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밤을 걷는 선비’ 뱀파이어는 쉽게 지상파에 안착 못하나

입력 2015-07-17 09:50   수정 2015-07-17 23:47

▲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설현과 여진구(사진 = KBS)


“‘스타워즈’나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 해리포터 시리즈 등은 특정한 영화나 드라마, 책이 성공하면 비슷한 장르에 관한 기획안을 찾는 기업이 늘어나는 현상이 생긴다. 이는 폭포효과인데 사실 폭포효과는 최근 들어 갑자지 10대 뱀파이어물이나 상류층을 다룬 주부드라마가 TV업계를 장악해버린 현실에서도 언제나 확인 가능하다.”

이같은 말은 캐스 R. 선스타인과 리드 헤이스티가 저술한 ‘와이저’(Wiser)에서 언급한 것이다. 여기에서 폭포효과는 의사결정과정에서 일어나는 극단화 현상을 일컫는 것이다.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고 결정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대세 흐름에 휩쓸려 버리는 것이 바로 폭포효과다.

특히 정책이나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는 좀 더 세분화된 현상이 일어나는데 바로 가용성 폭포효과다. ‘가용성 폭포효과’(Availability Cascade)는 두드러지는 현상이 생기면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급속하게 그러한 현상에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두드러지는 현상을 인지하고 그것을 밀접하게 고려할수록 폭포효과는 강화된다.

기업에서는 다른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의 성공사례를 크게 인지하고 그것과 연관성 있는 제품을 만들게 된다.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용이한 방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뮤지컬과 연극,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하는 일이 많다. 흥행코드를 추출해서 그에 맞추어 작품이나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성공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뱀파이어 열풍이 불었다. 웹과 모바일의 인터넷이나 10대들이 즐겨보는 콘텐츠에는 뱀파이어가 반드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이 뱀파이어가 시대적인 대세가 되는 듯싶다. 젊은 층들이 즐겨보는 케이블 텔레비전 같은 매체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지상파에서도 뱀파이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드라마에서 적극적이다. ‘블러드’가 있었고, ‘오렌지 마말레이드’가 방영중이다. 한편 ‘밤을 걷는 선비’도 원작의 힘을 받아 지상파 드라마로 제작됐다. 웹과 앱의 시대에 적극적으로 새로운 장르적 요소와 젊은 층들을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서두르는 감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상파 텔레비전 매체는 웹과 앱의 영역과 다르다는 점을 아직은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무시할수록 애초에 기대했던 결과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뱀파이어가 전면에 나서는 장르에 대해 그렇게 호감도가 높지는 않다.

▲ ‘밤을 걷는 선비’ 이준기(사진 = MBC)


현실적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밤을 걷는 선비’는 러브스토리를 넣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경우, 뱀파이어 이야기지만 사랑이야기가 내재돼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이나 장면설정이 시청률을 견인하는데 유용한 환경에서 이러한 스토리상의 설정만으로 장애를 돌파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스토리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할 수도 없다.

여기에서 다시 가용성 폭포효과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새롭게 뜨는 소재를 산입했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는 소재와 포맷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지적과는 다른 문제다. 성공의 기준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것과 드라마나 영화에서 화제가 되는 것이 다른 것과 같다. 마니아틱한 문화일수록 인터넷에서는 뜨거운 집중도를 보인다. 이러한 점은 케이블에서도 비슷한 성향을 지닌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 시청률은 많이 나와도 충성도가 높지 않고 집중도나 몰입도도 떨어진다.

하지만 대부분 시청률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만다. 이런 점에서 아무리 새롭게 뜬다는 뱀파이어를 들여온다고 해도 원하는 결과가 당장에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당장에 시청률을 의식한다면 말이다. 지상파에 갑자기 뱀파이어가 연이어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면 그 자체의 콘텐츠 희소성도 떨어진다. 이러한 점은 가용성 폭포효과의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확실한 킬러콘텐츠가 아니면 점진적 융화전략이 필요하다. 지상파 방송사의 시청층은 한국문화의 기본적인 세포막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익숙한 캐릭터나 포맷 그리고 서사 구조에 친숙한 반응을 보인다. 쉽게 말하면, 뱀파이어보다는 원혼이나 구미호에 익숙하다.

그러나 너무 익숙하게 때문에 웬만해서는 식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뱀파이어 소재를 다뤘기 때문에 당장에 쉽게 반응을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뱀파이어를 옹호하거나 그들의 입장에 감정이입하기는 쉽지 않다. 서양사람들에게는 다른 문제이며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멜로라인으로 짜여도 덜 거부감이 드는 것과 다른 점이다. 이 때문에 중간에 절충적인 과정의 작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더구나 강력한 킬러콘텐츠가 아닌 바에는 쉽게 문화적 친숙성을 형성하기도 힘들다. 지금은 예전처럼 지상파 방송프로그램만 지켜볼 만한 콘텐츠나 방송채널이 적은 시대도 아닌 점은 더욱 이를 뒷받침한다.

이질적인 문화코드인 뱀파이어가 갑자기 한국의 문화정서 속으로 들어올 수 없다면, 동시대인들이 감점이입을 할 수 있는 스토리에 등장시켜야 한다. 아니면 점진적으로 익숙할 때까지 시도하거나 강력한 통속 콘텐츠를 만들거나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뱀파이어 세대를 인큐베이팅하는 것이 유효할 수 있다. 문화는 알묘조장한다고 소망스런 긍정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대표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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