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세계적으로 1천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파킨슨병은 치료할 수 없는(incurable) 병으로 간주된다.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은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제는 없다는 뜻이다.
이 질환의 치료제 개발에 힘써 온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Nurr1이라는 전사인자(transcription factor)를 주목했다.
유전자 활성 단백질의 일종인 Nurr1이 파킨슨병에 영향을 미치는 도파민(신경전달물질)의 생성과 보관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물 개발에 필요한 Nurr1의 `분자 포켓`(molecular pocket)을 찾지 못해 지금까지 실패를 거듭해 왔다.
그런데 이 Nurr1의 분자 포켓과 여기에 결합하는 특정 분자물질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UCSF)의 과학자들이 처음 찾아냈다. 향후 이 발견은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에 획기적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0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배포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대학 의대의 파멜라 잉글랜드 세포·분자 약학 교수팀이 수행한 이번 연구 보고서는 과학 저널 `셀 케미컬 바이올로지(Cell Chemical Biology)`에 실렸다.
동작 장애나 인지 장애 같은 파킨슨병의 주요 증상은, 도파민을 생성하는 중뇌 신경세포(뉴런)의 퇴화에서 비롯된다.
지난 10여년간의 연구에서 뇌의 도파민 분비 뉴런은 퇴화하기에 앞서 도파민 생성을 먼저 중단한다는 게 밝혀졌다. 이를 근거로 도파민을 생산·보관하는 분자 경로(molecular pathway)상의 결함이 궁극적인 뉴런 사멸의 주원인이라는 이론이 제기됐다.
이런 신경세포 퇴화 과정의 주범으로 지목된 게 바로 Nurr1이다. Nurr1이 너무 적으면 파킨슨병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Nurr1 수위를 높이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생쥐 실험 결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모두 실패했다.
다른 전사인자와 달리 Nurr1엔, 약제 개발에 필수적인 표준 `분자 `포켓`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상당수 과학자들은 Nurr1을 `언드러거블(undruggable)`로 치부했다. 생명공학적으로 저분자 약물이 결합할 만한 부위가 유전체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면 진실을 말하자면, Nurr1에는 분자 포켓이 없는 게 아니라 그동안 찾지 못한 것이었다.
UCSF 연구팀은 출발선부터 기존의 전제를 무너뜨렸다.
대신 Nurr1이 뉴런의 적절한 도파민 수위를 유지하려면, 도파민의 균형 붕괴를 감지하고, 어떤 화학신호에 기반한 시스템의 항상성을 복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연구팀은 이 신호를 찾아내 약제로 재현하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했다. 이 경로로 접근하면 파킨슨병 환자의 도파민 수위를 높이고, 도파민 분비 세포의 퇴화를 촉발하는 잠재적 세포 손상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연구팀은 Nurr1의 원자 구조 모델 등을 끈질기게 시험한 끝에, 세포가 잉여 도파민을 제거할 때 부수적으로 생기는 DHI이라는 분자물질이 Nurr1 표면의 분자 포켓에 결합한다는 걸 확인했다. 이전에는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던 분자 포켓을 찾아낸 것이다.
이와 함께 DHI을 신경세포에 투여하면 Nurr1의 활성도가 높아지고, 도파민의 생성과 보관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자극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약리학자들이 Nurr1 표적 약제에서 기대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효과를 확인한 것이다.
보고서의 수석 저자인 잉글랜드 교수는 "Nurr1이 치료 약 개발의 주요 표적으로 널리 인식됐지만, 곧바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 건 처음"이라면서 "이런 통찰이 파킨슨병의 근본 원인에 착안한 최초의 약제 개발로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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