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엇, 방금 저 건강식품 홈쇼핑에서 파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의 건강정보 프로그램. 한때 건강 문제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사연자 이야기로 시작한다. 유명 연예인과 쇼 닥터들이 스튜디오에 나와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여러 우여곡절을 보여준 뒤 이야기는 사연자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되찾게 해준 결정적 ‘비결’ 공개로 이어진다.
비결은 사연자마다 각양각색이다. 이름도 생소한 어린(魚鱗)콜라겐부터 오메가3, 새싹보리, 타트체리 같은 식품들이 나온다. 쇼 닥터는 이런 식품에 들어있는 성분에 대해 의학적 효능을 설명한다. 그리고 관련 업체로부터 협찬을 받았다는 자막이 잠깐 스쳐지나간다.
같은 시각, 채널을 홈쇼핑으로 돌리면 쇼호스트가 방금 본 상품을 팔고 있다. 심지어 같은 상품을 파는 홈쇼핑 채널이 여럿일 때도 있다. 이른바 방송계 ‘뒷광고’로 불리는 지상파(종편) 채널과 홈쇼핑의 연계편성이다. 한동안 잡음이 많았던 유튜브 뒷광고는 지난해 금지됐지만 방송가에선 이런 유형의 편성이 여전히 성행 중이다.
● 연계편성 TV조선·MBN·MBC 순
방송통신위원회는 7일 지상파 5개 채널, 종편 4개 채널, TV홈쇼핑 7개 채널, 데이터홈쇼핑 10개 채널에 대해 2021년 3월 방송분 연계편성 현황을 점검한 결과를 발표했다.
방통위에 따르면 연계편성을 가장 많이 한 채널은 TV조선이다. 14개 프로그램에서 139회(본방 69회·재방 70회)방송했다. 이어 MBN이 8개 프로그램에서 108회(본방 62회·재방 46회), MBC가 3개 프로그램 총 80회(본방 53회·재방 27회) 방송했다. 그 다음은 채널A 5개 프로그램 총 70회, JTBC 8개 프로그램 64회, SBS 7개 프로그램 59회다. KBS1·2 및 EBS1은 홈쇼핑 상품판매와 연계된 프로그램은 없었다.
전체적으론 지상파 2개 채널·종편 4개 채널의 45개 건강정보프로그램에서 520회 방송한 내용이 홈쇼핑 17개 채널에서 총 756회 연계 편성됐다. 지난해보다 프로그램수와 연계횟수가 모두 늘어난 결과다. 특히 한 프로그램이 1개의 홈쇼핑 채널과 연계편성된 경우가 279회, 2개 이상(최대 7개) 채널과 중복 연계편성된 경우는 241회로 나타났다.
이 기간동안 연계편성이 가장 많이 이뤄진 상품은 유산균(215회)이었다. 이어 콜라겐 111회, 단백질 81회, 오메가3 54회, 시서스 42회, 루테인 28회 등의 순으로 편성이 이뤄졌다.
● “연계편성 협력업체가 주도…회사 명운 달려”
홈쇼핑 연계편성의 출발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JTBC에서 아사이베리의 효능에 대한 프로그램이 방송된 다음날 아사이베리를 판매하던 홈쇼핑이 큰 매출을 올리면서다. 이후 건강식품 업체들은 지상파나 종편에 협찬하고 홈쇼핑과 연계 판매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편성 시간대도 건강정보 프로그램과 비슷하거나 끝난 직후로 당겨졌다.
복수의 홈쇼핑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런 은밀한 연계편성을 주도하는 건 협력업체다. 홈쇼핑에서 상품을 팔려고 하는 업체들이 종편이나 지상파 방송에 협찬을 하고, 홈쇼핑에 광고비 등을 낸다. 회사 명운이 걸릴 정도로 중요한 상품은 더 적극적으로 접촉한다. 홈쇼핑에서 상품 정보를 얘기하는 것보다 언론사에서 얘기하는 것이 믿음 가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심지어 과거 연계편성 ‘브로커’가 활동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15년 방통위는 연계편성과 관련해 MBN에 과징금 2억4,000만 원을 처분했다. 방송광고 판매대행사와 MBN이 편성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현행 방송광고판매대행법은 `광고대행자가 방송사업자의 방송프로그램 기획, 제작, 편성 등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한 홈쇼핑 관계자는 “연계편성이 들어가는 것에 홈쇼핑 입장에서도 민감하고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협력업체에게 하라 마라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명운이 달려 있는 것일 수 있고, 자신들이 자율적으로 자기 돈으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한 번 방송에 수 천 만원의 송출수수료를 내는 홈쇼핑 입장에서 기왕이면 매출이 잘 나오는 길 바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연계편성과 홈쇼핑 매출 사이에 관계가 없지 않다. 평소보다 많게는 10% 정도 오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방통위 “협찬 고지 의무화 추진”
방송에서 상품 자체를 홍보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연계편성이 불법은 아니다. 편성은 방송법상 방송국 자율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품의 효능 등을 실제보다 과장되게 인식하게 하거나 시청자를 기망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제도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핵심은 협찬을 받았다고 시청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법 조항이다. 현행 방송법에선 이런 사실을 ‘고지 할 수 있다’고 정해 방송국 자율에 맞겨 놓은 상태다.
방통위는 향후 필수적 협찬고지를 의무화하는 방송법 개정안의 조속한 입법을 지원하고, 법 통과 시 협찬임을 알 수 있도록 협찬사실 고지의 노출 시점·시간·횟수 등을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다. 또 건강정보프로그램 제작 시 유의사항을 방송사 자체 제작 가이드라인에 반영하도록 재허가와 재승인 조건을 부과할지 검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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