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인터뷰] '소원' 이준익 감독의 지극히 현실적인 조심스러움

입력 2013-10-0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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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라며 작정하고 만들었나. 영화 ‘소원’(이준익 감독, (주)필름모멘텀 제작)을 관람할 때는 손수건이나 휴지는 필수라는 문구라도 만들어야 될 기세다. 하지만 이준익(54) 감독은 울음을 억지로 유도하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눈물과 감동을 만든다. 상업영화에서 손을 떼겠다고 큰 소리를 치던 이준익이 돌아온 이유는 다 있었다.



이 작품은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소원(이레)이와 소원이의 가족 동훈(설경구) 미희(엄지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껏 숱하게 그려왔던 이야기가 아니다. 범죄자에 대한 분노와 증오, 복수는 없다. 평생 아물지 않을 수도 있는 커다란 아픔 속에서 희망의 씨앗이 움튼다는 가능성을 전한다. 불편하고 아플 것이라는 일각의 견해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못 믿겠다면 극장에서 ‘소원’을 찾아라.

◆ “동화 만들어보자며 시작”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시선은 따가웠다. 왜 다시 이야기를 꺼내느냐며 돌을 던졌다. 하지만 이준익은 꿋꿋했다. 영화 ‘평양성’(11) 이후 상업영화 은퇴를 선언한 이준익이 ‘소원’을 선택했다. 힘들었다. 어떻게 표현을 해야 될지. 조심스러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준익의 유쾌한 화법은 접어 버린 지 오래. 진정성 있게 다가갔다. 그것만이 방법이었다.

“이 소재에 대해 불손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했어요. 공손한 태도요. 은퇴가 아니라 제대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은퇴는 복귀가 되지만 제대는 그걸로 끝이니까. 원래 시사회 전에 친분이 있는 기자들이 인사차 문자를 보내와요. 이번에는 하나도 없었죠. 무서웠어요. 어떻게 하나 싶었어요. 민감한 소재라 그랬던 거예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서 잘 봤다는 문자가 하나씩 오는 거 있죠?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쉬었어요.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서요.”

사실 ‘소원’에서 아동 성폭력은 소재로만 사용된다. 결코 주제로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쏟아지는 시선들은 모두 소재로 향한다. 이준익이 가장 조심스러워했던 것도 그 부분이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뚜렷한 권선징악이 없다. 그래서 돌을 맞을 각오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달랐다. “다행히 돌은 던지지 않을 것 같다”며 안심하는 표정이 무척 사실적이었다.

“차라리 소재와 주제가 일맥상통했다면 이렇게까지 떨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우리 사회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철저하게 복수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죠. 뉴스가 나오면 ‘사형을 시켜야해’라며 도덕적 입장을 내세워요. 피해자들에 대해 정면으로 살펴보지도 않으면서 말이죠. 이 영화를 찍기 전에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순간 우리 생활에서 사라져버린 동화 말이에요.”



◆ “영화는 꿈의 공장”

기자시사회 직후 간담회를 앞두고 배우들의 등장 시간이 길어지는 사태가 발생됐다. 엄마 역을 맡아 몸무게 증량까지 감행한 엄지원은 스모키 화장을 하고 등장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배우들의 눈이 이상하게 부은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현상인가. 영화를 보고 난 후 여운이 가시지 않은 이들의 모습이었다. 그 때 대기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간담회 장소에 들어가기 전 대기실에 들어갔더니 난리가 났어요. 설경구 씨는 물병을 얼굴에 가져다대고 부은 눈을 가라앉히고 있었죠. 엄지원 씨는 사라졌더라고요.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스모키 메이크업을 한거에요. 이게 무슨 일인가 했더니 눈 화장이 많이 번져서 수습이 안 되는 거죠. 어쩔 수 없이 눈 밑에 라인을 그린거래요. 빨리 나오라고 재촉을 하는데 대기실은 난리가 나고 정신없었어요.”

비단 배우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영화관은 눈물바다로 초토화가 됐었다. 소원이와 소원이 아빠의 동화가 되살아나는 순간 감정은 폭발했다. “사람들이 막 왔다 갔다 하더라.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영화가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건가 싶었다. 큰일 났다 했다. 그런데 나갔던 사람들이 손에 휴지를 들고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재미있었다. 내 생각이 그대로 맞아 들어갔거든”이라고 말하기에 고백했다. 영화관에 들어갈 때 이미 휴지를 챙겼다고.

“정말 ‘소원’은 거절하지 못할 시나리오였어요. 전 이미 40대 때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다 했거든요. 이제는 나이도 먹고 그랬으니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좋아요. 뉴스를 보면 현실이 그대로 있어요. 영화는 꿈의 공장이에요. 꿈을 보려면 돈을 내야지. 현실은 공짜잖아요. 꿈속에서 좋은 사람이 나오면 그 꿈에서 깨어나기가 싫잖아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인터뷰를 끝내고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 이제 다시는 어디 간다는 말 하지 마세요.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min@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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