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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평가사, 한국경제 재심사 착수…韓 경제와 증시 앞날은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9-04-0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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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S&P·피치, 이달부터 심사 시작
새 평가기준 적용시 전망은


앞으로 두 달 동안 한국 경제 재평가 작업이 본격화된다. 4월에는 무디스, 스탠다드 앤 푸어스(S&P), 피치 등 세계 3대 평가사의 올해 상반기 심사가 시작된다. 곧이어 글로벌 벤치마크 지수인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 지수(MSCI)의 연례심사도 예정돼 있다. 특히 3대 평가사의 심사결과에 따라 한국 경제와 증시 앞날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 韓 대외위상 정체 넘어 퇴보
한국 경제 대외 위상이 정체된 지 오래됐다. 엄격히 따진다면 퇴보됐다고 봐야 한다. 국가신용등급은 S&P가 한 단계 상향한 2016년 8월 이후 2년이 넘게 ‘전망’과 ‘등급’ 조정에서 모두 변화가 없다. MSCI 조정도 선진국 예비명단에서 탈락한지 4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재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한국 경제 재평가 작업결과는 중요하다. 더 이상 대외위상이 올라가지 못하면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6년 세계은행(World Bank)가 처음 사용한 MIT란 신흥국이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선진국 문턱에 와서 어느 순간에 성장이 장기간 정체되다가 퇴보하는 현상을 말한다.


증시 면에서는 ‘위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 논쟁이 결말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 들어 지난 2월말까지 갑작스런 외국인 자금의 유입근거로 국내 증권사는 저평가 요인을 꼽아 왔다. 하지만 저평가 요인은 금융위기 이후 주가 예측이나 투자 권유 차원에서 계속해서 거론돼온 점을 감안하면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다른 요인이 더 크다는 의미다. 지금은 정책이나 경기(혹은 중심권), 투자자 성향 면에서 대전환기다. 정책 면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인상 속도 조절, 보유자산 매각 중단 등 출구전략 추진이 주춤거리고 있다. 경기 면에서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기가 흐트러지고 투자자도 위험자산 선호 경향이 약화되고 있다.
대전환기에 글로벌 자금흐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기준은 어느 한편으로 방향이 잡힐 때까지 자금을 넣어둘 수 있는 ‘쉘터(shelter·피난처)’ 기능이다. 투자국 지위로 볼 때도 한국은 파이낸셜타임스(FTSE) 지수로는 선진국, 모건스탠리(MSCI) 지수로는 신흥국이다. 준(準)선진국인 셈이다.
‘선진국과 신흥국 간 대립구조’로 특징짓는 21세기 세계경제질서에서 두 권역의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한국과 같은 국가들은 대전환기에 대기성 자금을 넣어둘 수 있는 최적 국가로 분류된다. 반대로 선진국, 신흥국 어느 한 편으로 가닥이 잡히면 한국 증시에 유입됐던 자금은 의외로 빨리 빠져 나갈 수 있다는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한국 경제 운명과 ‘위장된 축복’ 여부를 결정할 신용등급이 어떻게 조정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3대 평가사의 평가기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 연합(EU),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가 중심이 돼 신용평가와 관련된 다양한 규제방안을 마련해 왔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돼 왔던 신용평가사의 독과점적 지위에 따른 집중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정보공시, 투명성, 책임감 등을 강화했다. IOSCO는 각 신용평가사에게 신용평가 방법론, 과거 실적자료 등을 공개하고 신용등급 산정모형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개선방안 마련토록 권고해 왔다.
또 하나 문제였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기구와 주요국 정책당국은 신용평가사관련 이해관계자에 대한 공시 확대, 신용평가업무의 독립성 확보 등과 같은 이해상충 방지 장치를 마련했다. 미국과 EU도 IOSCO의 권고를 대부분 수용하거나 강화해 적용해 왔다.
신용등급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신뢰성과 정확성을 제고하기 위해 평가모형과 방법론에 대한 공시 확대 등의 방안도 마련했다. 특히 국제결제은행(BIS)은 기존 신용등급 뒤에 신용등급 변동성(v), 신뢰도(c), 독립변수의 질적 정보(q) 등을 나타내는 새로운 기호를 추가하는 방법을 제안해 주목을 받았다.
◇ 새 평가기준 적용…하향 조정 더 많아
3대 평가사도 개편된 신용등급 조정 국제기준에 맞춰 특정국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새로운 기준을 적용해 왔다. 한마디로 금융위기 이전보다 지정학적 위험 비중을 낮추는 대신 거시경제 위험, 산업 위험, 재무 위험 비중을 높였다. 특히 지정학적 위험은 경제기초여건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지 않는다.
새로운 개편 내용에 따라 각국에 대한 신용등급 평가실적을 보면 하향조정 건수가 상향조정건수를 상회하고 관찰 대상도 부정적 대상이 긍정적 대상을 상회해 위기 이전보다 엄격해졌다.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신용등급이 올라간 국가보다 떨어진 국가가 더 많다. 그만큼 신중해 졌다는 의미다.
한국 경제는 압축성장한 대표 국가로 분류된다. 압축성장이란 경제발전이론 상 정상적인 성장기간을 단축시켜 경제성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압축성장한 국가는 초기에 미성숙된 노동력, 국내 자본축적 미비, 사회간접자본(SOC)과 내수기반 취약 등을 감안해 수출지향적인 성장전략을 채택한다.



압축성장한 국가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기까지는 제도적인 틀은 글로벌스탠다드에 맞추고 경제정책 운용은 세계적인 추세에 뒤떨어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 기본 성장조건이다. 경기순환 상으로도 세계 경기가 좋을 때는 순환 궤적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내야 나빠질 때 수시로 찾아오는 피로증을 줄여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 세계 경기는 좋았다. 작년의 경우 세계 경제 성장률이 3.9%에 달했다. 미국 경제만 하더라도 작년 3분기까지만 하더라도 전후 최장의 호황국면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됐다. 세계 증시도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는 ‘골디락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사상 최고치 행진이 이어졌다.
◇ 한국, 지난 2년간 세계 경기호황 못 살려
한국 경제 강점 중의 하나로 세계 경기 흐름을 그 어느 국가보다 잘 활용한 점이 자주 꼽힌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세계 경기 흐름을 잘 타지 못했다. 현 정부 들어 소득주도 성장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자신의 이념과 주장에 갇혀 경제정책을 너무 경직적으로 운용한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글로벌스탠다드와 세계 흐름에 동떨어졌던 사례는 의외로 많았다. 정부의 역할이 세계는 ‘작은 정부’을 지향하고 있으나 한국은 갈수록 커졌다. 거시경제 목표도 ‘성장’ 대비 ‘소득주도 성장(성장과 분배 간 경계선 모호)’, 제조업 정책은 ‘리쇼오링’ 대비 ‘오프쇼오링’, 기업 정책은 ‘우호적’ 대비 ‘비우호적’이었다.
규제 정책은 ‘프리 존’ 대비 ‘유니크 존’, 상법 개정은 ‘경영권 보호’ 대비 ‘경영권 노출’, 세제 정책은 ‘세금 감면’ 대비 ‘세금 인상’, 노동 정책은 ‘노사 균등’ 대비 ‘노조 우대’로 대조적이다. 정도가 워낙 심해 ‘갈라파고스 함정(Galapagos‘s trap·세계와 격리된 현상)’에 빠졌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경기 진단도 작년 4월부터 침체 기미가 뚜렷한데 외환위기 당시 ‘펀더멘털론’을 연상시킬 정도로 ‘회복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좀 더 지켜보면 정책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침체론에 반박했다. 하지만 경착륙, 중진국 함정, 샌드위치 위기, 제2 외환위기, 일본형 복합불황 등 각종 비관론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침체가 현실화되고 있다.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은 갈수록 하향 조정되고 있다. 작년 12월까지만 하더라도 예측기관의 올해 성장률 평균치는 2.8%였다. 하지만 불과 3개월도 안돼 2.5%로 떨어졌다. 잠재 성장률 2.8%에 비해 0.3% 포인트(p)의 디플레이션 갭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무디스는 2.1%까지 내려 잡아 충격을 주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인 잠재성장률도 둔화세다. UN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 고령화 사회, 2018년 고령 사회에 이어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여 고령화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될 국가로 꼽힌다. 2년 전 생산인구 감소를 시작으로 2034년 전체 인구가 감소될 것으로 보여 보완책이 없는 한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한국 최우선과제는 경기살리기
한국 경제 대외 위상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경기부터 살려야 한다. 뒤늦게 현 정부도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경제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작년 3분기 이후 세계 경기가 꺾이기 시작했다. 환율도 미국 금리인상 속도조절과 불황형 흑자로 ‘원고(高)의 저주’가 우려할 정도로 불리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앞으로 두 달 동안 재평가 결과에 따라 한국 경제 운명과 ‘위장된 축복’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더 이상 대외환경이나 이전 정부와 현 정부, 여당과 야당, 사용자와 근로자 간 비판과 책임 전가로 돌릴 수 없다. 압축성장의 본질인 ‘할 수 있다(can do)’는 자신감과 경제 활력부터 회복해야 한다.



급변하는 대외환경에 대처해 나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북미 정상회담 결렬. 미중 무역협상 결과, 브렉시트,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중국 경기 둔화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환경에 큰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 제도와 관행, 경우에 따라서는 정책당국자의 인식과 의식을 글로벌스탠다드에 맞추는 과제도 시급하다.
한국 경제 최대 성장장애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각 분야에 누적된 ‘과부하(overload)’를 빠른 사일 안에 해소하지 못하면 ‘성장 속도가 멎고(stall-out)’ 어느 순간에 ‘자유 낙하(free fall)’할 수 있는 점을 명심해애 한다. 모두가 얼마나 주인의식을 갖고 있는지, 새로운 먹거리를 위해 반역적 미션(scale insurgency)을 갖고 있는지 반문해 봐야 할 때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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