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脈] '키프로스 구하기(saving)'와 '저축(savings)의 침몰'

최진욱 기자

입력 2013-03-18 16:00   수정 2013-03-1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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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으로 지난 토요일 오전 전격적으로 합의된 키프로스에 대한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방안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키프로스 정부가 요구한 170억유로가 아닌 100억유로의 자금을 지원하는 대가로 키프로스 은행예금자에게 예금액별로 부담금을 지우기로 한 것이다. 이번 결정을 주도한 EU집행위원회와 IMF는 키프로스 의회에 합의안에 대한 즉각적인 통과를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합의안이 알려지면서 키프로스 은행들의 자동화기기(ATM)는 돈을 찾으려는 예금자들로 북새통이 됐다. `뱅크런` 조짐이 발생한 것이다. 현지시간으로 월요일이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그 행렬은 더욱 늘어나면서 이를 지켜보는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합의안 도출 하루 전까지 강경론을 유지했던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EU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 IMF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은행의 근간을 뒤흔들었다는 비난이 늘어나자 소액예금자들에게까지 부담금을 지워서는 안된다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인구 1,100만명, EU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2%에 불과한 이 조그만 섬나라가 왜 글로벌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을까?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키프로스는 2008년 유로화를 공식 통화로 채택했다. 앞서 구제금융을 받았던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과 마찬가지로 현격한 경제력 차이는 결국 키프로스를 벼랑 끝으로 몰았고 2011년말 키프로스 정부는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웃나라 그리스가 문제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키프로스 문제는 잠시 뒤로 미뤄졌다. EU는 유로존이 안정세를 되찾자 지난주 개최된 정상회담과 재무장관 회담을 통해 키프로스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키프로스 은행예금자들에게 사실상의 세금을 물린 것인데 여기에는 유럽인들의 뿌리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키프로스는 고대 지중해 역사에서부터 심심찮게 등장했던 요충지로 현재도 그리스계와 터키계로 나뉘어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지정적한 문제로 수많은 민족들의 흥망성쇠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지난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부터 키프로스는 역외조세피난처 역할을 해왔다. 꼬리표를 달 수 없는 유럽과 근동의 각종 자금이 키프로스로 숨어든 것이다. 유로존 가입 이후에는 여기에 더 가속도가 붙었다는 것이 EU 집행위원회와 주요 회원국의 생각이다.
반면 키프로스 국민들은 올해 독일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총선을 앞두고 자국 투표자들의 표를 잃지 않기 위해 키프로스 정부가 압력을 이기지 못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검은 돈을 가지고 들어와서 즐긴 사람들도 유럽 본토 사람들이고, 경제위기로 내몰았던 사람들도 본토 사람들인데 그 책임을 왜 자신들이 져야하는지를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한번에 구제금융과 검은 돈을 끌어낸다는 명분과 지원국의 부담을 최소화 해야한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문제는 제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어렵게 안정시킨 유로존(초가삼간)을 작은 섬나라(빈대) 때문에 태울 위험까지 내몰 정도로 키프로스의 지하자금 문제가 중요했냐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 극동아시아의 투자자들이 이들의 정서까지 읽어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다만 그 배경을 한꺼풀 벗겨내면 오래된 불신이 이번 사태에도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키프로스가 유로존의 블랙홀이 될 것인지, 찻잔속 태풍이 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키프로스 `구하기(saving)`였다는 EU의 주장과 `저축(savings)의 침몰`이라는 키프로스의 주장에 투자자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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