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 오리지널 웨이브 대표 '무명 화가 출신 CEO가 만들어낸 예술 자립 생태계'[인터뷰]

입력 2017-03-17 15:19   수정 2017-03-17 23:35


봄의 기운이 만연한 3월, 빌딩 숲 가득한 서울 도심에서 쉽게 지나쳤던 우리 주변의 소박한 모습과 그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전시가 열렸다. 젊은 작가 5인의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과 예술의 관계를 담아낸 `Rooms for Art`가 바로 그것. 독특하게도 이번 전시회는 여느 다른 전시회와는 시작이 좀 달랐다.
2년 전 한 사업가가 한때 미술 작가 4천여 명이 속한 온라인 커뮤니티(스튜디오 유닛)를 운영했던 김남희 오리지널웨이브 대표를 알게 되면서 이 전시회는 시작된 것이다. 최근 서울 모처에서 오리지널웨이브 김남희 대표를 만나봤다.
Q. 이번 전시회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한다.
A. 정주형 대표라는 분이 2년 전에 나에게 작가들을 후원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른 후원보다 작업실을 제공하면 좋을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제안을 했더니 수락하시더라. 나보고 작가들을 모아달라고 했다. 예전부터 알고 있는 작가 5명을 골랐다. 우리 사무실 위에 한 층을 무상으로 2년 동안 대여해줬다. 그렇게 무상으로 작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빌려주게 된 게 이번 전시의 시작이다. 선발된 작가들이 작업을 열심히 했고, 이번 전시는 그 보고전 같은 거다. 얼마나 발전,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Q. 어떤 기준으로 작가 다섯 명을 고른 건가?
A. 나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를 하고 있다. 그전에는 5년 정도 아티스트 커뮤니티(스튜디오 유닛)를 운영했다. 나도 한때는 작가였고 그 커뮤니티는 작가 4,000명 이상이 소속된 온라인에서 가장 큰 커뮤니티였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 중에는 그 커뮤니티를 거쳐 간 사람들이 많다. 작가들도 개인 사업자처럼 정치, 마케팅 같은 걸 잘해야 그림을 잘 팔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걸 못하고 작업만 열심히 하는 작가들을 골랐더니 5명이 추려지더라. 내 기준에서는 고심하고 고심해서 좋은 작가 다섯 명을 뽑았지만, 작가들은 외에도 많다. 작업실만 제공이 돼도 정말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을 거다.
Q. 작업실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큰가?
A. 우리나라 미술 시장이 굉장히 어렵다. 좋은 때가 드물다.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직업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작가들은 직업이 미술 작가인데 그걸로 돈을 못 번다.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서 학원에서 강사를 하거나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본업에 집중을 못 하고 급기야는 본인의 자아가 헷갈리기도 한다. 미술 작업은 엄청 집중해서 본인을 다 뽑아야 하는 건데 그럴 수가 없어지니까 재능 있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진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4,000명의 작가가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여전히 작업하는 작가는 10분의 1 정도 밖에 안된다. 앞으로는 더 많이 없어질 거다. 작가도 온전히 집중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이 없으면 그림은 더 잘 나올 수가 없다. 직업이고 전문적인 공간을 필요로 하니까 작업실이 꼭 필요하다. 작업실이 주는 안정감이 심리적으로 중요하다.
Q. 그 외에도 동료 작가들이랑 같이 작업실에서 작업하다 보면 더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기도 하다.
A. 맞다. 한 작가가 자리를 잡아서 자생적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상관없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라서 혼자 있으면 힘들고 외롭다. 자기와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다른 작가들이 같이 있으면 위안이 된다. 작가는 상사도 없고 클라이언트도 없는 직업이라 한없이 나태해질 수 있다. 잠깐 정신을 놓으면 몇 년이 흘러가기도 한다.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전시를 하고 작업을 하면 자극도 되고 정보도 공유하고 좋다.

Q. 이번 전시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A. 보통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작업실을 제공한다는 사업가가 없다. 작업실을 제공할 테니 그림을 몇 점 달라고 한다거나 학생을 몇 회 가르치라고 한다. 하지만 정주형 대표는 고맙게도 바라는 게 없고 2년 후에 스스로 작업실 비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작가들이 크면 끝이라고 하더라. 작가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2년 동안 정말 열심히 작업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에게 바라는 게 2년 후에 스스로 성장하는 거라고 하니까 그게 더 부담스럽다고 하더라. 내가 봐도 작가들 실력이 껑충 올라갔다. 우리가 이 전시를 열어서 다른 작가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또 생기면 좋을 것 같다. 누군가의 작은 희생으로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사회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정주형 대표처럼 작가들을 작게라도 돕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그들 사이에서 브릿지처럼 도와줄 의향이 있다.
Q. 지금 대표로 있는 오리지널웨이브는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라고 들었다. 자세한 설명 부탁한다.
A. 우리가 아는 모든 브랜드를 만든다. 홍삼, 화장품, 차 브랜드 등. 브랜드가 처음에 만들어질 때 콘셉트라는 게 필요하다. 각 브랜드마다 특징이 다른데 전략적으로 타깃을 설정하고 그 특징을 만드는 회사다. `이 브랜드를 이렇게 만들어서 내놔야 잘 팔릴 거`라고 전략을 세우고, 스토리텔링을 하고 디자인까지 모든 부분을 관여한다.
Q. 오리지널웨이브의 사업과 이번 전시는 어떤 관계가 있나?
A. 오리지널웨이브에서 가장 기본적인 아이덴티티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거다. 그러면서 우리는 순수 미술 작가들에게서 소스나 영감을 가져올 때가 많아서 항상 빚진 마음이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그렇게 받은 것들을 갚아가는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Q. 김남희 대표는 미대를 졸업해서 아티스트로도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쩌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건가?
A. 전에 아티스트 커뮤니티를 운영할 때 1년에 한 번씩 미술품을 파는 파티를 했다. 작가로 활동하다가 어쩌다가 대표를 맡게 돼서 처음으로 기획이라는 것을 하게 됐다. 하다 보니까 아티스트보다 기획자가 더 성격에 맞더라. 나는 대학교 때 쇼핑을 많이 했는데 그 기억 때문에 브랜드를 보면 이런 요소가 들어가면 소비자들에게 어필을 할 수 있을지를 잘 아는 것 같다. 내 경매파티에 온 어떤 사람이 나에게 브랜드에 대해 조언을 구해서 우연히 돕다가 그게 너무 잘 돼서 지금의 회사를 만들게 됐다. 어쩌다 보니 8년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브랜드를 만드는 일과 순수미술 작업은 많이 비슷하더라.
Q. 어떤 면에서 비슷한가?
A. 브랜드를 만들 때 물론 매출이나 그런 숫자가 중요하지만 그건 지난 지표다. 과거를 잘 보고 가는 거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뭐가 올지에 대한 촉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도 그런 거다. 어떤 분이 `미래에 대한 안테나를 가지고 계속 짚어가면서 가장 첨단에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예술가`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은 세상에 없는 것을 해야 한다. 계속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그게 매력 있고 아름다워야 한다. 아티스트들은 그걸 매일 매일 고민하면서 작업을 한다. 그 작업이 브랜드 만드는 과정이랑 비슷하다. 우리는 브랜드를 만들 때 숫자적인 부분도 참고하지만 아티스트의 촉으로 어떤 게 미래에 더 먹힐지에 대해 중점을 두는 회사다.
Q. 사업을 하면서 아티스트 출신인 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어떨 때 그걸 가장 느끼나?
A. 우리 브랜드는 아티스트와 콜라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브랜드가 한 작가가 계속 그려온 주제와 맞으면 그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그랬을 경우 거기서 나오는 시너지가 크다.
Q. 아티스트랑 기획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뭔가?
A. 이번에 전시회를 한 작가들은 나랑 10년 이상 알았다. 그중 이현진 작가는 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했다. 픽사 같은 큰 회사에서 취업 제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억대 연봉 자리를 거절하고 한국에 그림을 그리러 왔다. 나머지 작가들도 다 마찬가지다. 한 작가는 결혼할 기회가 있었지만 좋은 혼처를 마다하고 작업에만 몰두하겠다며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그들과 달랐다. `월급이 매달 안 들어오면 어쩌지`를 걱정하는 사람인데 다른 작가들은 그런 고민 없이 작품 활동에만 푹 빠지더라. 나와 손재주는 별로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을 잊고 그렇게 몰입할 수 있는 건 병 같은 거다. 나는 그들에게 농담삼아 `질병`이라고 표현한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게 태어난 것 같고 그래서 화가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게 가장 큰 재능의 차이다.

Q. 화가로 활동하던 시절이 그리운 적은 없나?
A. 당연히 그립다. 여유가 생기고 나이가 들면 그림을 그릴 것 같다. 근데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렇게까지 자기 인생을 다 소진하면서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거기에 내가 명함을 내민다는 거는 뻔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이렇게까지 자기 몸을 불살라서 사회 곳곳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이 많다. 항상 그들에게 빚진 마음이 있다. 어떻게든 돕고 싶고 사회적으로도 작가들을 도와주는 것들이 활성화가 됐으면 한다.
Q. 어느 브랜드의 컨설팅을 맡았었는지 궁금하다.
A. 정관장이나 토즈, 신세계 푸드마켓, 농심 등 다양하다. 브랜드를 처음부터 다 만드는 경우도 있고 한 파트만 하기도 한다. 재작년부터는 중국과 일을 하고 있다. 차나 화장품 브랜드를 같이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300개 정도 매장이면 잘 됐다고 하는데 중국은 한 번에 2,000개를 만든다. 투자가 훨씬 과감하고 크다. 중국 시장에서 일하는 것도 재밌는 것 같다.
Q. 중국과 한국, 각 나라 사람들에게 통하는 콘셉트도 다를 것 같다.
A. 워낙 한류 때문에 인기가 많아서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건 중국에서도 있다. 정서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중국은 워낙 넓고 인구도 다양해서 어떤 걸 하더라도 마니아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클라이언트랑 상의하다 보면 `이건 대중적이지 않다`고 해서 버려지는 아이디어가 많은데 중국은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도 그게 먹힌다.
Q. 브랜딩 한 기업을 보면 분야가 참 다양하다. 어떻게 모든 분야를 다 아는 건가?
A. 우리도 스터디 기간이 필요하다. 자판기처럼 뚝 나오는 게 아니고 최소 두세 달은 그 분야를 깊게 공부를 해야 한다. 그 회사의 팀원들이나 사장들이랑도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해답을 클라이언트가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Q. 오리지널웨이브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A. 솔직히 성공한 지는 잘 모르겠다. 브랜드도 특별한 콘셉트가 있어야 돼서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하다. 우리는 아티스트들과 연계하는 그런 아이덴티티가 확실하다. 그게 장점인 거 같다.

Q.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
A. 내부적인 거는 불안함인 것 같다. 강박 같은 건데 내가 쓸모 있고 싶다는 불안함이다. 시간이 그냥 흘러가게 되면 죄책감을 느낀다. 너무 오랫동안 화가가 되려고 준비를 했고 미대를 나와서 무언가를 생산해 내지 않는 거에 대해서 죄의식을 가지는 것 같다. 외부적으로는 다행히 신기하게 일이 꾸준히 있었다. 그래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A. 내 자존심에 안 상하게, 내 포트폴리오에 넣어도 창피하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제는 회사 식구도 늘어나니까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좀 더 잘 챙겨야 하고 냉정해져야 하고 그래야 한다.
Q.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있다면 언제인가?
A. 항상 힘든 것 같다. 브랜드 만드는 거는 즐겁고 좋은데 사람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럴 때 좀 힘들다. 누르면 아이디어가 나오는 자판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Q. 일 외적으로 본인만의 시간은 뭘 하면서 보내나?
A. 제일 친한 친구들을 만나서 여행 가는 걸 좋아한다. 해외로 여행을 가면서 머리를 식히는 편이다. 나는 일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인데 남편은 효율적으로 일하고 남는 시간은 쉬는 스타일이다. 나는 생각이 많아서 잘 못 자는데 남편이 강제로 산책도 같이하자고 하니까는 쉬게 되더라. 그런 게 고마운 것 같다.
Q. 아티스트,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를 하자면?
A. 올해부터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너무 마음이 답답하더라. 지난주가 첫 학기라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써서 내라고 했는데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대기업을 다녔지만, 대기업에서의 사람 수명이 너무 짧다. 취업하는 친구들이든 자기 사업을 하는 친구들이든 큰 그림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Q. 10년 뒤 김남희 대표는 어떤 모습이고 싶나? 어떤 모습일 것 같나?
A. 큰 그림은 있다. 내가 스무 살쯤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가 망하셨다. 그때 너무 고생했던 게 있어서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좀 불안했던 것 같다. 힘들던 시기에 항상 기도하면서 `나중에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나처럼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환경에 막혀서 못하는 애들을 도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10년 뒤에 일을 끊지 않고 한다면 그런 부분을 찾아내서 체계적으로 하고 있을 것 같다. 엄청 부자가 되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때그때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Q. 김남희 대표처럼 예술가들을 돕고 싶지만 후원할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작가들을 후원하려면 어떤 루트를 통해야 효과적일까?
A.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그동안 미술관에 한 번도 온 적 없던 사람들도 많이 와서 그림을 구매해갔다. 이번 전시 작품 중 절반 이상이 팔렸다. 작가들이 이후에 작업실을 본인들 힘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된 거다. 다른 많은 작가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계속해서 있기는 힘들 수도 있지만, 한 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꾸준히 후원자들이 생긴다면 일반인들도 점점 알게 되지 않을까? 일반 사람들 중에서도 미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만약 도움을 주고 싶은 후원자가 있다면 오리지널 웨이브 측으로 연락을 하면 작가들을 연계해 줄 수 있다.
Q. 올해 목표가 있다면?
A. 주어진 것들을 잘하고 싶다. 나도 모르게 가진 마음에 부담에서 자유로워 지고 싶다. 일에 몰두해서 사는 건 여전하지 않을까 싶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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