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배성재의 Fact-tory는 공장을 직접 다녀보며 기업들의 기술과 경쟁력을 살펴봅니다. 공장(Factory) 속 뚜렷한 사실(Fact)과 땀 섞인 이야기(Story)를 동시에 전합니다.
[당연히 가솔린이지]
디젤이냐, 가솔린이냐. 자동차를 구매해본 분이라면 한 번쯤은 마주친 고민일 겁니다. 최근엔 배출가스 규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가솔린 엔진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신차를 구매한 주변 지인들을 둘러봐도 디젤 차량 구매자를 찾는 것이 더 힘들더군요. 취재를 하다 만난 딜러분들도 평소 사용할 용도나 장소 등을 말하면 대부분 가솔린을 권했습니다.
바야흐로 가솔린 엔진의 전성시대입니다. 배출가스 규제 탓이라지만, 이중에도 SUV와 가솔린의 결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의 SUV 돌풍과 함께 가솔린 엔진도 성장 중이기 때문인데요. 특히 소형SUV 차량 대부분은 바로 가솔린 차량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형SUV와 가솔린이 결합한 대표 모델을 꼽으라면 쌍용자동차의 티볼리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쌍용차 광고 아닙니다.) 티볼리 가솔린 모델은 2015년 첫 출시 이후 가솔린 SUV 전체 판매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모델이기 때문이죠. 가솔린 SUV가 5년 새 4배 성장한 것도 티볼리 출시와 맞물려 있습니다. 시장성에 놀란 현대·기아차가 코나와 니로, 최근엔 베뉴와 셀토스를 뒤따라 새로 출시할 정도였으니까요.
Fact-tory가 첫 번째로 살펴볼 공장은 가솔린 엔진을 만드는 쌍용자동차 창원공장입니다. 바로 이 `가솔린 SUV 대세`를 이끈 엔진공장이죠. 1994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창원공장은 20년 동안 언론에 공개된 것이 고작 2번, 그것도 부분 공개에 그쳤던 곳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엔진공장은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과 함께 창원으로 향했습니다.
[Fact-]
·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 부지 면적: 3.5만 평(약 117,000 제곱미터)
· 인원: 483명 (2019년 9월)
· 생산 제품: 자동차 엔진
· 실제 생산량 / 연 생산능력: 25만대 / 30만대
◎ 첫 인상 - 직원을 찾기 힘든 공장
쌍용차 창원공장은 길쭉한 직사각형 건물 2채가 나란히 서있는 구조입니다. 높이는 3-4층 정도. 자동차 공장치고는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물론 엔진만 단독으로 생산하기 때문이죠.
(※ 쌍용차 창원공장은 보안 관계로 사진과 영상을 일체 촬영할 수 없습니다. 제품과 제작과정에 대한 설명을 글 만으로 전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ㅜㅜ)
공장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받은 첫 인상은 `사람이 없다`였습니다. 특히 엔진의 뼈대를 만드는 가공라인은 거대한 로봇들만 육중하게 움직일 뿐 안내 직원분을 제외하곤 다른 직원분들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자세한 공정이 필요한 조립 라인에 와서야 직원분들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일반 자동차 공장이 라인별로 직원을 촘촘히 배치하는 점과 비교하면, 엔진공장만의 특수성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창원공장의 공정 자동화율은 55%라고 하네요. 특히 제가 로봇만 봤다던 가공라인의 경우는 100%에 육박했습니다. 창원공장에서 동시에 일하는 직원분들의 수는 200명 수준이라고 합니다. 창원공장의 대지면적이 약 117,000㎡, 축구장 14개 크기임을 감안하면 축구 선수 숫자만큼도 안 되는 숫자죠. 하루에 자동차 엔진 300여 개가 쏟아져 나오는 2차 산업 공장치고는 인원이 많지 않다는 인상이었습니다.
◎ 제품 - 1.5T-GDi 가솔린 엔진
중점적으로 살펴볼 제품은 당연히 가솔린 엔진, 그중에도 쌍용차가 가장 최근 개발한 1.5T-GDi 가솔린 엔진입니다. GDi란 `Gasoline Direct Injection`의 줄임말로, 연료(Gasoline)를 실린더에 직접(Direct) 분사(Injection)해 효율을 높이는 엔진을 말합니다. 배기량이 낮아도 높은 마력과 토크를 얻을 수 있는 거죠. 쉽게 말해 몸집은 작은데 힘이 좋은 엔진이라는 겁니다.
쌍용차의 1.5T-GDi 가솔린 엔진은 2개 모델로 각각 티볼리와 코란도에 탑재 중인데요. 2016년 개발을 시작해 37개월 간의 개발 기간을 거쳤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가솔린 엔진 2개가 추가되면서 쌍용차는 고유의 디젤 엔진 모델(3개)보다 가솔린 엔진 모델(4개) 수가 많아지게 됐다고 하네요. 최근 들어 가솔린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게 확실해 보입니다.
◎ 제품 분석 - 연비는 높이고 배출가스는 줄이고
※ 지금부터는 잠시 단어가 어려워집니다. 아무리 쉽게 말씀드리려해도...(눈물)
쌍용차가 1.5T-GDi 가솔린 엔진을 개발하게 된 배경은 자동차 연비와 배출가스에 대한 규제의 벽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비 개선`과 `배출가스 규제`, 2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이번 엔진을 개발하게 됐다고 하네요.
일단 연비와 효율에 관해선 목표를 달성한 듯 합니다. 1.5T-GDi 가솔린 엔진의 rpm(분당엔진회전) 범위는 1,500rpm부터 4,000rpm까지 인데요. 보통 가솔린 엔진은 rpm이 높아 고속 주행이 편하다는 장점 대신 저속 주행 때도 과하게 회전을 돌려 연비가 낮아지는 문제를 지적 받습니다. 1.5T-GDi 가솔린 엔진은 rpm 범위를 위아래로 넓혀 느릴 때와 빠를 때의 연비 개선에 초점을 맞춘 거죠.
마찬가지로 엔진의 힘을 의미하는 마력과 토크도 개선했습니다. 1.5T-GDi 가솔린 엔진은 170마력에 28.0토크의 힘을 발휘하는데요. GDI 1.5 엔진 급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 포드 이스케이프의 T-GDI 1.5 엔진이 200마력에 29.0토크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선 셈입니다. 참고로 현대차의 투싼 T-GDI 1.6엔진은 177마력에 26.5토크를 발휘하니, 토크에 대해선 경쟁사보다 미세한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효율을 따지는 소비자에게 엔진에 대한 고민을 더 할 수준은 아닌 것 같네요.
배출가스 규제도 잘 맞춰낸 듯 합니다. 전문가들은 GDi 엔진이 결코 배출가스가 적은 내연기관은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하죠. 실제로 이산화탄소(CO2)의 경우는 같은 배기량을 비교할 때 오히려 디젤이 적게 배출하기도 합니다. 다만 쌍용차는 연료의 연소효율을 최적화하는 기술로 저공해 엔진을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코란도에 신규 장착된 1.5T-GDi 가솔린 엔진은 저공해차 3종을 인증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이러한 1.5T-GDi 가솔린 엔진 1개를 만드는 데는 총 5시간, 1,000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부품 대부분은 협력사에서 받지만 실린더 블록과 헤드, 크랭크샤프트 등 핵심 부품은 자체 제작한다고 하네요. 모든 과정을 거쳐 제작된 엔진은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옮겨져 차에 장착하게 됩니다.
[-Story]
◎ 메르세데스-벤츠의 공장이었다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쌍용차는 메르세데스-벤츠와 엔진기술 제휴를 맺었었습니다. `전설의 모델`로 불리는 무쏘도 "벤츠의 엔진이 들어갔다"며 흥행했더랬죠. 쌍용차가 창원공장에서 엔진 생산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기술 제휴 때문이었습니다. 창원공장은 1994년 메르세데스-벤츠로부터 쌍용차가 인수하며 본격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공장을 돌아다니면서도 곳곳에서 그 흔적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로봇들엔 독일 상품명이 붙어있었습니다. 민병두 창원공장장도 "쌍용 엔진은 벤츠 혈통"이라며 "품질 정책도 벤츠의 기준을 여전히 쓰고 있기 때문에 품질과 내구성 모두 벤츠와 유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쌍용차 직원들은 자체 모델을 개발하면서도 벤츠 수준의 기술력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고도 하네요.
◎ 사실 디젤 전문 공장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SUV = 디젤`이라는 공식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통용되어 왔으니까요. 쌍용차가 가솔린 엔진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신형 모델을 출시한 코란도(코란도C 제외)의 경우엔 이번 모델부터 가솔린이 처음 적용됐을 정도니까요. 쌍용차가 자체 개발한 최초의 엔진도 XDi270, 바로 디젤 터보 엔진이었습니다.
그만큼 엔진을 만들던 창원공장도 디젤에 집중해왔습니다. 송승기 쌍용차 생산본부장은 "창원공장은 전반적으로 디젤에 국한되어있었는데, 가솔린 공장으로 바뀌고 있다"며 최근 들어 가솔린 엔진 케파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티볼리의 성공와 더불어 코란도 가솔린 모델은 이미 디젤 모델의 판매량을 넘어섰다고 하니, 아직까진 좋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사실 파워트레인은 쌍용차의 지속적인 고민이기도 합니다. 쌍용차는 현재 디젤과 가솔린 모델 만을 생산중인데요. LPG나 하이브리드, 전기차에 대한 고민이 경영악화로 인해 미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병두 창원공장장도 "LPG차량 출시는 회사의 포트폴리오에 맞출 뿐"이라며 대답을 피했습니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는 "여력이 되지 않는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 쌍용그룹의 애환이 담긴 공장이다
쌍용차 창원공장 옆에는 STX 엔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선박엔진을 생산하던 쌍용중공업이 있던 자리죠.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창원에 자동차 엔진공장이 있으니 그 옆에 선박 엔진공장을 지으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후 무리한 확장으로 쌍용그룹은 그룹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2001년 쌍용중공업은 최종적으로 계열분리가 되며 사명을 STX로 바꿨죠. 물론 2015년을 끝으로 STX도 해체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혼자 남은 쌍용차 창원공장에도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쌍용차는 1998년 대우자동차에 인수된 이후 채권단 관리를 받았고, 2004년엔 상하이자동차에 헐값에 인수되더니 결국 축적해온 기술력만 흡수 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주주의 무관심 속에 벌어진 2009년 쌍용차 사태와 해직자 문제는 1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쌍용차 임단협의 주요 의제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시 들어간 법정관리 끝에 2010년 인도의 자동차 기업 마힌드라 & 마힌드라에 인수되었지만, 이젠 `인도차`라는 비아냥까지 있었죠.
티볼리 출시로 한숨 돌리나 했던 쌍용차의 실적도 최근엔 서서히 내리막길을 타고 있습니다. 소형SUV 시장이 점차 세분화 하면서 티볼리의 인기가 시들해졌기 때문이죠. 올해 6월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판매량도 여태 올라올 기미가 없습니다. 현재 평택공장 가동률은 60%에 그치고 있습니다. 경영진과 노조는 과·부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1년 안식년을 시행하기로 협의했다네요. 신입 채용계획도 모두 백지화 했다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대주주의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회사가 풍파를 겪었던 30년 동안, 창원공장은 꾸준히 자동차에 들어갈 엔진을 만들어 왔습니다. 한때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엔진을, 한때는 자체 개발한 엔진을 생산하며 기뻐했습니다. 이제는 트랜드에 맞춰 가솔린 엔진 생산을 늘리며 다가올 변화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쌍용차가 또 다가온 높은 파도를 넘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앞으로 창원공장이 어떤 차에 들어갈 어떤 엔진을 만드지를 지켜봐야 할 겁니다.
◎ Fact-tory 다음 편에서는 기술독립을 이룩한 강소기업들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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