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큰별 지다…글로벌 '삼성' 키운 이건희 별세

이지효 기자

입력 2020-10-25 11:06   수정 2020-10-25 11:41



삼성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78세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 경영승계 이후 2014년 입원 전까지 약 27년 동안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삼성을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의 삼성을 만들자" 등의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장기 투명 끝에 사망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삼성은 이날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고인와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2014년 5월 10일 밤 갑자기 호흡 곤란 증세가 나타나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심장마비가 왔다. 심폐소생술을 받고 소생해 치료를 이어왔다.

이 회장은 이후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 심장 혈관 확장술인 `스텐트 삽입 시술`을 받고 위기상황을 넘겼다. 10개월이라는 장기 입원치료를 받으며 회복세에 접어들었지만 끝내 타계했다.

폐 부분의 림프암이 발병해 이 회장은 1999년 말부터 2000년 초까지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은 뒤 재발을 막기 위해 매년 겨울이면 기후가 따뜻한 해외에서 지냈다.

지난 2013년에도 1월 초 신년행사 이후 출국해 3개월 가량 해외에 머물면서 요양과 경영구상을 하다 4월 귀국해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인사를 단행하는 등 그룹의 체질과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일본 게이오대를 졸업하고 1968년 동양방송에 입사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1977년 선친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후계자로 낙점을 받은 이 회장은 1979년 삼성물산 부회장에 선임돼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애초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형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호암의 눈밖에 나면서 이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됐다.

1987년 11월 선친이 타계하면서 그룹 회장에 오른 이 회장은 5년 뒤인 1993년 6월 독일 푸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으로 임직원들에게 강도 높은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품질경영, 질경영, 디자인경영 등으로 대도약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그해 2월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임원들을 불러 미국의 베스트바이 전자 매장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로 진열된 삼성 제품들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삼성이라는 이름을 반환하자.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 어떻게 삼성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겠는가"라고 호통친 사례도 있다.

그는 임직원에게 1등과 2등은 천지차이라며 반드시 일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5년 수원 공장에서 2,000명의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150억원 어치의 불량 휴대전화와 무선전화기를 태우게 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중심에도 이건의 회장의 결단이 있었다. 특히 이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가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를 결정하면서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도록 설득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과감한 투자를 통해 삼성 반도체를 세계 1등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플래시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2001년 일본 도시바로부터 공동 투자 제의를 받았다. 투자 비용만도 2조원이 넘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플래시메모리 반도체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독자 투자를 결정했다. 그 결과 2004년 삼성은 점유율 60%를 기록하며 플래시메모리 세계 1위에 올랐다.

삼성은 반도체 외에도 스마트폰, TV, 가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6년 글로벌 TV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로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을 잡고 스마트폰 시장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 개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냈다. 실제로 이 회장이 경영을 맡은 27년 동안 삼성그룹의 매출은 40배, 시가총액은 300배 이상 커졌다.



이 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각종 수사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아야 했다. 특검팀에 의해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했다.

어려움을 겪었지만 2010년 경영에 복귀한 이 회장은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인텔, 모토로라, 노키아, 애플 등 세계 최고의 기업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른 삼성을 "아직 멀었다"고 다그쳤다.

유족으로는 부인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있다.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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