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편’…“착함, 간단한 명제가 주는 울림”

입력 2015-07-09 09:55  



작가 김영하는 자신의 산문집 ‘보다’에서 인간을 ‘작은 지옥’이라 설명한 적 있다. ‘인간의 내면은 타자의 욕망으로 어지럽고, 그래서 늘 흥미롭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욕망으로 가득 찬 우리라는 ‘작은 지옥’들은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인걸까. 서울예술단의 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편’(이하 신과 함께)은 그 해답을 한국적 신화와 만화적 상상력으로 들려주는 작품이다.

가무극 ‘신과 함께’는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서울예술단은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으로 구성된 3부작 중 저승편을 무대화했다. 저승편은 3부작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시리즈로, 한국의 전통 저승관에 기반해 한국인이 흔히 느끼는 죄의식들을 다룬다.

가무극 ‘신과 함께’는 망자가 지옥에서 받는 49일간의 재판 과정을 무대화했다. 제작 단계부터 원작 웹툰의 방대한 세계관을 어떻게 축약할 것인지에 대해 우려가 높았지만, 서울예술단은 이러한 논란을 말끔히 종식시키며 무대만의 멋을 가진 또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작품은 원작의 힘을 업고 무대의 장점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만화의 힘’과 ‘무대’다. 만화의 힘은 캐릭터로부터 출발한다. 주호민 작가는 이미 원작 웹툰에서 김자홍이라는 캐릭터로 소시민의 공감대를 투박하게 이뤄낸 바 있다.

무대에서 김자홍은 한층 더 투명한 인물로 태어난다. 그는 ‘무골호인’(아주 순하고 착해서 누구에게든 잘 하는 사람)이다. 힘도 없고, 돈도 없고, 특징도 없는 ‘A4용지 한 장’에 삶이 축약되는 서글픈 인생이다. 이승에서는 발붙이고 설 곳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동시에 김자홍은 객석의 누구라도 자신의 삶을 대입할 수 있을 정도로 백지 상태의 인물이다. 원작에서 김자홍은 눈에 띄지 않지만 작품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편편한 바닥 같은 캐릭터다. ‘만화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가무극 속에서 김자홍은 만화 보다 더 만화 같은 인물로 진화해 이야기에 생동감을 준다. 진기한 역시 마찬가지다. 만화에서는 조금 더 이지적인 면이 빛났다면, 가무극에서는 한층 더 발랄하고 쾌활한 괴짜의 성격을 덧입는다. 무대는 호흡이 짧은 곳이다. 그만큼 찰나를 놓치면 관객의 몰입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무극 ‘신과 함께’는 무대의 특성을 당겨 외려 만화보다 더욱 만화 같은 호흡법으로 관객의 집중력을 끌어당기는 데 주력한다.

방대한 양의 만화를 세 시간여로 압축해낸 창작진의 노고도 여기저기 엿보인다. 특히, 진기한이 살살이꽃으로 잘려나간 김자홍의 손발을 살려내 한빙지옥을 지나는 부분은 꽤 길게 설명되는 원작을 짧고 간결하게 잘 압축해낸 장면이다 또한, 한 맺힌 원귀의 무거운 사연은 저승삼차사의 위트와 버무려지고, 진기한과 김자홍 콤비의 장면들은 오밀조밀 사랑스러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7개의 지옥은 ‘염라대왕’, ‘오관대왕’, ‘태산대왕’의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짧고 강렬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간결한 설명이 오히려 충분한 드라마적 설득력을 마련해준다.

작품은 무거운 주제를 장황하게 이어가기보다 ‘웹툰 원작’의 장점을 무대 위로 끌어안는다. 예를 들어, 김자홍의 인생 내력은 보사노바 리듬에 실려 쓸쓸하지만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고, 진기한의 각오는 격정적인(?) 탱고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면서 드러난다. 저승삼차사의 이동 장면은 또 어떤가. ‘파워레인저’의 한 대목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은 손발을 오글거리게 만들면서도 입으로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만화적 힘’이 그득하다.

그렇다고 가무극 ‘신과 함께’가 만화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진기한의 최종변론이나 김자홍이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을 밝히는 솔로곡, 원귀의 사연의 밝혀지는 장면 등은 처연하고 비장하다. 사연들은 친근하게 관객의 웃음에 머물렀다가, 쉽게 눈물로 몰려간다. 이 작품의 감동은 만화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감의 접점에 마련돼 있다.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의 각축전도 눈여겨 볼만하다. 지옥과 극락을 대표하는 각 신들의 목적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염라대왕은 ‘죄를 벌함’으로서 선한 세상을, 지장보살은 ‘이해’함으로서 선한 세상을 꿈꾼다.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인간은 구제하기 위한 목적은 같은 것이다. 때문에 지장보살이 말끝마다 붙이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은 두 신의 같은 목적을 거듭 드러내는 도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대는 최근 개막한 뮤지컬(창작, 라이선스 포함)들 중 단연 돋보인다. 작품은 무대 전체를 스크린으로 활용해 이미지 영상을 투사하고, 가장자리를 둘러 바퀴(원형) 모형의 무대를 세운다. 지름 17미터의 비스듬한 원형 무대는 ‘윤회’라는 한국형 저승관을 담아내는 데 시각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구심점 역할을 한다. 바닥 세트는 더욱 놀랍다. 바닥 전체에는 국내 최초로 LED 수평 스크린이 사용돼 만화적 재미를 배가시킨다. 특히, 저승삼차사의 이동 장면이나 액션 장면에서는 LED 스크린이 흩뿌린 마법에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수 없다.



가무극 ‘신과 함께’의 무대는 수평‧수직‧원형의 다양한 구도를 사용해 비어 있으면서도 가득 찬 느낌을 준다. 극의 초반부에는 망자들을 저승까지 실어 나르는 지하철 장면이 나오는데, 지하철 세트는 ‘강림’의 주문과 함께 천천히 수직으로 상승하며 등장한다. 이 장면은 우람한 세트의 움직임과 실감나는 영상, 묵직한 음악, 기민한 조명이 합쳐져 입이 떡 벌어지게 한다. 반면, 원형 무대가 일정한 틀로 작용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출연진이 사용할 수 있는 무대 면적이 줄면서 서울예술단 특유의 화려하고 압도적인 군무나 역동적인 동선이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2막 ‘원귀가 악귀로 변하는 과정’과 ‘진기한의 최종변론’은 각각 비주얼과 작품의 메시지를 함축하는 명장면이다. 원귀 장면은 서울예술단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냈다. 이번 공연 역시 뮤지컬 ‘바람의 나라’, ‘잃어버린 얼굴 1895’, ‘뿌리 깊은 나무’ 등에서 보여주었던 무용팀의 뛰어난 자질이 또 다시 힘을 발휘한다. 여러 명의 무용수가 품을 길게 늘인 장삼 소매를 하늘 위로 흩뿌리며 춤추는 ‘원귀의 악귀 진화 과정’은 그 시각적인 위압감이 상당하다.

진기한의 최종변론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압축본이다. 이때 흘러나오는 ‘인간은 신과 함께’라는 뮤지컬넘버는 인간의 나약함을 토로함과 동시에 인간의 강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간은 고통뿐이기에 손을 잡아줄 신과 함께,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마음에 품은 신과 함께 살아가요”라고 말한다. 쉬우면서도 간결한 노랫말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 믿음이 가득해 서서히 감동을 눈두덩이 바깥으로 밀어 올린다.



뮤지컬넘버는 한 번에 귀에 박히지는 않는다. 각 지옥을 드러내는 테마곡들은 극과의 조화가 자유롭지만, 캐릭터별 솔로곡들은 감정적으로 헐거워 보인다. 이는 음악적 문제보다 음악과 명확한 가사를 잘 전달해 내지 못한 음향의 영향이 커 보인다. 웅얼거리는 음향은 배우들의 대사를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다. 멜로디에 실린 가사들이 불분명해지면서 내용 역시 귓가를 맴돌다 종종 달아나 버리기 일쑤다. 객석에 전달되는 음향이 조금만 더 자리를 잡았더라면 감동도 더 깊어졌을 것이다.

뮤지컬 ‘신과 함께’는 계속 곱씹게 되는 작품이다. 상상력의 나래를 펴게 되는 원작의 울림도 대단하지만 현실에서 구현된 무대만의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우리는 조금 더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한 단계의 지옥을 지나칠 때 마다 우리의 크고 작은 죄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국적 저승관을 다룬 작품이 아니다. 종교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그렇기에 누구나 마음에 품은 신에 기대어 ‘작은 지옥’을 버티며 살아간다. 결국, 가무극 ‘신과 함께’는 저승을 빌려오긴 했지만 잘 살아보기 위한 ‘이승’에 대한 이야기다.

‘착하게 살아야한다.’ 그 간단한 명제가 주는 울림이 깊고도 맑다. 가무극 ‘신과 함께’는 7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의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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