 ‘스트레스’ 가설을 납득할 수 없다. 학업과 경쟁에 대한 부담감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면 이들의 영혼을 파괴할 수 없다.
2005년 PBS 다큐멘터리, <단계적 쇠퇴Declining by Degrees>는 오늘날 대학생들 사이에서 만연하는 환멸, 목적으로부터의 이탈 현상을 다루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는 모습, 주중 몇 날 밤을 파티로 보내는 모습, 4년제 대학 교육을 받는 동안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목적은 고등교육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학생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의 시각을 통해 우리는 대학 교육 시스템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추론할 수 있다. 이 학생들은(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또는 더 나은 학점을 얻기 위해 좀처럼 책을 펴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꽤 좋은 학점을 취득하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보게 되는 끔찍한 환경들을 생각한다면 이렇듯 좋은 환경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학생들이 도대체 왜 삶에서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지 상상하기가 힘들다. 과거에 몇몇 교육자들은 이 부족한 요소로 ‘동기’를 꼽았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동기의 원천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 바로 목적의식의 부족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목적의 부재는 행복과 만족스러운 삶을 근본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
<윌리엄 데이먼 스탠포드대 윤리교육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