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 김태용 감독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 만들고 싶다" [인터뷰①]

입력 2017-01-12 09:35  


김태용 감독은 `거인`이란 작품을 통해 각인 되었다. 청춘의 성장통에 관한 영화였다. `거인`에는 열일곱 소년 영재(최우식)가 아무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장통을 겪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갓 사회에 뛰어들어 이리저리 치일 때라 그의 영화가 특히 마음에 남았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김태용 감독이 신작을 내놓았다. 영화 `여교사` 다. 김태용 감독은 전작 거인에 이어 `생존`에 대한 이야기에 방점을 찍었다. 이번엔 생존을 위해 자존감마저 포기한 주인공 효주(김하늘)가 나온다.
20대 초반 충무로에 뛰어들어 올해 서른한 살이 된 김태용 감독 영화의 주요 키워드는 `살아남기` 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전작 거인보다 더 독하다. 거인에서 영재의 미래는 영화 끝부분에 다다라 희망의 빛줄기가 비치지만 `여교사` 효주가 벌이는 생존을 위한 싸움의 결과는 처참함 그 자체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효주가 느끼는 열등감, 모멸감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캐릭터의 감정에서 비롯된 서사의 힘을 중시하는 그의 연출법이 `여교사`에서 절정에 다다른 점도 이번 영화에서 두드러진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첫 상업영화라서 부담이 됐을 텐데, 특히 공을 들였던 부분이 있나.
연출적인 기교보다 서사나 배우들의 표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장면 중에서 꼽자면 재하가 마지막에 우는 신에 많은 공을 들였다. 사실 김하늘, 유인영 선배님은 베테랑이지만 이원근의 경우는 `여교사`가 데뷔작인 친구라서 신경을 더 썼다. 기본적으로 원근이가 현장을 겁내지 않도록 했고 재하라는 캐릭터가 영화의 초중반에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를, 묘한 인물로 보이기 위해 원근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사전 작업이 있어야 마지막 재하의 감정 폭발 신이 더 임팩트 있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원근이라는 배우의 감정들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과정에 많이 집중했다.
이원근을 캐스팅한 과정을 들려달라.
`여교사` 오디션을 통해 뽑은 친구지만 `거인` 때부터 함께 일하고 싶었던 친구였다. 그때는 아쉽게도 함께 작업을 못 했지만 줄곧 아까운 친구라고 생각했다. 여성스럽고 또 꽃미남 스타일인데 이런 것들은 세월이 지나면 다 소용없다. 원근이도 20대 후반으로 갈수록 잘생긴 배우의 이미지보다는 진정성 있는 연기가 돋보이는 배우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캐스팅했다. 이 친구가 왜 영화에는 출연하지 못했을까 줄곧 궁금했었다. 이번에 만나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눠보니 욕심도 많고 보는 영화의 폭도 상당히 넓은 친구더라. 그런데 꽃미남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생긴 편견이 생각보다 상당했던 듯싶다. 보통 영화감독들은 일상적인 얼굴을 선호하니까. 그래서 나는 오히려 원근에게서 일상적인 것을 끌어내고 싶었다.
혜영이라는 캐릭터도 인상 깊다.
내가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서 종종 비싼 차를 타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볼 수 있어 놀랐는데, 그런 친구들은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준수한 데다가 착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했던 점은, 그런 친구들은 늘 아쉬운 게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생겨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간다. 심지어 누군가가 옳지 못한 행동을 해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난 그때마다 그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런 생각들이 혜영이라는 캐릭터를 그려낼 때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것 같다. 결코 의도적인 건 아니다.
효주는 어떤 인물인가.
계약직 교사인 효주는 학생이 주는 모멸감, 상급자가 주는 모멸감, 남자친구가 주는 모멸감으로 인해 무기력해진 인물이다. 그런데 혜영이 그 무기력을 또 다른 모멸감으로 의도치 않게 자극한다. 그 자극들이 바람 빠진 공을 점점 부풀어 오르게 하다가 터져버리는 그런 상황을 생각했다.
전작 `거인`과 `여교사`의 다른 지점은 뭔가.
그동안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아이들의 삶을 다뤘다. `여교사`를 통해서는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보고 싶었다. 30대가 되니까 계급 문제에 관심이 생기더라.
`여교사`라는 제목이 섹슈얼한 느낌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더라. 제목을 `여교사`라고 지은 이유는 일단 여자 선생님들에 관한 이야기이니까, `여교사`라고 한 거다. 다른 이유는 없다. 이 제목 외에는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제작사에서도 이 제목을 지켜줬다. 그리고, 왜 여교사였는지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들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사람들은 기분을 풀 데가 없지 않나. 타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것, 아이들 앞에서도 쉽게 감정을 드러낼 수도 없다. 침묵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계급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지를 본 거다. 참고 쌓아온 감정들이 첨예하게 대립할 것 같았다.
영화에 대한 평이 갈리는 것 같다.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더라. 사실 이런 반응이 낯설다. 전작 `거인`은 작은 영화가 관심이 적었다. 첫 상업영화로 새해부터 논쟁거리를 던지게 돼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영화로 어떤 정서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판을 깔아 주는 것도 중요하다. 20대 친구들은 효주의 열등감에 거부감을 느끼고, 30, 40대 직장인들은 공감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영화다. 관객이 가진 각각의 사회적 경험에 따라 투영하는 게 다를 수 있다. 영화적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예상했다.
`여교사`의 관전 포인트를 말해달라.
인간의 본성을 그리는데 주안점을 둔 영화다. 또 지금까지 나온 치정극들을 보면 보통 늙은 남자가 어린 여성을 도구로 사용하는데 우리 영화는 이걸 뒤집은 영화다. 평소 여성캐릭터가 특징도 없이 남자를 유혹하는 캐릭터로만 소비되는 것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것 같다. 또 `로망스`에서 선생님으로 열연했던 김하늘이 14년 뒤 어떻게 변신했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영화를 만들 때 지향하는 점이 뭔가.
세종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인데, 연기 전공과 연출 전공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 그러면서 연기하는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리곤 했는데, 그 결과 배우가 편해졌고 그들에게 관심이 생기게 됐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짜인 각본에 맞춰 연기하고 있다기보단 실제로 그들이 느낀 것을 표현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나도 그런 부분들을 지향하고 싶다.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을 만드는 거다. 내가 그동안 연출한 영화들을 보면 연출적인 기교보다는 하나의 배우가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작품이 많다.
듣다 보니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어떤 장르를 하고 싶고 또 어떤 배우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가.
사회성 있는 스릴러물을 연출하고 싶다. 어떤 사건을 파헤치다가 이면에 있었던 인간의 무의식, 편견들을 끄집어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최근 개봉했던 `미씽: 사라진 여자`가 좋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극 중 캐릭터도 좋았지만 지선(엄지원)이 겪는 상황 속 디테일이 좋았다. 또 대부분 한매(공효진)의 상황만 지켜보게 되는데, 중간중간 보이는 지선의 심리가 더 구슬프게 느껴졌다. 나도 이런 종류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는.. 글쎄.. 박해일, 이선균 선배님 같은 배우들이 캐스팅에 응해준다면 감사할 것 같다.
차기작이 궁금하다.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
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최대한 빨리 만들고 싶다. 올해 안에 하고 싶다. 영화는 또 영화감독은 관객을 설득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다음 작품은 장르적인 재미도 더 살리면서 관객을 설득해보고 싶다. 더 규모가 큰 작품을 준비 중이다.
최근 본 영화 중 추천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봤다. 훌륭하더라. 켄 로치 감독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보는 세상은 어둡고 서늘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을 품어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브리 라슨 주연의 `룸`도 좋아한다. 사람들이 서로 연대해서 치유해주는 작품이다. 그런 메시지를 던져주는 감독이 되고 싶다. 그렇게 30대를 맞이하고 싶다.
(사진=필라멘트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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