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임사

입력 2013-03-1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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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와 산하기관 임직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근로자와 구직자, 경영자 및 노동운동 지도자 여러분!

부족함이 많은 제가 여러분의 도움과 성원 덕분에 격동의 31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한 사람의 국민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와 함께 노고를 아끼지 않은 직원 여러분,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우리는, 지난 5년간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속에서도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그리고 위기 이전보다 더 고용사정이 개선되었다는 평가를 OECD, ILO, World Bank 등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 국민의 기대에는 여전히 못 미치나, 우리 노사민정이 합심하여 추진한 Job Sharing 방안이나 일자리 중심의 국정운영 등에 대하여 ILO가 이례적으로 ‘한국고용정책보고서를 편찬하고 회원국에 보급’하는 등 글로벌 고용노동정책을 선도하는 본보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노사관계의 해묵은 숙제였던 복수노조를 실시하고 근로시간면제제도 마련으로 노조의 민주성과 자주성을 위한 초석도 다졌습니다.

법과 원칙의 바탕 위에서 노사자율 해결기조가 정착되어 개별 노사분규에 정부가 타율적으로 성급하게 개입하여 ‘팔 비틀기식 미봉책’으로 접근하지 않게 되었고, 문제를 잘 아는 당사자 스스로 근원적으로 풀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지원하는 등 선진국형 합리적 노사관계가 늘어가고 있는 점도 여러분과 함께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그 외에도 여러분과 함께 이룬 과업은 많지만,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의미가 더 선명하게 될 것이므로 일일이 예를 들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점도 남아있습니다.

출발은 선의로 했으되 결과는 비정규직의 양산을 촉진하는 모순적 상황을 초래하는 기간제법상 비현실적 기간제한 조항을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해 개선하지 못한 점, 유해위험작업을 포함한 간접고용의 증가 양상, 존중해야할 상대방임에도 멀리 그리고 함께 가야하는 동반자로 인정하기를 두려워하거나 거부하는 사례, 법을 무시하며 떼법으로 버티면서 정치권의 직접 개입을 종용하거나 일반 조합원에 대한 서비스보다 소수집단의 이익을 위해 서로 담합하는 행태 등은 정말 저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공직생활을 회고해 보면 옛날 제가 존경하는 상사께서 “과장은 국장의 시각에서 한 단계 높여 일할 테니, 사무관은 과장 입장에서 일하자”고 주문하셨을 때 “중앙부처에서 직급 불문하고 각자 마음속으로 최종 의사결정권자처럼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내어 일해야 하지 않느냐”고 주저없이 말해 잠시 윗분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치기에다 표현방법이 투박해서 그렇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제 진심이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리 자체는 본시 요직이나 한직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며 접근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한 어느 자리에 있건 각각 중요한 미션이 존재하므로 그것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믿고, 나름대로 용감하게 여러 일들을 저질러 왔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필요하다면 잠시 욕 먹는 것 두려워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하려다 보니 “따뜻한 원칙”을 지향하려 했지만 그래도 불가피하게 인간적인 면이 소홀히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직위가 달라지면서 인사권을 행사하게 되었을 때는 근무 평정을 포함한 인사권이 상사로서의 권한행사가 아니라, 관리자로서의 신성한 의무이자 소명이라 생각하고 신상필벌을 하다 보니, 급기야 복도통신으로 ‘얼굴은 우유 빛인데, 인사는 선홍 색’이란 말도 돌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중도하차하지 않고 지금까지 막중한 소임도 무사히 수행할 수 있었으니, 우리 고용노동부는 활짝 열려 있고 합리적 의견은 수용되는 대단히 포용적인 조직문화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건전한 상식을 바탕으로 열정을 바치는 사람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 자랑스런 조국이기에, 우리의 미래는 더욱 희망차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7세기 프로이센의 계몽군주인 프리드리히 2세는 ‘군주는 국가 제1의 머슴’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는 공직자는 당연히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전체 국민만 바라보면서 국리민복을 위해 무한 봉사하는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자세로 후임 장관과 함께 여러분이 뜻과 지혜를 모으면 어떠한 난관도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제 부덕의 소치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분들께는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잘 되도록 성원하겠습니다.

워크홀릭 장관을 만나 꽤나 고생한 직원 여러분들께는 특히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저의 바통을 넘겨드리니 여러분이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제 정책현장에서 물러나 여러분을 믿고 마음 편히 살겠습니다.

7,000여 명의 동료 직원을 포함한 1만9000여 명에 이르는 우리 부와 산하기관 임직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전국의 일터에서 땀 흘려 일하는 1700여만 근로자, 일자리를 구하는 구직자, 하나의 일자리라도 더 만들고 더 좋은 일터가 되게 노력하는 경영자, 건강한 노동운동 지도자, 환경노동위원회 의원과 보좌진 여러분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저의 인생 여정은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졌고 그래서 행복했다고 거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자태에서 묻어나고, 물러나는 이의 모습은 뒤태에서 확인된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입장 곤란하게 하는 부담 드리는 일 없이 살아갈 것입니다.

그간 보내주신 성원에 보답하고 고용노동부와 여러분의 발전을 위해 마음으로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새봄의 싱그러운 햇살을 곱게 바라보면서,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하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

여러분 사랑합니다.

2013년 3월 11일

고용노동부 장관 이 채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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