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W 인터뷰] 박성환 "뮤지컬 '조로'는 선생님 같은 작품"

입력 2014-09-26 10:25   수정 2014-10-07 15:22



뮤지컬 ‘조로’는 초연인 듯 초연 아닌 초연 같은 작품이다. 공연은 마치 올해 처음 무대에 오른 것처럼 능청을 떨며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별 기대 없이 공연을 보러 온 관객도, 초연 무대를 기대하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도 모두 ‘아!’, ‘어!’, ‘와!’ 자연스러운 반응을 내뿜으며 공연에 빠져든다.

배우 박성환은 뮤지컬 ‘조로’에서 악역 중의 악역 ‘라몬’을 연기한다. ‘라몬’은 아무 이유 없이 ‘악’을 일삼는 인물이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절대 ‘악’을 행하지만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매력으로 눈도장을 ‘콕’ 찍고 있다. “성인을 위한 가족극”이라고 작품을 소개한 그와 함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인연이 모여 운명이 되다

뮤지컬 ‘조로’는 2011년 한국 초연됐다. 초연은 조승우, 박건형, 김준현 등이 출연해 한국판 영웅 ‘조로’를 그려냈다. 2014년, 다시 돌아온 ‘조로’는 왕용범 연출의 손을 거쳐 ‘리부트 조로’(Reboot Zorro) 형식으로 재탄생 됐다. 박성환과 뮤지컬 ‘조로’의 인연은 왕용범 연출을 향한 믿음에서 시작됐다. 그가 작품에 참여한 계기는 그동안 쌓아온 인연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이성준 음악감독과 엠뮤지컬아트는 그동안 작품을 많이 해왔다. 그만큼 이들과 신뢰가 쌓였고 믿음도 돈독해졌다. 왕용범 연출의 장점은 기존 라이선스 작품을 가지고 와도 똑같이 무대에 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은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각색되고 난 뒤 무대에 오른다. 연출님의 그런 부분이 믿음을 부추겼다. 그 믿음을 가지고 여기까지 따라오게 됐다.”

창작진을 향한 믿음은 박성환을 뮤지컬 ‘조로’로 이끌었지만 준비과정은 생각처럼 녹록치 않았다. 처음 받은 대본은 1막과 2막이 다 담긴 전체 대본이 아니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았다. 1막 대본으로 진행된 리딩은 예상치 못한 흥미를 선사했다. 당시 리딩은 ‘라몬’ 역에 더블 캐스팅된 조순창 배우가 진행했다. 이를 지켜보던 박성환은 작품의 진짜 재미를 발견하고는 더욱 빠져들었다.

“조순창 배우가 리딩을 하는데 그 순간 ‘굉장히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대본상으로 ‘라몬’은 악역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악연인데 나름 진지하게 하는 대사들이 주변 사람들을 웃겼다. 내가 ‘라몬’이 되었을 때, 진지하게 대사를 하는 것이 웃긴 장면으로 구현되는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연기를 잘하고, 잘 표현하면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것 같았다.”



그것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힘이자 매력으로 다가왔다. 작품이 전해주는 웃음은 ‘나는 지금부터 웃길 거야! 그러니 너도 웃어’라는 것과 달랐다. 박성환은 그것이 자신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조심스럽게 작품의 진짜 매력을 설명했다. 그가 생각한 ‘라몬’과 작품은 “우리끼리 놀테니 보고 재미있으면 웃으면 된다”에 가까웠다. 그러다보니 그가 바라본 뮤지컬 ‘조로’는 예능과 닮아 있었다.

“예능에도 짜여진 대본이 있겠지만, 출연진들이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것들이 시청자를 웃게 한다. 예를 들어 그들이 재미있는 놀이를 한다고 하면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짓는다. 뮤지컬 ‘조로’도 비슷하다. 재미있게 노는 것을 그저 볼 뿐인데 관객들은 한바탕 시원하게 웃는다.”

자연스럽게 터진 웃음은 초연을 보지 않아도 그를 ‘라몬’에 빠져들게 했다. 초연을 생각하고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웃음에 ‘낯섦과 재미’를 동시에 느낀다. 그들의 반응은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러한 반응을 박성환은 ‘소풍 전 날’에 비유했다. 그는 “소풍 가기 전날 밤이 제일 설렌다. 막상 소풍 가는 날이 되면 지치고 짜증나는 것이 더 많다. 많이 기대하면 그것의 본질과 본연의 느낌이 외려 반감되는 경우가 있다”라며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 물론 뮤지컬 ‘조로’는 기대 이상의 것들을 전해줄 것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작품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을 제안했다.

박성환에게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뮤지컬 ‘조로’ 연습은 뜨거운 여름날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진행됐다. 연습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점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지 않는 연습실에서의 연습이 제일 힘들었다”라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한 여름 시작된 연습은 냉방이 좋지 않는 연습실에서 이루어졌다. 연습은 안무는 물론이고 펜싱까지 곁들여진 과격한 움직임에 상상을 초월한 땀방울을 쏟아내게 했다.

“바로 옆 연습실은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 시원했다. 쉬는 시간마다 배우들이 옆 연습실 문 앞에 서서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 옆에서는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사 연습을 하는데 연습실 문이 살짝만 열려 있어도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다들 옆 연습실 벽에 붙어서 바람을 쐬고 다시 연습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시기적으로 더운 날 연습을 했기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만큼 땀을 많이 흘렸다고 생각하면 좋다.”

더운 여름, 시원하지 않은 연습실에서의 연습은 그를 힘들게 했지만 더 큰 고비는 따로 있었다. 바로 캐릭터를 잡아가는 과정이다. 배우들은 캐릭터를 잡을 때 두 가지 모습을 보이며 진행된다. 하나는 대본을 보고 바로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나갈지 한 번에 파악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이것저것 해보고 나서 캐릭터를 잡아가는 경우다. 박성환은 어디에 속할까. 그는 굳이 꼽자면 전자에 가까웠다.

박성환은 평소처럼 ‘라몬’ 캐릭터를 잡아갔다. 자신이 생각하는 ‘라몬’을 구축해가며 연습에 임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그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임했다가 많이 깨졌다”라고 연습 당시를 떠올렸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 ‘아차’하는 순간 실수로 이어졌다. 그는 “1막에 나오는 캐릭터만 보면 ‘라몬’은 1차원적인 악역에 가까웠다.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저는 그런 ‘라몬’에게 2막에서는 변화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가 연출님한테 많이 혼났다”라고 실수담을 털어 놓았다. 한 번 터진 고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번에는 대본과 가사를 빨리 숙지하지 못했다. ‘라몬’은 장문의 대사가 많다. 연설하는 장면, 투자설명회 장면, 혼자 미쳐서 독백하는 장면 등 긴 대사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넘쳐난다. 저는 원래 활자를 잘 외우는 편이다. 반대로 가사나 박자 등 음악적인 부분은 숙지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뮤지컬 ‘조로’를 할 때는 음악이 입에 익지 않아 자신감이 없었다. 많이 위축됐다.”

박성환은 뮤지컬 ‘두도시 이야기’에 출연하면서 동시에 뮤지컬 ‘조로’ 연습에 합류했다. 상대적으로 줄어든 연습 시간은 ‘라몬’을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 지 더욱 고민하게 만들었다. 같은 역에 캐스팅 된 조순창 배우는 그런 박성환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박성환이 조순창 배우가 만든 ‘라몬’에 자신을 맞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캐릭터를 해석하는 방향에 있어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박성환은 함께 만든 호흡에 균열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는 묵묵히 그들과 발을 맞춰나가며 조순창 배우가 만든 ‘라몬’을 따라 자신의 ‘라몬’을 찾아 나섰다. 그는 “무대에서는 동선 하나, 내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이번에 연습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라고 배운 점을 전했다.



“그동안 저는 뮤지컬 ‘잭더리퍼’, ‘삼총사’ 등과 같은 작품에 출연했다. 이 작품들은 워낙 기라성 같은 선배 배우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있기에 저는 숟가락만 얻은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캐릭터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잘 하는 거라 생각한다. 욕심이 있다면, 거기에 ‘나만의 무언가를 더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그런 욕심을 부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그래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왕용범 연출님이 제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할 수 있게 열어줘 많은 것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이 과할 때는 ‘그건 아닌 것 같아’라고 말씀해주신다. 반대로 부족한 것이 있으면 ‘이건 조금 더 해봐’라며 길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뮤지컬 ‘두도시 이야기’를 할 때도 큰 틀 안에서 마음대로 움직였던 것 같다.”

박성환은 점점 더 캐릭터를 해석할 수 있는 그릇이 커지고 여유도 늘어갔다. 이번에는 이러한 이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것은 같은 역을 연기하는 조순창 배우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부담감 때문이었다. 조순창 배우는 박성환이 연습에 참여하지 못할 때 네 명의 조로와 모두 호흡을 맞춰주며 연습에 매진했다. 그도 모자라 그는 박성환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박성환은 조순창 배우와 연습에 연습을 더해 나갔다.

“조순창 배우는 처음부터 연습을 해왔고 저는 뮤지컬 ‘두도시 이야기’와 ‘조로’를 오고가며 도중에 투입됐다. 이미 그들만의 무언가가 만들어진 상황에서 연습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함께 뮤지컬 ‘두도시 이야기’에 출연했던 소냐, 서영주 배우도 늦게 작품에 투입됐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 모두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워낙 프로들이고 내색을 안 하니 몰랐는데, 제가 투정부리듯 ‘힘들다’고 말하자 ‘나도 힘들어 죽겠다’라고 하더라.”



자신을 위한 채찍질과 담금질

‘라몬’에 대한 고민은 박성환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그는 왕용범 연출이 자신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왕용범 연출은 박성환에게 “너는 그냥 무난해”, “뭘 해도 무난해”,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아”라고 말을 건넨 적이 있다. 당시에는 박성환은 그 말을 ‘믿고 맡길 수는 있어도 이 이상은 보여주지 못하는 배우인가?’라고 받아들였다. 의미 전달이 잘 못 된 걸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그 말이 박성환을 더욱 더 옹골진 배우로 채찍질 했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원망도 많이 했고 자괴감도 들었다. ‘나는 왜 이것 밖에 안 되지’, ‘그래서 항상 제자리인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배역에 큰 욕심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이만큼인데 그 이상을 원할 때는 불평불만을 할 때도 있었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그런 상황들이 많아 슬펐다. 눈물도 많이 흘렸다. 뮤지컬 ‘두도시 이야기’를 하고 나니 눈물이 많아졌다. 연습이 힘들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다.”

힘들 때 든든한 위로가 되어준 것은 앙상블 배우들이었다. 작품을 함께하는 앙상블 중에는 유난히 또래 친구들이 많았다. 박성환은 힘들 때면 그들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곤 했다. 하소연을 하다보면 마음이 비워지고 다 내려놓게 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끊을 수 없는 중독과 같은 힐링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잘 해야지’라는 마음은 부담감이 되어 그를 옥죄여왔다. 그 부담감은 친구들과의 대화로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가르시아’ 역의 서영주 배우가 해준 말도 많은 도움이 됐다. 그는 “한 번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최고치로 끌어 올려 보여줘봐”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는 잘 알지 못했다.

박성환이 그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뮤지컬 ‘조로’ 첫 공연을 하고 난 뒤였다. 그는 “‘라몬’을 연기하면서 무대에서 제 마음대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며 신난 아이처럼 들뜬 얼굴로 말했다. 첫 공연은 안전하게 가야한다. 그날은 그동안 연습했던 것 그대로 맞춰 공연을 올려야 한다. 연습한 것을 무대 위에서 펼쳐내는 동안 그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영화 ‘아이언맨’의 한 장면처럼 작은 점이 점점 커져 모든 것을 한 눈에 본 것이었다. 마치 모든 것이 멈춰있고 자신만 움직이는 것 같은 신비로운 순간이었다.

“그 순간 ‘다음 공연에서는 여기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라고 그림이 그려졌다. 그래서 ‘제가 이 장면에서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움직이겠지’라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치는 경험이다. 물론 우리가 정리해 놓은 큰 틀은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정말 큰 일 난다. 제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장면 안에서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고 있다. 다른 배우들과 협의를 구해야 하는 장면에서는 정중하게 가서 말했다. 다행히도 모두가 흔쾌히 허락해줬다. 연출님이 혼낼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는 아무 말씀이 없다.”

박성환은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는 배우다. 그는 대본에 맞춰 대본 그대로 연기하고 무대에 서는 배우에 가깝다. 그 만의 디테일을 갖고 있지만 그 역시 대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대본에 ‘했습니다’라고 적혀 있으면 ‘했어요’로 바꾸는 정도다. 그는 대본에 적힌 글씨 하나하나 그대로 연기하고자 했다. 그것이 글쓴이에 대한 예의라는 굳건한 믿음에서였다.

뮤지컬 ‘조로’는 그런 박성환을 변화시켰다. 그동안 무대에 오르며 작은 디테일을 만들어 나갔지만 이번처럼 짧은 기간 많은 디테일을 선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첫 공연을 하고 대부분이 바뀌었다”라며 자신도 한껏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1막은 대본과 똑같이 진행된다. 딱히 달라질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1막에서는 꽁꽁 숨기고 가져 온 것은 2막에서 자유롭게 터트린다. 그렇게 그는 ‘라몬’이라는 캐릭터를 잡아 나갔다.



‘악’만 남은 마인부우 닮은 ‘라몬’

박성환이 구축한 ‘라몬’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라몬’의 캐릭터를 설명했다. 그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라몬’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인물에 가까웠다. 그의 행동에는 이유가 없으며 그의 모습에는 우리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었다.

“예를 들어 ‘라몬’은 자신이 무언가를 갖고 싶다 생각하면 무조건 가져야 한다. 그럴 때는 눈치를 보지 않는다. 인간 박성환은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기면 ‘내가 이걸 가졌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 걱정한다. ‘라몬’이라는 사람은 그런 것이 없다. 이 캐릭터는 자신의 것이라 생각한 것을 누가 가지려 하거나 자신에게 뭐라고 한 소리 하면 칼로 죽이면 그 뿐이다. 누가 덤비면 ‘그냥 총으로 쏴’ 이렇게 말하면 끝난다. 다른 것은 없다. ‘라몬’은 단지 원초적인 감정에 충실한 인간이다.”

박성환은 ‘라몬’이 ‘루이사’와 결혼을 하려 한 이유도 소유욕 때문이라고 정의내렸다. ‘라몬’은 ‘루이사’가 스페인에서 제일 가는 미모를 자랑하는 여자였기 때문에 가지려 한 것이다. 반대로 ‘루이사’보다 예쁘다고 소문난 다른 여자가 있었다면 ‘라몬’은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여자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박성환은 그런 ‘라몬’을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마인부우’에 비교했다.

“‘라몬’은 절대 악인 ‘마인부우’와 같다. 이 캐릭터는 그냥 악만 가진 ‘마인부우’다. 다른 점은 비즈니스를 굉장히 잘 한다는 것이다. 누구한테는 아부 했다가 다른 이한테는 화를 내기도 한다. 모든 인간군상이 ‘라몬’ 안에 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악’으로 표출된다.”

박성환은 ‘라몬’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 자칫 ‘라몬=박성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그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동안 꾹꾹 눌러온 감정들은 ‘라몬’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영화나 만화, 책 등을 통해 공부하며 갈고 닦았다.

‘라몬’은 그래서 박성환에게 애정도가 높은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캐릭터는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실패와 실수를 거쳐 제법 윤곽이 잡혀갔다. 관객 반응은 그런 박성환에게 확신을 가져다 줬다. 박성환이 어떤 시도를 하고 ‘라몬’을 표현하면 커튼콜 때 관객 반응이 달라진다. 캐릭터의 비중과 성격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달라진 관객 반응은 더욱 더 ‘라몬’에 빠져들게 했다.

“예전에는 뮤지컬 ‘두도시 이야기’의 ‘찰스 다네이’와 뮤지컬 ‘조로’의 ‘라몬’을 두고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찰스 다네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무조건 ‘라몬’을 연기하고 싶다. 작품 안에서 ‘조로’와 ‘라몬’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이번에도 ‘라몬’이다. 캐릭터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관객들은 ‘라몬’이 악역이지만 매력 있는 악역으로 받아줬다. 저는 그 부분에 확신이 없었다. 제가 생각한 ‘라몬’은 이유가 없는 악역에 가까웠다. 그래서 어떠한 이유로도 그는 동정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캐릭터를 잡아 나갈 때 가장 큰 고민이었다. 지금은 이 부분이 해결됐다.”

이유 없는 ‘악인’이었던 ‘라몬’을 연기하기 위해 그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야 했다. 초연에서 ‘라몬’은 문종원과 최재웅이 연기했다. 두 배우는 캐릭터가 강하고 카리스마가 있기 때문에 그들만의 색으로 무장한 ‘라몬’을 선보였다. 당시에는 ‘라몬’이 왜 악인이 되었는지, 그가 악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작품 안에서 설명되어 있다. 2014년 공연되는 뮤지컬 ‘조로’에서는 ‘라몬’에 대한 설명은 적다. 그가 왜 악인이 되었는지는 생략된 채 ‘악행’을 일삼는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라몬’을 그려나갈 때 많이 고민했다. ‘그가 왜 악인이 되었는지’, ‘왜 이토록 악행을 일삼는지’ 이유를 만들어야 하나 걱정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결부지어 볼까 생각했다. 그렇게 하기에는 작품 안에 ‘아버지’ 이야기가 너무 적었다. 작품에는 ‘조로’가 ‘라몬’의 ‘아버지’를 쫓아냈다는 정도로만 나온다. 이를 가지고 ‘서브텍스트를 찾아볼까?’, ‘더 들어가 볼까?’ 계속 생략된 공간에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했다.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려울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쉽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라몬’은 아무 이유 없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인물로 결정지었다.”

‘라몬’은 관객을 사로잡고 박성환을 매료시켰다. ‘라몬’을 알고 싶어 골몰했던 수많은 밤은 박성환과 ‘라몬’을 끈끈하게 엮었다. 그는 ‘라몬’을 향한 애정은 작품이 끝난 후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박성환은 “막공 때쯤이면 정신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라며 사뭇 진지하게 농담을 던졌다. 이어 그는 “요즘은 길을 가다가도 실실 쪼갠다. 누가 보면 괜히 심통이 나기도 한다”라며 ‘라몬’에 의해 달라진 자신을 소개했다.



칼싸움은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

뮤지컬 ‘조로’에서 박성환은 총 네 장면에서 액션을 선보인다. 액션 장면이 많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저보다는 ‘조로’ 역을 연기하는 배우와 앙상블이 힘들 것이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액션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배우에 비하면 약과라며 겸손해 했다. 이어 그는 액션 장면에서 상대방과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짝 귀띔해줬다.

“검술 장면은 ‘루이사’와 할 때 더 힘들다. ‘조로’와 싸울 때는 ‘조로’가 워낙 칼을 잘 쓰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막 달려들어도 그게 진짜 칼싸움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루이사’와 싸울 때는 미친 듯이 달려들면 안 된다. 그때는 노래도 불러야 하고 ‘루이사’와 사전에 맞춘 동선도 챙겨야 한다. ‘루이사’를 연기하는 두 배우의 템포가 달라서 그 부분도 놓쳐서는 안 된다. 김여진 배우는 유하게 들어온다. 안시하 배우는 에너지가 강하다. 검술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긴장 할 수밖에 없다. 연습할 때는 김여진 배우와 더 많이 호흡을 맞췄다. 막판에 페어를 섞어 연습 하려니 저 뿐만 아니라 ‘루이사’ 역의 배우들도 힘들어 했다.”

남자 배우와 붙을 때는 칼에 살짝 맞아도 괜찮다. 쿨하게 다시 연습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 배우의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다. 위험하기 때문에 칼을 겨누다가 ‘멈칫’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 멈춘 동작은 처음부터 다시 연습하게 만든다. 상대 배우에 대한 예의는 힘들 때 빛을 발휘한다. 박성환은 “‘루이사’ 역의 두 배우가 더운 데 짜증도 안내고 힘든 내색도 하지 않고 더 열심히 연습했다. 먼저 와서 다시 한 번 맞춰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로’와의 호흡은 어떨까.

“‘조로’ 역의 배우들과 연습할 때는 남자 대 남자로 싸우는 거라 템포만 외우고 있으면 된다. ‘조로’ 역의 배우들도 자신들이 위험하지 않게 강약 조절을 하며 연습했다. 공연이 시작됐지만 아직도 연습하고 있다. 공연 시작 한 시간 반 정도 전에 다 모여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검술 장면을 연습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벼운 장면이지만 그것을 연기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동작 하나하나에 개그와 멋짐, 긴장 등이 다 녹아나야 하니 힘들다.”

박성환은 힘든 연습을 버티기 위해 금연에 돌입했다. 금연은 오래전부터 지속되었지만 이제야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다른 배우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 박성환에게 맞는 체력관리는 ‘금연’이었다. 호흡 문제 때문에 금연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작품 안에서 그는 소리를 많이 지른다. 맑고 고운 소리 지름이 아닌 괴성에 가까운 소리 지름이다. 자칫하면 목에 무리가 갈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하다.

“금연한지는 6개월이 다 되어 간다. 처음 금연을 생각한 것은 ‘키스신’ 때문이었다. 작품에서 키스신이 있으면 담배를 피우고 나서 꼭 가글과 양치를 해야 한다. 그것이 귀찮았다. 그렇다고 담배 냄새를 풍기면서 키스신을 할 수는 없었다. 작품을 하는 동안에만 금연을 해보자해서 시작했다. 작품을 마무리하고 다음 작품에 들어갔는데 또 키스신이 있었다. 작품에 키스신이 계속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속 금연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상대 배우에 대한 배려로 금연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주변에서는 ‘언제까지 금연을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박성환은 굴하지 않고 금연을 실천했고 덕분에 목을 푸는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됐다. 완벽하게 담배를 끊은 것은 뮤지컬 ‘조로’에 합류하고부터다. 담배는 완벽하게 끊었지만 대신 주량이 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금연한 사람,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과 놀지 말라’고 말한다. 금연과 다이어트는 웬만큼 독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성환은 금연도, 다이어트도 모두 다 성공했다. 웬만큼 독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두 가지를 모두 다 이뤘다. 그의 다이어트 비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하지만 결코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는 독한 방법이었다.

“저는 2주 만에 8kg를 뺐다. 방법은 안 먹는 것이다. 그렇게 총 두 번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한 번은 뮤지컬 ‘피맛골 연가’를 할 때였다. 그때는 살이 안 빠져 아침에 감자 한 개, 고구마 한 개를 먹었다. 점심도 그렇게 먹었다. 저녁은 먹지 않았다. 그랬더니 살이 빠졌다. 그리고 나중에는 방심을 하니까 살이 다시 쪘다. 뮤지컬 ‘삼총사’할 때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당시 저는 ‘리슐리외’를 연기했다. 역 자체가 왕이다 보니 작품 안에서 하는 것이 별로 없었다. 공연 시간이 2시간 30분이라고 하면 저는 2시간 10분을 아무것도 안하고 보냈다. 공연 끝나고 배우들과 한 잔 할 때가 있는데 그때도 안주만 엄청 먹었다. 그러니 다이어트 한 것이 모두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

캐릭터를 위해 그는 다시 한 번 몸매 관리에 돌입해야 했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에서 박성환은 훈남 스타일에 슬림한 경관 ‘테드’ 역을 맡았다. 당시 연출은 그를 보고 “네 얼굴 좀 가서 봐”라고 돌직구를 아낌없이 날렸다. 당시 그의 상황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 말을 듣고 박성환은 이 악물고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 결과 그는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그제야 연출에게 “이제야 좀 사람 같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체력관리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이다. 웬만하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끼를 먹어도 좋아하는 것을 먹는다. 저는 뱃속에 음식이 들어가면 움직임이 둔해진다. 노래할 때도 음식을 먹고 공연하면 무리가 온다. 꼭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공연 5~6시간 전에 먹는다. 사람마다 바이오리듬이 달라 어떤 사람은 그렇게 먹고 어떻게 공연하느냐 묻기도 한다. 저는 반대로 음식을 먹고 공연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연습할 때는 많이 먹는 편이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잘 못 먹는다.”



박성환이 바라본 뮤지컬 ‘조로’

이번 공연에서 ‘라몬’ 역은 박성환과 조순창이 함께 연기한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조순창 배우를 본 소감이 궁금했다. 그는 “잘생겨 보였다”라며 시원하게 답했다. 작품에는 ‘라몬’에게 사람들이 ‘잘생겼다’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말을 들고 ‘라몬’은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다’라고 맞받아친다. 관객들은 그 장면에서 ‘빵’ 웃음을 터트린다.

“그 장면을 조순창 배우가 연기하면 굉장히 웃기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객석에서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사람들이 덜 웃더라. 제가 봐도 조순창 배우가 잘생겨보였다. 같은 역을 연기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잘생겼다. 관객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에 50%정도 웃었던 것 같다. 공연을 보면서 ‘저 형도 잘 생겼구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살이 많이 빠져서 그런지 잘생김에 물이 올랐다.”

뮤지컬 ‘조로’에 넘쳐나는 애정만큼 그는 ‘라몬’을 꽤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작품에서 제일 좋아하는 넘버로 ‘라몬’의 넘버인 ‘욕망’을 꼽았다. 박성환은 “뮤지컬 넘버 ‘욕망’은 이성준 음악감독이 ‘라몬’을 위해 특별히 만든 곡이다. 그는 “이성준 음악감독님이 워낙 공사다망한 분이다. 바쁜 와중에 만든 곡이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라며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곡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고 박성환은 곧 ‘욕망’에 빠져들었다.

“‘라몬’이라는 캐릭터를 위해 곡을 만들어줬다는 부분이 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보답하는 방법은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통해 ‘라몬’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곡 하나로 ‘라몬’의 매력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박성환은 한 번 꽂힌 장면과 노래에는 온 정성을 다 쏟아 붓는 타입이다. 작품마다 그런 장면과 노래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장면에서는 원조 ‘조로’가 밝혀지는 순간이 그를 끌어당겼다. 그는 “그 순간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발가벗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아무도 보지 않아도 열심히 무대 위에서 표현했다”라며 순간순간을 되짚으며 설명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사람들이 다 ‘조로’만 찾으니깐 괜히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제 입장에서 정의는 ‘라몬’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조로’가 나타나고 ‘라몬’이 총을 쏴 그를 맞추니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 듯 시원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조로’를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았는데 제가 잡은 거나 다름없으니 기분이 좋았다. 나도 모르게 ‘라몬’이 보여줘야 할 ‘좋다’라는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한 번 꽂힌 장면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라몬’에 더 집중했다. 박성환은 관객에게 ‘라몬’의 행동을 이해시키기 위해 고민에 빠졌다. 그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더 쓰레기처럼 보일까’, ‘어떻게 하면 나로 하여금 이 사람들을 똘똘 뭉치게 할까’ 이것뿐이었다. 작품에는 여자들이 꾹꾹 눌러온 한을 ‘라몬’을 향해 분출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그 장면에서 여자들이 살풀이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악해져야 했고, 더 비열해져야 했다.

“저 혼자 느끼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제가 뭔가를 했을 때 여자들이 살풀이하는 강도가 달라진다. 그러한 것들이 피부로 직접 느껴지기 때문에 공연할 때 에너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떨 때는 여자들이 정말 저를 죽일 것처럼 ‘살기’가 느껴질 때도 있다. 그것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한 단계 한 단계 앞서 충분히 무언가를 만들어가야 한다. 순차적으로 작업이 이뤄져야지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이 ‘탁’ 터져 나온다. 장면에서 그러한 것을 일 대 다수로 진행해야 하니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무대에 오른 ‘병정들’, ‘루이사’, ‘여자들’ 한 명도 빠짐없이 골고루 에너지를 전해주려 노력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몰아붙이는 강도를 높이는 방법이 그것이라 생각하니 힘들어도 계속 하게 된다.”

뮤지컬 ‘조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매력적이다. 기존 공연에서 보기 힘들 만큼 캐릭터도 강하다. 영웅인 듯 영웅 아닌, 아가씨인 듯 아가씨 아닌, 악인인 듯 악인 아닌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들은 그야말로 매력덩어리다. ‘라몬’ 외에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역을 연기하고 싶은지 묻자 그는 단호하게 “없다. 전혀 없다”라고 답했다. 그 순간 어리석을 질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몬’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 강한 배우한테 다른 캐릭터를 선택하라고 한 것은 무의미한 질문이었다.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라몬’을 연기하면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것들을 많이 깨달았다. 다른 이유는 없다. 캐릭터 때문에 제가 돋보이고 싶지는 않다.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노래가 좋기 때문도 아니다. 제가 ‘라몬’에게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캐릭터도 물론 다 매력있다. 그렇게 따지면 ‘가르시아’를 해보고 싶다. 우선 ‘조로’는 너무 힘들어 하고 싶지 않다. (웃음). ‘가르시아’는 일찍 죽고 커튼콜 때 나오면 되니 좋은 역할인 것 같다. 게다가 ‘조로’ 편에 서서 조력자 역할을 하고 멋있고, 웃기기까지 하다. ‘가르시아’는 최고의 캐릭터다.”

‘가르시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지만 그를 배우로 성장시켜준 ‘라몬’을 따라올 수는 없었다. 박성환은 “‘라몬’을 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어젯밤에도 내일 공연을 어떻게 해야 할 지 한참을 생각하다 잠들었다. 그만큼 ‘라몬’은 저를 쉬지 않고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 역할 말고 다른 역을 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박성환에게 뮤지컬 ‘조로’는 어떤 작품일까. 그는 “선생님”이라고 단숨에 정의 내렸다. 앞서 이야기 한 것들이 이 말이 나옴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쉬울 수도 있고, 반대로 한없이 어려울 수도 있는 전형적인 악역을 맡았다. 악역을 관객에게 인정받기 위해 박성환은 끊임없이 공부했다. 그것이 작품을 통해 그가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작품 외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어 물어봤다. 박성환은 프레스콜 때마다 어김없이 하는 말이 있다. 그는 다른 배우들의 이야기가 끝나면 마이크를 잡고 한 마디 거둔다. 조심스럽게 꺼낸 말은 다름 아닌 ‘앙상블’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는 작품에서 제일 고생한 앙상블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언급하고, 그들에게도 박수와 관심을 보여주기를 부탁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싶어 궁금했다.

“건물을 올릴 때 가장 중요한 작업은 기초공사다. 공연에서는 앙상블이 기초공사를 담당한다. 앙상블이 잘 안 되면 그 공연은 힘들어진다. 부실공사가 생기면 건물이 안전하지 않고 잘못하면 무너질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앙상블의 생활이 나아지고 이들 마음이 편해져야 좋은 공연이 나오는데, 앙상블의 노력을 잘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다.

제가 공연을 잘하지 못한 날에는 등이 따갑다. 혹시라도 그들이 자신보다 못한 제가 무대에 서서 저 정도밖에 못 보여준다고 생각할까 더 조심스럽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다. 그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주·조연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도 미안한 일이고 그동안 연습한 것들도 물거품으로 만든다. 그만큼 앙상블 친구들이 인정받고 박수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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