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뿌잉PD의 라디오 토크]'조연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던 시절...

입력 2014-01-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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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만만치 않고 힘든 과정들을 겪고 있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라디오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것에 나름 익숙한 상태가 됐다.

하지만 내가 과연 연출이란 걸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조연출을 하던 시기였는데, 그 땐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가지기 힘들었던 것 같다. 피디란 직업자체가 학교에서 공부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도제식 시스템을 따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연출을 그냥 선배의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이니 조연출은 알고 있는 게 없는 거다.

`아무 것도 몰라요`의 상태에서 바라보는 선배들의 연출은 정말로 대단하다. 따라갈 수 없는 기획력을 발휘하고, 스태프들과 함께할 땐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지며, 그의 한마디가 조연출에게 가지는 무게는 법과도 같다. 무엇하나 더 잘 할 수 없던 조연출 시절은 내게 많은 고민을 던져 주었다.

가장 어려웠던 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의 느낌을 받았을 때다. 조연출은 피디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엔지니어도 아니며, 출연자도 아닌, 뭔가 엄청나게 바쁘게 일을 하며 돌아다니지만, 프로그램에서 언제 없어져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존재였다.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잘 챙겨주더라도 그러하다. 추억할만한 사진 하나 발견되지 않는다.

그 시절 조연출이 연출이 된다고 해결 될 것 같지 않던 산더미 같은 문제들이 있었는데, 아이디어가 기발한 선배처럼, 선곡이 기가 막힌 선배처럼, 섭외력이 뛰어난 선배처럼 시간이 지나면 나도 그렇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이미 모두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아무리 뛰어가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은 단지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어느 순간 연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실제로 내가 서있을 자리는 없었고, 나도 나를 믿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많은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선배들은 `넌 너만의 색깔을 가지고 잘 연출할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작하는 후배에게 그냥 힘을 주기 위한 말이었을 거다.

좋은 선배들의 조언에 힘을 내서 생각한 나만의 해결책은 이런 거였다.

`절대로 대단한 피디 선배들처럼 연출하지 말자!`라는 것이었는데, 내가 더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대선배들보다 못하기에, 선배들이 애써 하지 않았던 것을 조금씩 해봐야한다, 그것이 하찮고 별로라서, 아님 황당해서 실행되지 못했던 것들을 실패하더라도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하면서 거칠고 정리되지 않았기에 또 다른 조언들도 들었지만, 연출인생의 기차에서 `조금은 색깔 있는 피디`로 서있을 수 있는 입석자리 하나 정도는 얻은 것 같다. 그 때 보았던 선배들은 여전히 대단한 연출을 하고 있고 난 여전히 조언을 구하러 다니지만, 나도 어느새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피디가 되었다.

조연출 했던 프로그램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옥주현의 별이 빛나는 밤에>,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오늘의 선곡 <우리는 / 듀스>

글 / 손한서(MBC 라디오 프로듀서), Twitter ID: SohnPD
정리 / 한국경제TV 김주경 기자 show@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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