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사태 ‘미얀마’, ‘포스트 베트남’이 될 수 있는가? [유은길의 PICK 글로벌이슈]

입력 2021-03-09 06:01   수정 2021-03-0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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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숨은 보석이다. 동남아와 서남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데다 인구도 6천만명으로 내수시장 규모가 있다. 국토면적도 넓어 한반도의 3.3배나 되고, 천연가스 및 구리 등 자원도 풍부해 성장 잠재력이 큰 나라다. 그런데 국내에는 아직도 그 가치가 널리 인식되지는 않아 ‘숨은 보석’이라 표현했다. 우리에게는 그동안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펼친 ‘아웅산 수치’ 여사의 나라 정도로 각인돼 있다. 연배가 있는 분들은 과거 전두환 정권시절 버마 폭발 테러 사건의 나라로 기억하는 분들도 많다. 어쨌든 지난 2015년 아웅산 수치는 총선승리로 군부독재를 끝내고 민주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사실 한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본격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실제 많은 한국 기업인들은 2017년과 2018년 새로운 기회를 찾아 업종별로 미얀마 투자 시찰을 많이 갔다. 베트남에서 사업하는 한국 기업인들 역시 ‘베트남 이후는 미얀마’라는 판단 하에 주베트남한국상공인연합회(코참) 차원에서 베트남 주재 한국기업들의 미얀마 시찰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섬유·봉제업을 하는 일부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과 미얀마 2곳에서 공장을 같이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베트남에서 제조업을 하는 경우 향후 인건비 상승을 피해 미얀마로의 이전을 검토하는 기업인들도 꽤 있다. 이런 분위기로 우리 정부는 신남방정책 추진의 핵심 축으로 베트남 이후 미얀마를 염두에 둔 정책을 준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9월 미얀마 국빈 방문 후 경협산업단지 조성 등 무역·산업·에너지·투자 분야에 걸쳐 양국 간 포괄적 협력을 논의해왔다. 그 일환으로 정부는 LH를 앞세워 한-미얀마 경제협력산업단지를 지난해 12월 착공했다. 이 사업은 2024년까지 미얀마 양곤시 북측에 225만㎡ 규모의 산업단지를 설립하는 것으로, 한국 기업들의 대량 미얀마 진출을 대비한 것이었다. ‘미얀마’가 ‘포스트 베트남’이라는 인식은 이런 배경으로 우리에게 각인됐다. 그런데 최근 벌어진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및 유혈사태는 ‘미얀마’가 정말 ‘포스트 베트남’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에 큰 의구심을 주고 있다.

미얀마 유혈사태는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군경이 총격을 가하면서 시민 사상자가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인권사무소 등 국제사회는 시민을 향한 무력사용 중단을 촉구하며 강력 규탄하고 있지만 군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미국 등 서방세계는 이미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에 들어갔고 자국 교민 탈출을 위한 비상 항공편을 준비하는 등 외국인들의 미얀마 엑소더스가 시작됐다.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등 글로벌기업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이후 국내 기업이 미얀마에 설립한 법인 및 지사는 총 107개인데, 주로 의류봉제 중소기업들이 많다. 또한 KB·신한·하나·우리·NH은행 등 금융사들도 많이 진출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금융과 물류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업무를 진행할 수가 없다. 현지 진출 기업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우리 기업 및 투자자들은 미얀마와의 경제협력 지속 가능성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해야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당위적 가치판단이 아닌 철저히 경제적 관점으로만 작성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미얀마’가 ‘포스트 베트남’이 실제 될 수 있는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투자 관점에서 미얀마가 베트남의 장점을 갖고 있는지를 판단하면 된다.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을 최적의 투자처로 보는 장점은 대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정치적 안정 2 지속적인 경제성장 3 정부의 친기업(외국기업) 정책 4 상대적으로 우수한 노동력 5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 6 규모있는 내수시장(많은 인구) 7 지리 위치적 장점(풍부한 자원 및 물류 효율성) 8 많은 FTA체결을 통한 대외개방성(수출 거점 기지) 등으로 요약된다. 물론 베트남은 한국 입장에서는 역사 문화적 유사성도 있어 음식 및 거주 편의성, 감정적 편안함까지 있어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그래서 많은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문화·사회적으로 유사한 장점들은 한국에만 적용되고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어서 여기서는 배제하기로 한다.
위에 예시한 1~8번까지의 장점을 놓고 베트남과 비교하면, 미얀마는 현재 1번 ‘정치적 안정’이 문제가 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하지만 2번 3번도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번 쿠데타 발생 전의 미얀마는 2,3,4,5,6,7번 까지는 베트남과 유사한 장점을 갖고 있었다. 특히 5번의 저렴한 인건비는 섬유·봉제 등 제조업을 하는 기업들에는 큰 매력이다. 하지만 이번 쿠데타로 2,3번은 다른 상황으로 가고 있다. 8번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1번이다. 1번은 다른 모든 요소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치적 소요사태 속에서는 경제성장이 있을 수 없고 외자유치를 위한 어떤 정책도 펼칠 수가 없다. 인건비가 싸고 큰 내수시장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지리적 이점 및 풍부한 자원이 있어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다. 큰 나라들과의 자유무역협정은 논의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1번 정치적 안정’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 중요해서 결국 1번은 경제성장 및 투자협력의 대전제 조건이 되는 셈이다. 여기서 유념할 점은 ‘정치적 안정’이라는 것이 군부독재, 공산정권, 민주주의체제 등 어떤 특정 정치 유형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정치적 안정’은 특정 체제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당정권이지만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이 ‘정치적 안정’을 서방세계 어떤 국가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국 기업들이 중국 및 베트남에 투자를 하고 사업을 펼칠 수가 있다. 따라서 미얀마는 다시 민주주의체제를 복원하든 아니면 군부독재로 회귀하든 경제적 관점에서는 어느 한쪽이 권력을 확실히 잡아 안정을 꾀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가 권력을 잡느냐 보다는 누가 더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군부와 민주진영 간 갈등이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간 모습이다.

미얀마 상황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이번 쿠데타는 민주진영과 군부 간 오랜 갈등으로 벌어질 일이 벌어졌다는 반응이다.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쿠데타와 대규모 시위 형태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를 잘 아는 한국 입장에서 그리고 시대적 흐름을 볼 때 미얀마 사태는 민주주의 체제 복원으로 귀결되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사실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최영준 경희대 무역학과 교수(미얀마지역연구센터 센터장)는 “이번 싸움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 같다”면서 “이로 인해 한국 기업인들의 피해가 우려 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결국 이 싸움은 미얀마 시민사회 세력이 얼마나 결집하고 움직이느냐가 중요한데, 그러면 그럴수록 군부 역시 더욱 강경진압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쉽게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미국 등 서방세계 또는 중국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직접 개입할 명분도 약해 이번 미얀마 사태는 더 장기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설사 군부 또는 민주세력 어느 한 쪽이 권력을 잡아 소요사태가 진정된다 하더라도 정치적 불안정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미얀마는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포스트 베트남’이 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정치적 안정’이 담보되지 않는 곳에는 투자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거꾸로 외국인들이 탈출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투자철회’가 가깝고 ‘투자실행’은 요원한 일이 되고 있다. 최근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LH 및 우리 금융권들은 물론 섬유 봉제 등 많은 중소기업들은 노심초사하며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미 투자를 진행한 우리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버티면 이번 악재를 딛고 분명 좋은 기회가 올 것으로 본다. 다만 그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길어질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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