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직무교육을 통한 또다른 시작을 열다

입력 2016-12-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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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입대를 위해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서 다들 해병대다, 현역 육군이다, 한창 입대 할 때 나는 조용히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시작했다. 사회복무요원 하면 마치 편법으로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인 양 보는 사회 시선도 그렇고, 신체등위 4급 판정을 받은 나 조차도 사회복무요원 하면 서류복사나 하는 자리로 알고 있었기에 자부심 같은 것이 애초에 없었다. 나라를 지킨다며 훈련소로 입영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자부심을 갖는 것이 그 누구인들 쉬우랴. 그냥 무난하게 사고 안치고 2년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복무에 임했다. 대부분의 사회복무요원들이 그렇게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시작 했을 것이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복무를 시작하기 전 까지.
사회복무요원 직무교육에서 본 세상
처음 내가 배치를 받은 부서는 원무팀이었다. 병원 특성상 어르신들이 많고, 다른 병원에서는 받지 않는 노숙자 분들이나 저소득층 환자분들이 많았다. 내 일은 로비에서 이러한 환자분들의 안내를 도와드리는 것이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임하기 전 내 마음가짐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 이 일은 매우 성가시게 다가왔다. 병원로비에 설치되어있는 안내판은 왜 못 보는 것인지, 조금만 걸어가다 보면 통로 양쪽에 떡하니 있는 엘리베이터는 왜 자꾸 묻는 것인지, 자동 수납기계 조작은 왜 못하고 있는지 어느 하나 이해되는 부분이 없었기에 부탁을 받을 때 마다 속으로 짜증내면서 환자분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던 중에 10월 말 직무교육을 가게 되었다. 국립의료원이라던가 혈액원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은 소양교육 외에 직무교육을 2주 수료하게 되어있다. 여러 강좌들 중에 내 눈에 띈 프로그램은 장애체험 프로그램과 노인체험 프로그램이었다. 두 프로그램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통 우리는 길을 걸을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인도의 경사를 의식하지 않는다. 계속 신경 쓸 만큼 다니는데 있어서 불편하지도 않고, 설사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대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체험 프로그램에서 휠체어를 타고 본 세상은 전혀 달랐다. 내가 평편하다고 생각했던 도로들이 차도 쪽으로 경사져 있어서, 의도적으로 차도 쪽 팔을 더 쓰지 않으면 금세 휠체어가 고꾸라졌다. 인도에 공사라도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위험천만한 차도로 휠체어를 몰 수 밖에 없었다. 도로에 있는 각종 시설물들의 위치는 또 어떤가. 우리가 미관상 좋으라고 둔 화단은 시야를 가려서 자동차나 자전거 같은 장애물을 미리 포착하기 힘들게 했다. 버스 정류장에 설치되어있는 노선도는 팔로 몸을 지탱하면서 일으켜야 겨우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사람들이 한번 정도는 보내주는 황송한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길은 험하디 험했다.
노인체험 프로그램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시각적인 부분이었다. 팔과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착용해, 불편한 팔다리를 만들 때만 해도 ‘뭐 이정도야’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노안을 재현하기 위한 고글을 썼을 때 ‘아 이런걸 보고 시너지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무슨 말이냐? 고글은 렌즈 가운데에서 조금 아래에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공간을 통해서만 앞을 선명하게 볼 수 있고 나머지 부분은 실루엣조차 흐릿할 정도로 뿌옇게 되어 있었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내리깔지 않으면 앞을 볼 수 없었다. 팔다리가 무거워서 감각이 무디고, 시야가 명확하지 않으니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컴퓨터실로 가서 컴퓨터를 키고, 애국가 1절을 입력하는 것이었다. 늘 쓰던게 컴퓨터니 전원 버튼 하나 찾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바탕화면에 있는 수많은 아이콘 중에 한글 프로그램을 찾는건 인내심이 필요했다. 제일 왼쪽 위의 아이콘부터 차례대로 마우스를 올려가면서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는 내 모습은 어느새 내가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답답해 했던 어르신들의 모습과 정확히 똑같았다.
교육이 끝나고 복귀했을 때 내 마음가짐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전과 같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환자분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휠체어를 끌고 길을 나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환자분들이 청하시는 도움에 기꺼이 몸을 움직였다. 병원의 안내판은 글씨가 너무 작았고, 감압센서 수납기계는 조작하기에 힘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근무지 요소요소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장애물이 많았다. 나는 인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해결했던 일을 누군가는 내가 보지 못한 어려움 때문에 쉽게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분들의 진심이 담긴 감사표시가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이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은 내가 그분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도와줘야 할 이유이지 더 이상 답답해하거나 귀찮아 할 이유가 아니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교만했는지 알게 됐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단 사실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새로운 나
교육이 끝나고 한 달 뒤에 나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직무교육 때 현장실습을 했던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중1 친구들의 방학기간동안 수학 학습 멘토링 봉사활동을 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온 것이다. 방학동안만 이 친구들한테 작은 도움을 주자고 생각하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작한 멘토링 봉사활동이 지금 1년 넘게 매주 월요일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근무 끝나고 저녁시간에 진행하는 봉사활동이라 지치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조금씩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모습이나 나에게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 매주 월요일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나에게도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남은 일주일을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만약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체험해 볼 기회가 없었더라면, 여전히 나는 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 여전히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것이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고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사회 여러 분야에서 맡은 바 업무를 수행하는 사회복무요원들이 있을 것이다. 부디 2년을 버리는 시간이라 생각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좀 더 발전시키는 시간으로 쓸 수 있으면 한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면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또 다른 독자분들도 사회복무요원들이 제 나름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격려를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글 / <경인사회복무교육센터> 이상재 사회복무요원
* 외부 칼럼은 당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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