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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익경 기자가 만난 세계의 건강한 한국인-12] ‘이민법 변호사이자 재미 한인 부인회 최재은 회장..’

입력 2015-10-16 10:10  


미국은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 각국에서 아메리카 드림을 쫓아 지금 이 순간도 이민의 물결이 흘러 들어오고 있는 미국, 특히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세계의 수도 뉴욕에서 이민법에 정통한 변호사이자 재미 한인 부인회 회장(Korean Women`s Association of America)을 역임하고 있는 최재은 변호사를 만나본다.
문=변호사님께서도 이민을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연유로 미국에 오시게 되었는지요? 성장과정이나 초기 미국생활은 어땠습니까?
답=저는 이민 1세대로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대학졸업 (이화대학 법학과) 후 그 해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미국땅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목사의 가정에서 4대째 기독교인으로 태어났으며, 외증조모께서 1800년대말 1900년대 한국의 기독교 초기 선교시점에서 서양의 선교사들과 전도부인으로부터 최초로 전도사 칭호를 받은 한인여성으로 조선에 1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하신 분이셨고, 저는 외증조모의 영향으로 제가 4대째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미국에 처음 와서는 유학생 가족으로 미국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미국 와서 첫 해에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으나 학위를 못 끝내고 가정형편상 그만 두었고 나중에 다시 힘들게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문=공부를 늦게 시작하시어 아이비리그에서 로스쿨과 신학을 전공하시었는데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아니면 공부에 큰 소질이 어렸을 때부터 있으셨는지요?
답=저는 어린 시절 부 터 과목 중에 국어를 좋아했고 영어는 별로 취미가 없었어요. 미국 올 때도 사실 전혀 공부에 관련해서 준비 안하고 왔다가 학교측의 특별배려로 토플(Tofle)이나 GRE 성적 제출 없이 이브닝(evening)코스를 듣는 조건으로 대학원 입학이 되고 신학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가 특별한 공부에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신앙인으로서 기도 중에 `나` 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는데 불가능속에서 가능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한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할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목표를 붙잡고 제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대학원에 정식 입학은 다시 했지만 제가 공부하자고 가족이 이사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그 학교에서 제공하는 통신 수업 가능한 과목부터 들었습니다.
가족이 이사 가는 곳을 따라 대학원을 두 군데 옮겨 다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예일대학을 다녀야만 그나마 더 공부를 할 수 있는 형편임을 파악했습니다. 왜냐 하니까 그 당시 아들 둘이 모두 중.고등학교학생으로 한참 대학준비로 제가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였고, 여느 가정처럼 제가 아이들 교육문제를 거의 담당해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남편이 한인 이민 교회목사인지라 저는 교회의 buy one get one free 풀타임 무보수 사역자로 교회발전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했었지요.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대학원 공부를 외롭게 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두 번의 시도 끝에 예일대학원 입학에 성공하고 먼저 다니던 대학원보다 오히려 더 좋은 성적으로 예일대 신학대학원 3년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기숙사나 학교 근처에서 살면서 공부하는 학생들과 그냥 공부만 하면 되는 학생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때를 회상해보면 너무 힘들어 집을 오가는 차를 울면서 운전하였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할 시간이 없고, 돈도 없고 아이들 돌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집 정리하고, 교회 일에 손님 대접까지 집에서 일일이 요리해서 해야 하는 제 입장이 수 많은 한인여성들의 어려움을 모두 경험해보는 뜻 깊고 힘든 인생학교를 경험해 본 셈 이지요.
많은 여성들이 결혼 후 자녀까지 있고 거기에 다른 도와 줄 가족도 없으면 이국 땅에서 일인이 몇 사람의 역할을 해 내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다른 남학생들이 부인들의 내조를 받으며 공부하고 있었고, 혹은 싱글 학생들과 어깨를 겨루며 경쟁하며 공부해야 하는 피 눈물 나는 학업의 시간을 거쳐 봤습니다. 그렇게 저는 힘겨운 신학 대학원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잠정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바꾸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결국 예일대 신학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그때는 Metro North로 교통편이 닿는(그럼에도 왕복 5시간이 넘는 거리로 버스,기차를 번갈아 탔습니다.) 뉴욕의 컬럼비아 법대에 도전하며 원서를 넣었습니다.
나중에 입학심사를 하신 교수님께서 저의 원서에세이의 내용이 결혼 후 한국여성으로 한국적 문화로 인한 장벽을 넘으며 어렵게 공부한 것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도전한 것을 높이 평가하시어 입학을 하게 된 것이라고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든 공부를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취업의 문은 더 어렵더군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이러한 공부나 경험들을 조국을 위해 쓰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 직장을 구해보려니 글로벌 한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 사람의 실력이나 경력,경험 보다는 나이에 큰 제한을 두고, 특히 기혼여성이라는 점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여러 정부기관이나 대기업의 면접관 들과 이야기해보며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 전반적으로 저 출산, 여성 경력 단절 문제가 왜 이슈화가 되는지 그때 너무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남의 나라인 미국은 저의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고 공부하려는 의지에 크게 크레딧을 주고 공부할 기회를 주었는데 막상 졸업 후 저의 능력을 조국을 위해 십분 발휘하고 싶었으나 위에 언급한 이유로 한국은 거부한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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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요즘에야 정보도 많고 공부하기가 수월해졌지만 미국에서 대학을 다녀본 사람으로 가정주부로 고학을 한 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고생스럽게 대학원을 나오시고 이민법과 재산 상속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답=제가 신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법대로 전향하게 되면서 마지막 학기를 거의 예일대 법대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때 들었던 과목이 Trusts & Estates (신탁 &유언-재산상속)과목이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 컬럼비아를 졸업하고 예일법대 출신으로 미국10대 로펌에서 Trusts & Estates department 파트너 였던 분이 예일, 하버드, 컬럼비아법대 졸업한 변호사 팀을 구성하시었고, 제가 살던 중부 뉴욕주 에서 재산 상속법 전문 로펌 변호사로 뉴욕시로 이사오기 전까지 재산 상속법 전문 변호사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이민법은 연방법입니다. 전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과 넓게는 세계 각곳에서 미국으로 오고자하는 분들이 모두 이민법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재산상속법 전문변호사로 일하던 중 앞으로 저의 법무 방향을 이민법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우수한 한인 이민법 전문 로펌을 미국 전역에 걸쳐 찾아 현재 일하는 로펌(Immigration Laywers PLLC)에서 매니징 파트너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컬럼비아법대에서 졸업 할즈음 파커국제법전문certificate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민법이 국제법분야에 들어가므로 이민법을 수강했고 이민법은 항상 제 법무과정에 가까이 있어 왔습니다. 컬럼비아법대는 세계적으로 인권법 으로 유명합니다. 이민법이 인권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고 이민자들 속에 살아가는 같은 이민자인 제가 할 일이라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문=변호사로써 또한 재미한국여성회를 이끌고 계시는데 단체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답=한국의 최초여성장관(상공부장관)이며 2대국회의원이었던 임영신박사께서 세우신 한국최초의 여성단체인 한국부인회에서 미국에 30년 전 이강혜씨를 통해 세운 역사가 가장 오래된 재미 한인 여성단체입니다. 2015년 10월말로 30주년을 맞습니다. 이름이 부인회라 구식이라 하는데 한국의 역사적인 단체에 뿌리를 두고 있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혼여부를 망라하고 모든 한인여성, 혹은 한인의 가족인 외국인 여성, 한인2세 3세 여성 모두에게 열려있는 기관입니다. 한국의 예지원의 뉴욕분원으로 특별인가를 받아 뉴욕 예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전통혼례와 한국여성이 알릴 수 있는 한국문화, 예절 전수를 목적으로 저희 기관산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재미 한국부인회가 어떤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신지요?
답=영문이름이 Korean Women’s Association of America 여서 2015년도에 30주년 기념으로 Lady’s Club 프로젝트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2명 이상만 되면 클럽을 만드실 수 있고 내용과 운영을 자율적으로 하되 저희가 모니터링을 간접적으로 하고 자원과 네트웤을 도와 드리려 합니다. 목적은 글로벌 한국에 맞추어 미국사회에 거주하는 한인여성의 아름다움과 품위와 재능을 미국사회에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도록 저희 기관이 플랫폼을 만드는 일을 도와드리고 함께 성장할 길을 돕는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데에 두고 있습니다. 뉴욕, 뉴저지를 중심으로 시작하여 미 전국에 한국여성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이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저희 단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말씀 드리자면 무료 의료진료와 건강상담, 교육을 인근 병원과 협력할 예정이며, 무료 법률상담, 부동산 투자 세미나 보험세미나, 학부형 세미나 그리고 비영주권 자를 위한 의대진학세미나와 같은 일과 한인 여성 미국 내 권익보호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의 여성가족부와도 협력하여 성 매매 방지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리고 뉴욕 및 미국 내 타 한인 단체와 협력사업을 진행중 인데,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한인 여성을 위한 교육 및 취미 클래스(영어,요리,미용,피부관리,의상, 예술 등)와 한인 여성 이민자 정착학교를 운영하며 그들의 취업이나 창업을 돕고자 합니다. 또한 차세대 한인 여성을 위한 인턴쉽 프로그램이나 취업, 자원봉사(volunteer)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기도 하며, KOTRA와 미국 내 경제 관련 한인 단체와 협력하여 한인 여성 소상인을 위한 여성사업가 프로그램 또한 계획하고 있습니다.
문=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신분문제로 고통 받고 있고 미국에서는 항상 사회이슈가 되고 있는데 변호사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이민법이나 정책은 무엇입니까?
답=이민자들이 약자 이다 보니 결국 정치권에 의해 이민정책이 좌우되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할 때 가 많습니다. 이민자 혹은 서류미비체류자들에 대한 혐오적이고 부정적인 정책보다는 미국경제에 비미국인 체류자들이 실제로 크게 기여해온 점을 생각하고 좀 더 인권을 존중하는 이민법과 정책이 실시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이런 면에서 한인정치 지도자들이 더욱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집된 힘이 있어야 목소리도 낼 수 있고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 국회에 들어가서 발언하고 표를 던지고 입법안을 내고 힘을 모을 수 있는 친 이민, 한인정치인들이 실제적인 힘을 낼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우리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죠. 한국인들에게 약한 결집하고,협력하는 힘이 가장 필요한 곳 중 하나가 바로 이 이민자법과 관련한 정책입니다. 이민법은 미국법이 아니라고 할 만큼 비인권적인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죠.
문=변호사님만의 변호사로써의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답=변호사로 목회자로 비영리기관책임자로 배경이 다양 하다 보니 좀 더 폭 넓은 분석력과 자원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비즈니스이지만, 궁극적으로 사람 위에 법이 존재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고, 그것이 저의 원천적인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끝으로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변호사님처럼 만학 도로써 공부를 하는 분들에게 메세지를 주신다면요?
답=저는 늦게 이민 와서 늦은 나이에 극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39세에 예일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44세에 컬럼비아법대에 입학했습니다. 제가 특별한 비법이나 재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좌절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소가 밭 갈 듯이 꾸준히, 묵묵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계단을 올라 가다 보니 이런저런 영광들이 뒤따랐던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요행이나 지름길을 찾기보다 자신의 확고한 꿈을 갖고 곁눈 팔지 말고, 포기 하지 않고 정진하길 바라고, 늦다고 생각 할 때가 가장 빠른 때 라는 격언이 있듯이 나이 때문에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나 공부를 주저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반성은 해도 후회는 하지 말자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현장인터뷰 강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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