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 "우리 사회가 불안한 이유는 집에 있다" [전효성의 시크릿 부동산]

전효성 기자

입력 2020-04-22 18:15   수정 2020-07-02 13:00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인터뷰
승효상 위원장, 건축의 공공성 강조
"집값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 필요"
"임대주택, 가난한 사람들의 전유물이어선 안돼"
`전효성의 시크릿 부동산`은 한국경제TV 전효성 기자가 건설·부동산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터뷰로 구성된 코너입니다. 짧은 분량의 방송기사에서 미처 담지 못한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집은 모두의 관심사다. 집값 이전에 거주 공간으로서의 관심이다. 최근 대통령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임기를 마친 승효상 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집값에 매몰돼 집과 삶에 대해 깊이 사유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집은 개개인의 존재와 정체성을 밝혀준다. 집을 경제재로만 바라보고 사고팔기에만 주목한다면 우리 삶은 떠돌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영상취재=이창호.
Q. 최근 국가건축정책위원장 2년 임기를 마무리 했다. 소감은?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임기는 2년이지만 공공건축분야에서 10여년을 일했다. 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공적인 역할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시작을 했다. 공적으로 부과된 업무에서 해방되는 느낌이 아주 강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이 4번인가를 만나서 위원장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고사하다가 결국엔 하게 됐는데, 대신에 김 장관에게 책임지라고 했다. 김 장관은 전문가의 이야기를 경청했던 기억이 있다. 판단이 빠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금방 이해하고 실행을 했다. 임기 마치는 날 저녁을 같이 하면서 내가 고맙다고 했다."

Q. 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임기동안 가장 역점을 들인 부분은?

"건축은 무엇보다 공공재다. 개인이 돈을 내서 집을 지어도 옆에 사는 사람이 영향을 받는다. 건축은 전적으로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시민, 사회, 모두의 공유재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사람은 죽지만 건축물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 문화로, 문화재로 남는다.

우리나라는 건축이라고 하면 부동산이나 집값, 경제의 가치로만 인식한다. 인식의 전환이 굉장히 시급했다. 그런 인식을 갖게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고민했다. 건축 시스템, 건축을 만드는 제도, 건축을 관리하는 제도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시스템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한 게 5기 국건위의 중요한 과제였다."

Q. 임기동안 공공건축가 제도가 도입됐다. 서울시는 총괄건축가 제도를 운영중이다. 공공부문에 건축가가 투입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

"지자체, 국가, 정부에서 발주를 굉장히 많이 한다. 하지만 이를 하나로 모아서 일원화되게 관리를 못한다. 비슷한 시기, 같은 정부에서 발주하는데도 중구난방이다. 또 우리나라는 건축을 중요한 정책 목표로 둔 적이 없어서 행정 체계에서 아무렇게나 발주를 했다. 건축이 우리 삶을 바꾼다고 하는데 엉망진창이 된 건축 속에서 삶도 엉망진창이 될 것이 뻔하다. `더이상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유럽에서는 건축을 일관되게 발주하기 위해서 건축가에게 권한을 준다. 국가건축가나 시(市)의 총괄건축가 형태다. 서울시는 총괄건축가 시스템을 갖췄고 어느정도 유효한 제도로 정착을 시켰다.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을 맡고 이를 전국으로 확대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지자체장을 하나하나 만나서 설득했다. 현재 많은 지자체가 서울시와 비슷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승효상 건축가가 지난 2011년 설계한 퇴촌주택. 사진제공=이로재.
Q. 건축과 삶에 대해 언급했다.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해 건축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나?

"건축을 집값이나 경제재로 인식하지 말고 문화의 현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냐고 하면, 집을 지으면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존재와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 집이다. 하지만 우리는 집을 사고파는데 익숙해서 집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 유목민처럼 정주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닌다. 우리 사회가 불안한 원인이다.

마을 동(洞)자는 물 수(水)변에 같을 동(同)자다. 같은 물을 마시는 공동체다. 하나의 가치를 서로가 공유하면서 이뤄진 집단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마을 공동체의 가치가 무엇일까. 오로지 집값이다. 존재가 너무 피폐해져 있다. 그래서 이걸 바로잡자고 하는거다. 이것이 바른 건축, 바른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다."

Q. 그렇다면 `집`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어떻게 지어져야 하나?

"집은 예쁘다, 크다에 가치가 있지 않다. 건축의 본질은 `공간`이다. 공간은 잘 안 보인다. 안 보이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과거 선조들은 공간에 대한 인식이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건축을 가시적인 목표로 설정하다 보니 집을 왜곡되게 바라봤다. 삐까뻔쩍한 건물, 랜드마크 아파트, 영웅적인 모습이 좋은 것으로 비친다.

요즘의 아파트, `성냥갑 아파트`를 비난하는 이유가 성냥갑 모양이라서가 아니다. `그곳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이 짓기 때문이다. 캐비닛에 쌓여있는 도면을 답습해서 똑같이 짓는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 없이 하드웨어만 지은 거다. 선분양 제도도 같은 얘기다. 공급자가 주는 대로 받아야만 한다. 아파트를 설계할 때 `수요자가 어떤 공간을 원하는가`, `어떤 삶의 모습을 원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아파트의 모양이 제각각 달라진다."

Q. 도시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현 정부의 역점 사업이 3기신도시다. 어떻게 조성해야 하나?

"3기신도시는 정부에서 정한 목표 시점이 있다. 사실 충분히 논의했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과거에 불합리하게 강행했던 개발방식은 고쳤다. 토목이 앞서는 시스템을 바꿨다. 설계가 나오기 전에 산 깎고 계곡 메워서 평지로 메우고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다. 부산 아파트, 서울 아파트, 제주 아파트가 똑같을 수밖에 없는 개발방식은 바꿨다. 기존 지형에다가 설계하고, 다시 피드백을 거치는 순서를 갖춘 것은 바뀐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3기신도시에 어떻게 모여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여러 사람이 합의해야 하고 논쟁도 해야 한다. 3기신도시 조성 과정에서 이 시간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LH에 시한에 구애받지 말고 전혀 새로운 도시를, 즉 어떻게 살 것인가에 고민하고 설계에 반영하는 도시를 만들자고 요구했다. 그건 추진 중이다. 4기가 될지, 3.5기가 될지는 모르겠다. 시한도 못 박지 말자고 했다. 곧 들어설 6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추진할 거라고 믿는다."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영상취재=이창호.
Q. 임대주택 문제는 `어디에 사느냐`를 두고 계층갈등 문제가 벌어지는 지점인데…

"임대주택에 가난한 사람들만 살 이유가 없다. 좋은 사회는 잘사는 사람, 가난한 사람이 섞여 살아야 한다. 서로 분파를 이뤄서 살게 되면 사회는 붕괴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임대아파트라고 해서 담을 높이 쌓고, 배척하고, 불가촉천민처럼 취급하는 사회는 결단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가난한 사람, 돈 많은 사람, 높은 사람이 모여 살았던 흔적이 있다. 그때보다 지금이 진보된 사회가 아닌 셈이다.

이것을 탈피하는 방법은 돈 많은 사람이 임대주택에 살면 된다. 이미 그럴 자원이 많다.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전문직 종사자도 많다. 이들에게는 굳이 3베드, 4베트 아파트가 필요하지 않다. 1베드 아파트를 공급해주지 않으니 할 수 없이 3, 4베드에 살게 된다. 돈이 많은 사람의 임대아파트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임대아파트까지 임대아파트의 스펙트럼을 굉장히 넓게 가져가서 원하는 곳에 살게 해줘야 한다. 임대아파트에 대한 관념을 돈이 없어서 가는, 불량 주거로 생각하지 않게끔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Q. 평생을 건축가로 살다가 국토부, 정부, LH, 서울시 등 공적인 단체와 함께 일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사실 공무원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좋지 않았다. 하지만 10년간 공무원들과 수없이 많이 일했다. 수준이 굉장히 높은 사람도 많았다. 또 신념과 봉사 정신이 강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선진 시스템, 선진 건축에 대한 담론을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함께 일한 공무원들은 변화가 많이 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공무원 조직에서 기술적 역량을 비축하는 일이 어렵다. 툭하면 용역을 줘서 해결하려고 한다. 서울시만 해도 건축에 관한 용역비가 600억 원이 넘는다. 600억 원이면 600명이 소속된 설계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다. 그러면 어머아머한 일을 할 수 있다.

총괄건축가 시스템을 두면 이를 보조하는 기관이 생긴다. 설계사무소 같은 기관 말이다. 서울시는 총괄건축가 제도가 10년 가까이 이어지며 그 안에서 기술적 역량이 축적됐다. 용역비도 줄어들 뿐 아니라, 앞으로 서울시가 건축사업을 할 때 일원화된 계획을 짤 수 있다.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고 집행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방식은 중앙정부에도 필요하다."

Q. 6기에 남기는, 이 부분만큼은 이어갔으면 하는 게 있다면?

"공공건축물의 생산시스템을 다룬 `공공건축특별법`이 국회에 계류돼있다. 6기 위원회가 입법까지 마무리해 줬으면 한다. 최근 건축법이 개정됐는데 후속 조치로 시행령을 바꿔야 한다. 건축법 개정은 불합리한 규제를 철폐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 건물을 허가받는데 심의만 마흔 개가 넘는다. 또 3기신도시가 시작이 됐으니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일이 이어져야 한다. 건축을 생산하는 시스템, 관리하는 시스템, 거주 정책을 만드는 숙제를 남기고 간다."

Q. 개인적으로 가진 건축 철학을 `빈자의 미학`으로 알고 있다. 건축의 가치, 어디서 찾아야 할까?

"건축을 공유재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이 건축물의 사용권을 얻었을 뿐이지 소유권은 시민과 사회에 있다`라고 보는 것이다. 죽었을 때 집을 가져갈 것이 결코 아니다. 결국, 남는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자신이 집을 지을 때도 `남이 이 건축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아가서 동네와 마을에 이 건축물이 놓였을 때 어떻게 놓여야 마을 전체가 행복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건축의 가장 큰 가치는 공공성에 있다. 이것은 민간건축이든 공공건축이든 다 적용되는 문제다."

▶ 관련기사: 승효상 "부자를 위한 임대주택 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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