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W 리뷰] "신념을 찾는 한 인간의 여정" 뮤지컬 '가야십이지곡'

입력 2015-02-02 17:22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다!” 인간은 누구나 선택을 한다. 선택에는 조건이 있다. 답을 찾기 위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질문이 있어야 한다. 뮤지컬 ‘가야십이지곡’은 가야의 악공 ‘우륵’을 중심으로 한 인간이 ‘신념’이라는 답을 찾아가는 ‘선택’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뮤지컬 ‘가야십이지곡’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출신의 창작자들이 의기투합해 창단한 극단 ‘기능재부’의 첫 창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2014 창작뮤지컬 우수작품 제작지원’의 선정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극본은 서울대 작곡과 이론전공 후 한예종 음악극창작과를 수료한 박소정이, 작곡은 그의 후배 채한울이 함께했다. 연출은 한예종 연극원 연출과 출신의 육지가 참여했다.

뮤지컬 ‘가야십이지곡’은 ‘우륵이 가야국 가실왕의 명으로 가야금을 만들고 12곡을 지었다’는 삼국사기의 한 구절로부터 시작된 팩션 사극이다. 작품은 구체적인 이야기의 진술보다 ‘답’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여정에 초점을 맞춘다. 우륵은 ‘신탁의 운반자’로서 길을 떠난다. 그는 가야를 살리기 위한 ‘열 두음’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음은 찾아지지 않고 가야는 점차 기울어만 간다. 홀로 떠난 길에서 그는 ‘니문’과 ‘소율’을 만나며 행복을 느끼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우륵의 여정에 함께하게 되는 ‘니문’과 ‘소율’의 이름이 주는 상징성이다. ‘니문’은 실제 우륵의 제자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다. 이름의 뜻은 ‘질문하는 자’다. ‘소율’은 가족을 잃고 죽으려 하는 것을 우륵이 음악을 통해 살려낸 여인으로, ‘작은 음도 모두 쓸데가 있다’는 의미의 이름이다. ‘니문’은 이름만큼 질문이 많은 소년이다. ‘당신은 어딜 가?’, ‘당신이 무엇이길래?’ 등의 근원적 질문을 쏟아낸다. 우륵은 ‘질문하는 자’와 동행하게 되면서 자신의 길에 대해 점차 반문하게 된다. ‘소율’은 신념을 우회적으로 담는 여인이다. 신탁이라는 거대한 굴레가 아닌, 삶의 소중한 것들 모두 기억하고 남길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역할이다.

결과적으로 우륵은 신탁을 받드는 데 실패한다. 12음을 짓지 못했고, 곁을 지켜주던 ‘소율’도 잃는다.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우륵은 신라의 화랑 ‘사다함’에게 소리를 강요당한다. 하지만 우륵은 그의 명령을 거부하는 대신 금을 타며 노래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후 우륵은 신라에 귀화함으로서 역사 속 변절자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뮤지컬 ‘가야십이지곡’은 우륵의 선택을 ‘사람을 살리는 길’이자 ‘가야를 지키는 길’이라는 ‘신념’으로 도출해낸다.

우륵은 12줄의 금에 ‘가야’를 붙여 ‘가야금’이라는 이름으로 제자 ‘니문’에게 남긴다. 우륵은 가야인으로 죽기보다, 살아남아 신라인으로 가야의 ‘음’을 남기는 것을 선택한다. 그것이 ‘가야를 살리는 또 다른 방법’이자 소리를 지키고자 하는 자신의 ‘신념’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있다면 사라지지 않아’라는 뮤지컬의 한 대목처럼 가야는 가야금의 ‘음률’을 타고 지금까지 사람들 틈에 남아 있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래 뮤지컬 ‘가야십이지곡’은 영화 시나리오의 트리트먼트로 구상 되었다가 뮤지컬로 선회한 작품이다. 한 나라의 멸망이라는 거대한 배경을 갖고 시작한 만큼, 다루는 주제도 방대할 수밖에 없다. 제한된 표현의 소극장의 폭 안에 녹여내기엔 너무나 큰 주제 의식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극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인 ‘음’이 제대로 이야기에 녹아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 ‘음’을 찾는 과정이 헐렁하게 서술되면서 이야기는 늘어지고, 가야의 음을 찾아야 하는 우륵의 절박한 운명도 흐릿하게 지분거리다 흩어져버리고 만다. 동시에 우륵의 고통에 비례해 치솟아야 할 ‘구원’과 ‘신념’의 감동도 반감된다.

음악은 소극장의 뮤지컬넘버로 남기 아까울 정도로 웅혼하다. 적은 출연진에도 풍성한 화음이 귓가를 맴돌고, 서정적인 가사는 시처럼 오래 남는다. 특히, 우륵의 내면을 대변하는 두 명의 ‘메아리’ 역은 ‘음’이라는 소재와 ‘소리’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극의 신비함을 배가했다.

뮤지컬넘버의 중독성도 강하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넘버 ‘살맛’은 극장 밖에서 흥얼거리게 될 정도로 따뜻하고 예쁜 멜로디로 객석을 껴안는다. 뮤지컬 가창의 멋을 살리면서도 대중적인 음률들은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이야기의 길잡이 역할을 하며 주제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우륵’ 역의 최재림은 풍성한 목소리와 성량, 단단한 연기력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니문’ 역의 고은성은 철모르는 소년부터 장성한 남자를 오가며 넓은 연기폭을 자랑했다. 캐릭터의 맛을 살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극의 흐름을 조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소율’ 역의 안은진은 주목할 만한 신예의 탄생을 예고했다. 안정적인 연기력과 맑은 소리로 흔들리지 않는 여인 ‘소율’을 소화했다. 다만, 발음이 부정확한 것이 간혹 극의 몰입을 방해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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