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기적을 믿어요] 6편. 제로의 기적 (2)

입력 2014-01-24 09:36  

2008년 가을, 시에라리온
나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자그마한 유아용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세상에 나온 지 6일밖에 안 된 조그마한 갓난아이가 고통으로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파상풍에 걸린 아이는 가끔 온몸을 부르르 떨며 경련했다. 아이의 콧구멍에는 작은 관이 끼워져 있고 천으로 된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나는 병원 의료진에게 이 아이를 치료할 약이 언제쯤 도착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아, 저희로서는 치료 약을 구할 도리가 없습니다.”
간호사가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네? 구하지 못한다고요? 이유가 뭐죠?”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저 아이의 몸에 있는 독소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항독소 혈청을 구하는 거예요.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많이 알아봤지만 구할 데가 없어요. 저 아이가 살지 죽을지는 하느님의 은총에 달려 있죠. 하지만…, 아무래도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요.”
“전부 알아보신 건가요?”
“시에라리온에 있는 병원을 전부 뒤졌어요.”
갑자기 사방이 콱 막힌 방에 갇힌 기분이었다. 아이가 치료 중이고, 분명히 회복될 거라고만 믿고 있던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러면 이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나요?”
“그건… 누구도 모릅니다. 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그보다 이르거나 늦을 수도 있고요.”
간호사는 그대로 사라졌고 나는 말문이 막힌 채로 굳어버렸다. 이 넓은 나라에 저 갓난아이를 살릴 혈청 하나가 없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시에라리온의 현실이었다. 간호사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 자체가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우리 일행 위로 먹구름이 드리웠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병실에는 창문도 조명도 없어서 칠흑처럼 깜깜했다. 주변 공기마저 매캐했다. 담당 의료진에 따르면, 파상풍에 걸리면 환자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아주 작은 빛만 들어와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소음도 마찬가지고, 미세한 터치도 참기 힘든 통증을 가져온다고 한다. 그 엄마는 아이를 안을 수도 노래를 불러줄 수도 없는 것이다. 그저 무력하게 지켜볼 뿐이다.
아이의 엄마는 실의에 빠져 침대 바로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보라색 스카프로 머리를 감싸고 귀걸이를 했으며 초록색 티셔츠를 입었는데,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작해야 열아홉에서 스무 살 정도 되었을 거라고 들었는데, 고통에 시달려서인지 훨씬 더 늙어 보였다. 첫 번째 아이라서 더 겁에 질려 있는 것 같았다. 혼자 아이를 업고 시골에 있는 진료센터를 찾아왔고, 이쪽으로 이송된 후로 쭉 여기 있었다고 한다.
나는 아이 엄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가까운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녀는 가냘픈 미소를 지어 보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중얼거렸다. 통역의 도움 없이는 전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한 터라 통역 절차를 거치는 것은 별 필요가 없어 보였다. 어쨌거나 이 불쌍한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거의 없을 테니까. 자신이 낳은 아이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는데 그 외의 것들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뭐라 해야 할지, 이때처럼 표현력이 궁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많이 힘드시지요….”
내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는 눈치였지만, 아이 엄마는 계속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몇 분이 흘렀다. 병실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가끔 바로 옆 병동에서 신음소리와 갓난아이의 쌕쌕거리는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고통으로 허물어져 가는 아이 엄마의 손을 잡고 이대로 앉아 있는 것밖에,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상황의 위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몇 번이나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이와 비슷한 순간이 연달아 닥친다. 하지만 내가 사는 뉴욕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상황은 사뭇 다를 것이다. 만약 내 아이가 파상풍 증세를 보였다면, 곧바로 약물을 투여하여 금세 정상인 상태로 되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나는 아이를 쳐다보고 엄마를 쳐다보고 다시 아이를 보았다. 지금 이 젊은 엄마가 어떤 기분일지 헤아리다 보니, 시간이 멈춘 것처럼 머릿속이 멍해졌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도 아프다. 누가 봐도 저 자그마한 갓난아이는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었고 오늘 처음 만나는 나도 그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었다. 그러니 엄마의 속은 얼마나 썩어들고 있으랴. 나는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렇게 몇 분쯤 지났을까, 쌕쌕거리던 아이의 숨소리가 멈추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대 쪽으로 몸을 기울여 자세히 보니 아이는 이미 굳어가고 있었다. 손에 핏기가 사라진 걸로 보아 숨을 거둔 것이 분명했다. 내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아이 엄마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람이 죽는 걸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밖으로 나가야 하나? 아이 엄마한테 얘기해줘야 하나? 사람을 불러야 하나?
그때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서 아기의 손을 잡더니, 잠을 깨우려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드디어 간호사가 아이 엄마에게 죽음을 알리리라는 것을 예상한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아이 엄마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그 깊은 고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내 뒤를 이어 병실에 들어갔던 리사가 아이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울면서 돌아 나왔다. 눈빛 한 번 마주쳐보지 못한, 전혀 모르는 아이였지만 우리는 모두 넋을 잃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력감과 절망이 덮쳐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만약 여기가 미국이었다면 아이는 이대로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만 계속해서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이 아이뿐 아니라 매일 죽어가는 2만 6,000명의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의사든 다른 전문 산파든 분명히 깨끗하게 소독한 기구로 탯줄을 잘랐을 것이고, 설령 아이가 파상풍에 걸렸더라도 약물치료만으로도 호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아이는 태어난 지 6일밖에 되지 않았다. 겨우 6일 말이다. 아이 엄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아이를 살리고 싶었겠지만, 정작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단 한 가지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시에라리온의 실상이었고 나는 도저히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당시 아이의 죽음을 목격하며 느꼈던 공포와 무력감 때문에 매일 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의 숫자를 반드시 제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졌던 것 같다.
충격에 빠진 우리 일행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의사 하나가 우리를 근처 방으로 안내해서 현 상황을 더욱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검은 피부에 작은 체구로,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
“저로서도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입니다.” 그는 주먹을 꽉 쥐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파상풍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고 치료도 쉬운 병입니다. 현재로서는 발작을 줄일 수 있도록 신경안정제의 일종인 발륨을 투약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 저희도 어떻게든 아이들을 살리고 싶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끝나는 건가요?”
“그렇죠. 시에라리온에는 파상풍을 치료할 방법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파상풍에 걸린 신생아는 전부 죽는 거죠.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뭔가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저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예요. 아이들이 없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드디어 떠나야 할 시간이 됐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모두 조금 전에 목격한 끔찍한 장면을 다시 곱씹으며 감정적인 동요를 느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너무나도 짧은 생을 마감한 파티마를 위해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시에라리온에 다녀오고 4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는 그들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파상풍을 근절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을 이뤄냈다. 마침내 4,000만 달러가 넘는 후원금이 모였고, 유니세프의 주도하에 3억 개의 백신을 구매하여 1억 명의 여성과 아이들에게 접종했다.
또한 후원사들 그리고 기부자들과 손잡고 2008년부터 15개가 넘는 나라에 파상풍 예방백신을 제공했다. 콩고, 터키, 모잠비크, 우간다, 미얀마, 세네갈, 라이베리아, 가나, 기니비사우, 동티모르, 탄자니아 등등이다. 이는 우리가 간절히 바랐던 놀라운 발전이다.
게다가 예방이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에 이르던 아이들의 숫자가 1991년 일간 3만 3,000명에 이르던 것이 일간 1만 9,000명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획기적인 개선이지만 이걸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 명의 아이가 다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다. 더욱 끔찍한 것은 약만 있으면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 때문에 사망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망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개발도상국의 하위 20퍼센트를 차지하는 극빈 가정의 아이들이다.
전 세계 아이들의 사망인구 중 절반이 다섯 개 국가에 집중되어있다. 바로 인도, 나이지리아, 콩고공화국, 파키스탄 그리고 중국이다. 유니세프는 이렇게 도움이 절실한 국가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앞으로 더 많은 후원과 헌신이 더해진다면 유니세프는 모든 아이를 도울 수 있다. 유니세프 직원들은 사망률을 ‘줄이는 것’에 그 치지 않을 것이다. ‘제로’가 될 때까지 쉬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