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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환율전쟁 '불똥'…한국, 환율조작국 지정될까 -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9-03-2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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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무역적자가 세계 경제에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상품수지적자(종전 무역적자)가 8913억 달러로 건국 이후 243년 만에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가장 주력했던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도 4192억 달러로 직전년도 대비 11.6%나 급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 실패다. 출범 이후 감세와 뉴딜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시킨 후유증이다. 국민소득 3면 등가 법칙(X-M=(S-I)+(R-E), X: 수출, M: 수입, S: 저축, I: 투자, R: 재정수입), E: 재정지출)으로 따진다면 너무 많이 썼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달러 강세 정책으로 선회했던 것도 무역적자가 늘어난 요인이다.


대중국 무역적자가 확대됨에 따라 보복관세도 ‘핵폭탄’이 아니라 ‘물폭탄’이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중국과의 소득격차가 워낙 커 보복관세 부과 이후 중국 수출제품의 단가가 올라가더라도 미국은 수입할 수밖에 없어 수입금액이 더 늘어난다. 무역통계 발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론이 급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국의 달러 정책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생적 게임’이 아니라 ‘이기적 게임’을 즐기기 때문에 달러 강세 정책을 재평가해 달러 약세 정책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간 갈등이 심해지고 금리인하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달러 약세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무역적자가 개선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달러 약세가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마샬-러너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수출입 구조는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초기 단계에는 ‘J-커브’ 효과로 무역적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달러 가치는 ‘머큐리(Mercury)’로 표현되는 경제 요인과 ‘마스(Mars)’로 지칭되는 정책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머큐리 요인만 따진다면 달러 가치는 강세가 돼야 한다. 하지만 마스 요인에 따라 달러 약세를 추구한다면 교역국으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미국 국익만을 생각하는 달러 약세 정책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교역국이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달러 약세에 대응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환율전쟁’이다. 다른 하나는 ‘탈(脫)달러화’로 화폐발행 차익 축소 등을 감안하면 미국이 받는 충격이 커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는 이 방안으로 대응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고민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202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통화이론(MMT)에 트럼프 대통령이 매력을 느끼고 있는 점이다. MMT의 핵심은 이렇다. 물가에 문제가 없는 한 재정적자(쌍둥이 이론에 의해 무역적자도 포함)와 국가부채를 두려워하지 말고 달러를 찍어 써도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MMT는 달러 가치와 관련해 종전의 ‘트리핀 딜레마’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1947년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제시한 것으로 유동성과 신뢰도 간 상충관계를 말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통화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부채 증가로 신뢰도가 떨어져 미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골자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다음달 중순에 발표될 미국 재무부의 올해 상반기 환율 보고서에서 환율조작으로 지정될 국가가 많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16년부터 적용해온 BHC(베넷-해치-카퍼)법은 환율조작 지정 요건이 너무 엄격해 1년 전부터 트럼프 정부는 이 조건을 완화하는 문제를 검토해 왔다.
빠르면 올해 상반기부터 적용될 환율조작 지정요건은 ‘1988년 종합무역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대규모 경상흑자 △유의미한 대미국 무역흑자 중 하나만 걸리더라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모든 교역국을 상대로 환율조작을 지정할 수 있는 근거로 대미국 흑자국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세계인의 이목이 ‘미·중 무역협상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로 빠르게 이동되고 있다. 양국의 분위기는 대조적이다. 유예기간을 연장시킨 미국은 연일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의외로 차분하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인지, 외교전략 전통대로 정중동 속에 실리를 추구하는 것인지는 회담 결과가 나와 봐야 할 수 있다.


어떤 형태든 타협은 해야 한다. 북·미 회담 결렬로 더 추락한 대외 정치역량을 보여줘야 할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중국과 타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되는 경기문제를 풀어야 할 시진핑 국가주석 입장에서도 미국으로부터 통상압력을 완화시키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더 급하다. 올해 하반기부터 공화당 최종 후보가 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현직 대통령으로서의 기득권을 누릴 만큼 뚜렷한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성과로 꼽을 수 있는 경기와 증시 호조는 작년 11월 중간선거에서 확인됐듯이 유권자에게 확실하게 부각될 수 있는 카드는 못된다.
타협 가능한 대상을 모색해 보면 비관세장벽, 지적재산권, 온라인상 기술 탈취 등과 같은 민감한 의제는 다룰 수 없다.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의제도 마찬가지다. 미래에 국부와 패권국 위상을 좌우할 첨단기술 견제는 무역협상 타결과 관계없이 계속해서 가져가야 할 양국의 숙제이자 난제다.
미·중 무역협상이 타결되려면 지금까지 다뤄왔던 의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시각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국제적인 비난 속에 보복관세 부과에 주력해 왔다. 중국도 보복관세가 부과됐던 작년 하반기 이후 경기가 빠르게 침체되면서 4분기에는 성장률이 목표 하단선인 6.5% 밑으로 떨어졌다.
트럼프 정부가 보복관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위안화 가치가 절하돼서는 안 된다. 위안화 가치가 절하되면 보복관세 효과가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북한에 이어 중국과의 무역협상이 결렬되거나 보복관세 효과가 무력화되면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임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중국도 수출과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유혹이 높은 위안화 가치 절하를 쉽게 가져갈 수 없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올리고 인민은행은 내려온 금리 여건에서 위안화 가치까지 절하되면 외국인 자금 이탈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작년 이후 유동성 공급, 해외투자 제한, 차이나 머니 회수 등에도 풀이지 않는 신용경색이 더 심해져 ‘3대 회색코뿔소’ 현안이 전면에 드러날 경우 최악의 국면에 몰릴 수 있다.


다음 달 중순에 발표될 미국 재무부의 올해 상반기 환율 보고서에서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부터는 △대규모 경상수지흑자 △유의미한 대미국 무역수지흑자 중 한 가지만 걸리더라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규정한 ‘1988년 종합무역법’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위안화 가치 절하를 못한다면 한 발 더 나아가 ‘달러화 약세-위안화 절상’을 유도하는 ‘제2 플라자 협정이 탄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은 수출입 구조가 ‘마샬-러너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달러 약세로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다. 중국도 위안화 가치 절상은 수출과 경기에 받을 부담이 크다.
제2 플라자 협정이 탄생된다 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 없는 국제통화제도에서는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회담에서 ‘경상흑자 4% 룰(GDP대비 4%를 상회하는 경상흑자국은 외환시장 개입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에 합의했던 것은 의미가 컸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 왔다.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환율조작 방지’라는 애매모호하더라도 명문화하는 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극단적인 마찰’보다 다행한 일이지만 불안 요인은 여전히 남아있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 환율전쟁과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에 우리 정부는 얼마나 대책을 세워놓고 있는지 의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고사하고 인식조차 못하는 분위기다. 국민이 답답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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