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대 인생특강,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6회. ‘왜’라는 질문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목적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단어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 그 단어가 암시하는 미묘한 차이를 내포하는 정의를 사용하여 정확한 뜻을 얼버무릴 수 있다. 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정의가 근본적으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바를 명료하게 전달해주는가도 명확하지가 않다. 이렇듯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단어들은 여러 의미로 사용될 수 있으나, 주의 깊은 분석을 위해 정확한 하나의 정의를 선택하고 이를 고수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과학적 연구들에 대한 리뷰에서 수년간 인간 발달에 관한 연구들이 목적을 정의해 온 방식에 대해 대략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용어를 갈고 닦아 다음과 같은 정의에 도달했다.
목적은 자신에게 의미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넘어선 세상을 위해 중대한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안정적이고 일반화된 의도다. 나는 이 정의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핵심적인 사항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이 정의를 선택했다. 첫째, 목적은 일상생활에서 그때그때 이루고자 하는 단기간의 목표에서 더 나아가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추구되고, 보다 안정적인 것이다. 둘째, 목적은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의미를 찾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수행하지만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반드시 개인적인 의미와 그 뜻을 같이하지는 않는다.
목적은 자신을 넘어선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이다. 타인에게 무언가 공헌하고자 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고,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내포한다.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인 것, 외부적이거나 내부적인 것, 혹은 현실적이거나 순수하게 이상적인 것 모두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될 수 있다. 많은 경우 목적은 생애를 마칠 때까지 성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빈곤 퇴치, 세계 평화와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의 생애 동안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야심찬 목표가 꼭 순진무구한 것만은 아니다. 많은 경우 이러한 야심찬 목표들은 강력하게 실천하고자 하는 동기의 원천이 된다.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나? 왜 이 일은 나에게, 그리고 이 세계에 중요한가? 왜 이 목표를 성취하려고 노력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순간적인 목표와 동기를 넘어서 삶의 이유가 된다. 목표와 동기는 항상 변한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거나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일 등은 단기적인 목표이지 궁극적인 관심사는 아니다. 더 중요한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목적은 그 자체가 마지막 목표이고, 단기적 목표를 이끄는 궁극적인 관심사다.
예컨대 “나는 열심히 공부해 의대에 가고 싶어. 의사가 되어 환자들을 돌볼 거야” 또는 “나는 돈을 벌고 싶어. 기업가가 되어 훌륭한 기업을 세울 거야”와 같은 것들이 궁극적 관심사, 곧 목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 목표와 장기적인 더 큰 목적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여러 연구들을 통해 증명된 사실은 장기적 목적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단기적 목표와 동기는 나아갈 방향을 잃고 곧 방향 없는 목표로 전락해버린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말라리아의 확산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돕는 일과 같이, 목적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고 야심찬 것일 수 있다. 또는 좋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겠다는 식의 좀 더 무난하고 친숙한 것일 수도 있다. 목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더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목적은 최소한 행동으로 실천하고, 성취와 진보를 위해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며 지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목적을 추구하는 일은 전 생애를 걸쳐 체계화될 수 있고, 삶에 의미와 활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왜 우리가 배우고 성취해야 하는지 동기를 부여한다.
나는 삶에서 목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동안 수행해온 인간 발달 연구를 통해 발견한 여러 핵심적인 통찰을 꼭 언급하고 싶다. 여러 해 전 발달이론의 대가로부터 받은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 가르침은 청소년 발달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윌리엄 데이먼 스탠포드대 윤리교육학 교수>
목적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단어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 그 단어가 암시하는 미묘한 차이를 내포하는 정의를 사용하여 정확한 뜻을 얼버무릴 수 있다. 또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정의가 근본적으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바를 명료하게 전달해주는가도 명확하지가 않다. 이렇듯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단어들은 여러 의미로 사용될 수 있으나, 주의 깊은 분석을 위해 정확한 하나의 정의를 선택하고 이를 고수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과학적 연구들에 대한 리뷰에서 수년간 인간 발달에 관한 연구들이 목적을 정의해 온 방식에 대해 대략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용어를 갈고 닦아 다음과 같은 정의에 도달했다.
목적은 자신에게 의미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넘어선 세상을 위해 중대한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안정적이고 일반화된 의도다. 나는 이 정의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핵심적인 사항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이 정의를 선택했다. 첫째, 목적은 일상생활에서 그때그때 이루고자 하는 단기간의 목표에서 더 나아가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추구되고, 보다 안정적인 것이다. 둘째, 목적은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의미를 찾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수행하지만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반드시 개인적인 의미와 그 뜻을 같이하지는 않는다.
목적은 자신을 넘어선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이다. 타인에게 무언가 공헌하고자 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고,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내포한다.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인 것, 외부적이거나 내부적인 것, 혹은 현실적이거나 순수하게 이상적인 것 모두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될 수 있다. 많은 경우 목적은 생애를 마칠 때까지 성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빈곤 퇴치, 세계 평화와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의 생애 동안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야심찬 목표가 꼭 순진무구한 것만은 아니다. 많은 경우 이러한 야심찬 목표들은 강력하게 실천하고자 하는 동기의 원천이 된다.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나? 왜 이 일은 나에게, 그리고 이 세계에 중요한가? 왜 이 목표를 성취하려고 노력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순간적인 목표와 동기를 넘어서 삶의 이유가 된다. 목표와 동기는 항상 변한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거나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일 등은 단기적인 목표이지 궁극적인 관심사는 아니다. 더 중요한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목적은 그 자체가 마지막 목표이고, 단기적 목표를 이끄는 궁극적인 관심사다.
예컨대 “나는 열심히 공부해 의대에 가고 싶어. 의사가 되어 환자들을 돌볼 거야” 또는 “나는 돈을 벌고 싶어. 기업가가 되어 훌륭한 기업을 세울 거야”와 같은 것들이 궁극적 관심사, 곧 목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 목표와 장기적인 더 큰 목적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여러 연구들을 통해 증명된 사실은 장기적 목적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단기적 목표와 동기는 나아갈 방향을 잃고 곧 방향 없는 목표로 전락해버린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말라리아의 확산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돕는 일과 같이, 목적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고 야심찬 것일 수 있다. 또는 좋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겠다는 식의 좀 더 무난하고 친숙한 것일 수도 있다. 목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더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목적은 최소한 행동으로 실천하고, 성취와 진보를 위해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며 지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목적을 추구하는 일은 전 생애를 걸쳐 체계화될 수 있고, 삶에 의미와 활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왜 우리가 배우고 성취해야 하는지 동기를 부여한다.
나는 삶에서 목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동안 수행해온 인간 발달 연구를 통해 발견한 여러 핵심적인 통찰을 꼭 언급하고 싶다. 여러 해 전 발달이론의 대가로부터 받은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 가르침은 청소년 발달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윌리엄 데이먼 스탠포드대 윤리교육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