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메이커스] 억대 펀딩받은 스니커즈의 비밀

김종학 기자

입력 2018-05-04 16:35   수정 2018-05-0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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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R 라 슈즈 계효석 대표

    신발 브랜드 LAR의 계효석 대표가 스니커즈 제작에 뛰어든지 불과 1년여. 창업 기간도 짧고, 흔한 스니커즈를 소재로 시작했지만, 그가 만든 신발은 벌써 억대 펀딩을 받았다. 만 29살 청년 디자이너가 만든 스니커즈는 보기에도 예쁘지만, 만들고 소비하는 과정도 남달랐다.

    ◇ 미국 패션회사를 '때려치운' 당돌한 디자이너



    LAR의 작업 공간이자 쇼룸은 서울혁신파크에 위치한 청년청에 자리하고 있다. 오밀조밀 마치 대학 동아리방을 모아놓은 듯한 작은 공간에서 서울시의 지원을 받은 창작자들이 꿈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3월 이곳에 둥지를 튼 LAR 사무실은 여기서 만든 신발을 닮은 흰색과 회색, 검은색으로 마치 그러데이션을 한 듯 꾸며져있다. 계효석 대표가 무채색 계열의 스니커즈와 러닝화를 디자인한 감각은 그만한 내공이 있기 때문이다.

    효석 씨는 스물세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 서부 명문 패션 스쿨인 FIDM(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배웠다. 그가 다닌 FIDM은 미국의 디자이너 발굴 리얼리티쇼인 '프로젝트 런웨이'의 배경으로 등장할 만큼 패션, 방송, 영화업계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진 기관이다. 게스(GUESS)와 장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쥬시꾸뛰르, 포에버21 등 브랜드에 바로 투입할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 효석 씨도 FIDM 생활을 거친 뒤 포에버21 산하 벤더에서 마케터, 팀장으로 활동했다.

    일찌감치 어린 나이에 디자이너로 현업에 뛰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1년 반 만에 포에버21을 그만뒀다. 그러고선 온갖 스펙을 갖추고도 좀처럼 취업문을 뚫기 어려운 지금의 한국으로 돌아왔다. 효석 씨는 이렇게 말한다. "늘 익숙한 브랜드 대신 사회적 의미가 있는, 나만의 브랜드를 직접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었다"라고. 그리고 서른을 눈앞에 둔 나이가 돼서야 그는 이 당돌한 계획을 실현할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 방황하던 '패션왕'…신발에서 답을 찾다

    효석 씨가 처음부터 신발 브랜드로 창업하려던 건 아니었다. 패션 브랜드를 만들겠다며 처음 도전한 소재는 그의 손이었다. 긴장하면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는 콤플렉스 때문에 이를 감출 장갑을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량으로 장갑을 생산할 공장을 구하지 못해 일찌감치 접었다. 패션 디자이너들이 많이 뛰어든 옷을 만들어볼 생각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가 평소 좋아하던 대리석 무늬로 셔츠를 가공해보려 했지만 생산비를 도저히 낮출 수 없어 또 접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창업에 자신만의 패션 브랜드를 만들겠다며 촉망받던 경력도 놔둔 채 한국에 돌아온 디자이너는 상심한 채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힘이 되어준 건 친구들과 같은 꿈을 꾸는 지인들이다.

    "재생 가죽으로 가방을 만드는 형이 바로 옆 건물에 계시거든요. 이 가죽으로 친환경 콘셉트의 가방 브랜드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찾아갔어요."

    신발 제작의 실마리를 찾아낸 그는 본격적으로 신발 공방과 카페를 들락거리며 국내에서 신발을 대량으로 제작할 공장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숙련된 수제화 장인들은 하루에 많아야 15켤레. 대량으로 생산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부산의 한 신발공장. 하지만 턱없이 작은 주문수량에 문전박대를 당했다.

    "120켤레를 만들어 주시면 안 되겠나요 그렇게 여쭤봤는데, 당연히 안 된다고 하셨죠. 왜냐면 신발 제작에는 엄청나게 손이 많이 들고 인력도 비싸거든요 사실. 나중에 신발 공장장님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곧 망할 거야'라면서 젊은 사람 좋은 경험으로 삼으라면서 한번 만들어주고 그 다음엔 아예 안 보려고 그랬대요."

    그렇게 만든 120켤레의 스니커즈는 첫 크라우드펀딩에서 목표액의 1,200%를 넘기는 대박을 터뜨렸다. 펀딩에 참여한 소비자들은 친환경 소재를 쓰고도 저렴한, 군더더기 하나 없는 스니커즈에 기꺼이 투자했다. 이른바 '가심비'를 공략한 덕분에 100켤레 남짓하던 제작 수량도 조금씩 늘어 지금까지 1,300켤레를 만들었다. 누적 펀딩 금액만 1억 2천만 원, 못 만들어준다며 퉁명스레 대하던 부산 신발 공장장에게 효석 씨는 이젠 없어선 안 될 파트너가 되었다.

    ◇ 예쁜데 환경까지 생각한 '착한 신발'

    효석 씨는 창업 시점에 알게 된 재생 가죽을 비롯해 신발의 모든 부분에 친환경 소재를 쓰고 있다. 피혁 가공 업체에서 쓰고 남은 부분만 모아서 재가공을 거치기 때문에 화학 약품을 덜 쓰고 제작 원가도 줄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패션 브랜드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포르투갈의 세계 2위 코르크 가공업체를 통해 품질 좋은 코르크 껍질도 확보했다. 코르크나무 껍질은 25년 마다 수확해 가공하기 때문에 역시 나무를 베거나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또 계절에 따라 사람 체온을 유지시켜주고, 습기도 줄여주기 때문에 신발 바닥에 쓰기엔 최적의 소재다. 효석 씨는 이를 한국으로 들여와 발 모양에 맞는 인솔을 만들어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했다.

    첫 펀딩에 성공한 효석 씨는 신발을 보다 제대로 만들기 위해 장인들을 찾아갔다. 서울시 지원사업 중에 하나인 SMFA, 성수동 수제화 아카데미에서 수제화 장인들로부터 넉 달간 손으로 신발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다시 익혔다. 코르크만으로 만들던 인솔에 태국에서 들여오는 라텍스를 붙여 러닝화를 제작하는 노하우도 모두 여기에서 배웠다.

    효석 씨는 한국 사람들에게 맞도록 스니커즈 형태도 새로 디자인했다. 동양인 특히 한국 사람의 발은 대개 발볼이 넓고 발등이 서양 사람들보다 높은 편이다. 명품 스니커즈라고 하더라도 앞코가 뾰족해 불편하기만 했던 건 다 이유가 있다. 효석 씨는 약간의 디테일을 바꿔 이런 불편함을 덜고 더 보기 좋은 신발을 만들었다. 발볼이 넓은 한국 사람들에게 맞는 신발틀을 쓰고도 길쭉해 보이는 형태로 디자인했고, 볼록 튀어나온 발등 때문에 신발끈을 묶은 자리가 보기 싫게 벌어지는 것도 막았다. 끈을 묶은 자리를 미리 좁게 제작해 신발을 신고 나면 앞에서 보기에 11자 모양으로 형태가 유지되도록 바꿨다. 덜 화려하지만 군더더기 없고, 보기에도 신기에도 편한 신발에 여러차례 펀딩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한 켤레'

    효석 씨가 만든 브랜드 LAR은 'Look around' 그대로 해석하자면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효석 씨는 보통의 브랜드보다 조금 더 환경을 생각하고, 소외받은 사람을 생각하는 신발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첫 펀딩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첫 수익금 400만 원 가운데 200만 원을 덜컥 보육원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그저 사회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어떤 기업도 순이익의 절반씩 기부하지는 않는다.

    "어떤 아이템을 만들든 사회적인 메시지를 연결시키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런 금액은 말이 안 되는 거더라고요, 제가 경험을 해보니까. 신발 한 켤레를 팔아 만 원 꼴로 기부한 셈이니까 이렇게 기부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큰 금액이라도 지속성이 없으면 회사도 키울 수 없고 기부할 수도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한 켤레에 5천 원 정도면 나도 부담이 안 가고, 아이들의 교육에도 보탬이 되겠다 생각해서 원칙을 다시 정했죠"

    효석 씨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이유가 있다. 그는 스무 살 무렵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보지 않았을 만큼 유복하게 지냈다. 그런 그는 홀로 남겨져 끼니를 때우고 돈을 벌기 시작한 뒤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잠시 떠났던 미얀마 자원봉사 이후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

    "미얀마에서 전쟁 고아를 처음 만났어요. 처음엔 창고를 치우는 줄 알았는데 바닥에 벌레들이 기어다니고, 먼지도 수북하고.. 그런데 거기서 11명의 아이들이 잠을 잔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충격을 받아가지고... 그때 결심을 했어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하겠다라고.."

    현재 LAR은 친환경 신발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자금을 보태준 사람들의 이름으로 5천 원씩 '꿈의 통장'에 모으고 있다. 앞서 세 차례의 펀딩에 참여해준 사람들의 이름으로 두 곳의 보육원에 기부했고, 앞으로도 스니커즈와 러닝화를 판매한 수익금을 모아 홀로 남겨진 아이들에게 예술과 문화를 즐길 기회를 더 만들어줄 계획이다. 효석 씨는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LAR 이름 뜻처럼 '주변을 둘러보며' 아직 찾지 못한 더 많은 아이들에게 꿈을 선물할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하길 꿈꾼다.

    《'THE메이커스'는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창작자, 장인 등 메이커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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