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폐청산 중심에 선 `감사원`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 정부의 정경유착 의혹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한 감사 결과를 잇따라 발표해 정치권과 관련 업계가 후폭풍에 휩싸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 정부에서 임명해 임기를 5개월 앞둔 황찬현 현 감사원장의 유임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황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53년생 동갑내기인데다 사법고시 22회, 사법연수원 12기로 동기이기도 하다. 적폐청산이 화두로 떠오른 시점에 감사원장은 그대로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그동안 감사원장은 헌법에 보장된 임기 4년을 지키지 못하고 새로운 정부가 구성될 때마다 교체돼왔다. 2011년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양건 전 감사원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임기 2년 반만 채운 채 자리에서 물러났다.
공교롭게도 그 빈자리를 채운 황찬현 감사원장은 올해 12월 퇴임을 앞두고 자신을 임명한 박근혜 정부 대신 정경유착 해소와 적폐청산을 내건 문재인 정부 맞춤형 감사를 쏟아내고 있다.
● 文 정부 출범 후 국정농단 실태 `폭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감사원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이어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면세점 특허 선정까지 민감한 현안에 대한 감사 결과를 잇따라 발표했다.
감사원은 지난 12일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관세청이 실시한 세 차례의 면세점 특허 심사 과정이 조작됐다고 보고 관련자 4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관세청은 두 차례에 걸쳐 매장 면적에 대한 점수를 조작해 롯데면세점 대신 한화와 두산을 신규 사업자로 선정해줬고, 지난해 청와대 지시에 따라 무리하게 사업권을 발급해준 사실도 확인됐다.
검찰은 감사원 발표 하루 만에 면세점 사업자 서류를 파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천홍욱 관세청장과 사업자 평가점수를 조작한 4명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고, 더불어민주당은 기획재정위원들을 중심으로 이번 사안에 대한 국정감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보다 앞서 한 달 전 감사원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도 특검 수사결과 보다 많은 444건이 부당하게 정부 지원에서 배제된 사실 등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혀내기도 했다.
검찰로부터 실형을 구형받은 김기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의 혐의를 결정지을 핵심 증거가 모두 감사원 감사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 미묘한 시점?…"통상적 절차일뿐"
이처럼 정권 교체와 감사원장의 임기가 맞물리는 미묘한 시점에 민감한 현안들이 감사원을 통해 뒤늦게 사실관계가 드러나고 있지만, 감사원은 통상적인 절차이고 국회 감사요구에 따랐을 뿐이라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감사원은 이번 면세점 비리에 대해서도 감사가 완료 시점보다 발표가 늦은 것은 진술과 근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을 뿐 의도적으로 심의·확정을 미루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감사원의 바람과 달리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 국정원 등 전방위적인 개혁이 추진되고 있고, 적폐청산의 저격수로 감사원의 역할과 결과물에 여론이 집중되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 면세점 비리는 `맛보기`…4대강 감사 `본게임`
감사원은 블랙리스트 의혹과 면세점 비리 실태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네 번째 감사도 올해 말 발표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직접 재조사하겠다고 밝힌 지 한 달 만인 6월 중순 감사원은 4대강 사업 감사에 재착수했다. 4대강 사업의 진행 단계에 맞춘 네 번째 감사로, 추진계획, 건설 과정, 수질 관리 문제 등 사업 전반에 대한 감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감사원은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왜곡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대병원, 사장 퇴진을 두고 노사 갈등이 커지고 있는 공영방송 KBS를 예비감사하는 등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 민감한 감사를 줄줄이 진행하고 있다.
이번 감사결과와 진행사항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독립성이 보장받는 감사원이지만 정권의 코드에 부합해야하는 숙명이 그대로 드러낸다.
● 코드 맞추기 성공한 감사원…황 원장 유임 가닥?
여러 논란에도 황찬현 감사원장은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12월로 예정된 임기까지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임기가 불과 5개월이 남은 상황에서 감사원 독립성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민감한 현안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는 도중에 새로운 감사원장으로 교체하는 것 역시 임명권을 쥐고 있는 청와대에 정치적 부담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
적폐청산 대상인 보수정권의 인사를 남겨두는 대신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대안을 선택했다.
이번 4대강 감사를 앞두고 청와대는 신임 사무총장에 왕정홍 감사위원을 임명하고, 김진국 변호사를 새 감사위원으로 임명했다. 왕 사무총장은 문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이고, 김 감사위원은 참여정부에서 법무비서관을 지낸 인물이다.
감사원은 공정위와 함께 독립된 기관으로 새 정부의 전방위적인 개혁의 전면에 서게 됐다. 황 원장도 새 사무총장, 감사위원과 함께 자신을 발탁해준 지난 정부의 적폐를 직접 걷어내야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황 원장이 정권 코드 맞추기가 아닌 말 그대로 적폐를 걷어내는 감사로 감사원 조직의 신뢰도 지켜내고, 12월로 예정된 남은 본인의 임기도 지켜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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