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력이 국력] 서울 속 '라라랜드' 꿈꾸는 별 덕후…김영진 천문대장

유오성 기자

입력 2017-08-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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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은 몇 개나 될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라도 15개를 넘지 못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두컴컴한 하늘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별들이 빛을 잃어버린 서울 하늘이 오히려 시골 보다 별을 보기에 알맞다고 이야기하는 남자가 있다. 삶에 지친 도시 사람들을 대상으로 별을 강연하는 김영진 과학동아천문대 천문대장의 얘기다.


(▲ 사진 = 김영진 천문대장)

◆ 도시에서 별을 이야기 하는 남자
김영진 씨의 직업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별 관련 콘텐츠 제작자 겸 강연자’다. 천문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별의 종류와 별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4년 전 천문대가 처음 용산에 자리를 잡았을 때만 해도 천문대의 주 방문객은 초등학생이었다. 입시에 바쁜 중·고교생은 물론 취업과 일상생활에 치인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이 가까이 하기에 천문대라는 존재는 당장 내 삶에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3년 전 처음으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 별 강연을 열자 예상과 다르게 전화가 밀려들었다. 지난 4월부터는 레져문화 플랫폼 프렌트립(프립)과 연계해 ‘청춘별파티’와 ‘금요관측회’를 진행하고 있다. 우연히 강의를 들으러 온 담당자가 강의 내용에 만족했고 그 이후 프립을 통해 강연회가 열렸다. 젊은 사람들 위주로 입소문이 나면서 만석 행진이다. 참가자들은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별을 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김 대장이 20년 동안 쌓아온 별 이야기가 매력적이라고 평가한다.

“별과 관련된 콘텐츠에 별자리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 곳에선 성인들에게 별과 실생활이 밀접하게 연관된 콘텐츠를 제공해요. 예를 들어 별과 관련된 네이밍이 국내에 수없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 브랜드인 ‘갤럭시’와 ‘베가’가 있는데 별에 대해 알면 이들의 성패가 갈린 이유를 다른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죠.”


◆ 은행원 대신 선택한 `천문대`
김 대장은 천문학과를 나오지 않은 아마추어 천문학자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에 나오는 목동이 찾는 별자리가 궁금해 매일 밤 쌍안경을 들고 밤하늘을 훑었다. 대학 진학 후에도 김 대장의 별 사랑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전문적이고 집요하게 이뤄졌다. 당시 대학가에서 가장 유명했던 천문 동아리 ‘별’에 가입해 활동했다.

“전공은 컴퓨터학과였습니다. 성적 맞춰 대학 간 거죠. 그런데 마침 제가 진학한 학교에 유명한 천문 동아리가 있었어요. 거기 가입해 활동하면서 매일 별만 봤습니다. 학교에선 별이 잘 안보이니까 짐을 싸서 교외로 나갔습니다. 어두운 곳을 찾아야 하니까 산 속 깊숙한 곳을 찾아 다녔죠. 그런 장소를 찾으면 노숙하면서 별을 봤죠.”

당시 대학 천문 동아리에서 사용하던 망원경은 대부분 손수 제작됐다. 망원경 한 대 가격이 그때 가격으로 300만 원이 넘다보니 찾아낸 고육지책 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재료비를 모으고 직접 목공소를 찾아 몸통을 만들었다. 렌즈는 손으로 직접 갈아 굴절을 조절했다. 그렇게 손수 만든 망원경이 일대 천문 동아리 사이에선 최고라는 소문까지 났다.

별과 함께 대학 시절을 보냈지만 졸업이 다가오며 김 대장은 취업이라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군데 입사원서를 냈고 한 시중은행에 합격해 입사날짜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내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자신이 믿고 따르던 선배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그 선배는 평생 별을 바라보고 살겠다며 스스로 천문대를 찾아 다녔고 당시 김 대장은 그 선배 밑에서 세종천문대 운영·관리를 담당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배의 소식을 듣고 난 이후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천문대에서 일 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신 분이 그 분이었거든요. 앞 날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별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고 별을 통해 그 분의 의지를 이어나간다면 선배도 하늘에서 흐뭇해 할 거라 생각한거죠."


(▲ 사진 = 김영진 천문대장)

◆ 전공자 보다 더한 `별` 전문가
세종천문대를 시작으로 20년 동안 김 대장은 별과 관련된 일을 계속하고 있다. 천문학과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 점이 일반 대중들에게 별을 알릴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그들이 가진 전문 지식 때문에 오히려 대중과 소통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라고 해서 그의 지식이 적거나 부족하지는 않다. 오히려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 번 더 고민하고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을 더한다.

"제가 하는 일은 단순히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보는 게 아닙니다. 우주에 관한 책도 읽고 강의도 들으러 다닙니다. 다만 저는 아이들 혹은 별에 관심있는 성인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 때문에 그 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동영상이나 시뮬레이션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해를 시키고 별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거죠."

워낙 별을 좋아하다보니 직업병도 생겼다. 우주와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이 콘텐츠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잘 그려졌는지를 확인한다.

"지난해 한 지상파 방송국에서 장영실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방영 한 적이 있습니다. 첫 장면에 일식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일식이 일어나는 방향이 잘 못 나온거에요. 그래서 다음날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기고를 했습니다. 지금은 그 장면이 수정됐어요. 천문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잘못을 잡아주는 일도 하고 있는 셈이죠."


(▲ 사진 = 김영진 천문대장)

◆ "새로운 한류 콘텐츠, 별에서 나오지 않을까요?"

김영진 천문대장은 인터뷰 내내 천문대가 가야할 방향이 콘텐츠에 있다고 이야기 했다. 전세계 흥행 수익 6,700억 원을 달성한 `인터스텔라`나 5,400억 원을 벌어들인 `그래비티` 역시 확장된 천문 콘텐츠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방향으로 천문 콘텐츠를 꼽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외국의 천문대는 관람객들에게 영상이나 사진 등 다양한 전시물을 제공합니다. 반면 우리나라 천문대는 망원경을 전시하는 것에 그칩니다. 볼 게 없으니 사람들이 천문대를 방문하고 나서도 오히려 관심이 떨어져 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국내 천문대는 대부분 시골에 위치해 있다. 또 지자체가 관리하기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하기엔 무리가 있다. 김 대장은 그 해법으로 도심 천문대의 활성화를 주문했다.

"천문대가 대부분 시골에 있어 방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막상 힘겹게 찾아가더라도 날씨 때문에 별을 보지 못하거나 전시된 망원경을 보고 돌아오는 게 전부죠. 라라랜드에 나온 그리피스 천문대나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 모두 도심 근처에 있어 접근성이 좋아요. 천문대를 자주 찾다보니 별이나 천문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거죠."

좋아하는 일에 의미가 생기다보니 일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변했다.

"처음에는 제가 그냥 좋아서 별을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의 이야기를 듣고 좋아하시는 분들 때문에 더 열심히 별을 보지요. 사람들이 언제든 별을 보고 싶을 때 찾아오는 도심천문대를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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