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아들'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인간다움' [리뷰]

입력 2016-02-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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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사울의 아들 스틸컷

나치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시체들을 처리하기 위한 비밀 작업반이 있었다. `존더코만도`라 불리던 이들은 특별한 표시가 된 작업복을 입고 오직 시키는 대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그 임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에서 포로들을 가스실 건물로 이송시킨 후 안심하게 한 뒤 옷을 벗기고 가스실로 데려가는 것이다. 그 뒤에 시체를 꺼내 태우고 청소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존더코만도` 소속이었던 사울의 앞에 어린 아들의 주검이 도착한다. 사울은 아들의 주검을 발견하면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인식한다. 유대인의 장례법에 따라 아들의 시신을 묻어주기 위한 사울의 맹목적인 여정은 애처롭고 불안하다.
카메라는 항상 그런 사울을 따라다닌다. 인물의 눈높이를 유지해서 따라가는 촬영 기법을 통해 관객은 사울의 여정에 동참한다. 그와 함께 보고, 오직 그가 가는 곳을 따라간다. 다른 곳을 볼 겨를이 없이 오롯이 그에게 집중한다.
또 영화는 인공적인 효과를 거치지 않은 소리를 통해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카메라는 사울만을 쫓기 때문에 가스실 안에서 일어나는 학살의 잔인함은 비추지 않는다. 대신 죽어가는 유대인들의 비명과 잠긴 문을 두드리는 소리 등 강렬한 음향으로 대신한다. 걸러내지 않은 소리는 끔찍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극강의 현장감을 끌어낸다.

사진출처-사울의 아들 스틸컷
영화는 끝에 다다라서야 관객에게 의문점을 제시한다. 사울이 자기 아들이라고 말하는 소년이 사울의 아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암시. "넌 아들이 없잖아"라고 말하는 동료의 말에서 볼 때 그 소년은 사울의 아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시체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자신이 처리한 시체와 같은 운명을 맞을 그에게 `모두 다 묻어줄 수 없으니 이 아이만은 묻어주어야겠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곧 시쳇더미에 던져질 그는 마지막으로 가장 인간답고 신성한 행위를 하기 위해 그토록 맹목적이다.
영화는 끝까지 그 시체가 진짜 아들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좀 더 명확해진다. 아들의 주검을 발견한 아버지의 처절함에서 아무것도 아닌 한 남자가 생에 마지막으로 인간다움을 행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또 이 영화는 한 인간이 처절하게 지키고 싶었던 가치를 통해 잔인한 장면 없이도 나치의 잔혹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내내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어떤 감정도 내보이지 않았던 사울이 미소 짓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끝없는 어둠의 터널을 통과했을 때 마주할 수 있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은 사울과 여정을 함께 한 관객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해서는 안 될 인간다움을 발견하게 한다.
수천 명씩 죽어 나가는 수용소에서 죽음을 대하는 사울의 신성한 마음은 인간다움의 가치를 말한다. 사울의 행동은 단연코 이성적인 사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 때문에 사울은 행복해진다. 영화 속에서 사울은 충만하고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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