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요소수에 '화들짝'...'공급망'의 역습

정원우 기자

입력 2021-11-12 17:45   수정 2021-11-1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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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7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공급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꺼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 최근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에 따라 우리 기업의 생산 차질이 우려되고, 전 세계 공급망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일본이 일방적인 수출 규제를 단행한 지 나흘만이었습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 과정에 필요한 포토레지스트(PR)와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의 일본 수입선이 끊겼습니다.

    지금 글로벌 경제를 관통하는 ‘공급망’ 문제의 서막이었습니다.

    글로벌 분업 체계(GVC), 가치사슬을 뜻하는 ‘공급망’은 코로나19로 각국이 국경을 닫으면서 곳곳에서 망가졌습니다. 그리고 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급망을 주도할 것인가, 세계 경제의 양대 축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격화되고 있습니다.

    지난(2021년) 5월, 미국 백악관에서, 바이든의 입으로, 우리 기업들의 이름이 불렸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2021.05.21. 공동기자회견) : 삼성, 현대, SK, LG, 땡큐! 땡큐! 땡큐!]

    삼성과 현대차, SK, LG. 4대 그룹은 우리돈 44조 원의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첨단산업의 뿌리인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한미 경제동맹이 굳건해졌다는 평가 일색이었습니다.

    미국은 전세계 반도체의 절반을 쓰고 있지만 주로 한국과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생산에 의존해왔습니다. 자국 내에 안정적인 첨단산업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미국의 계획은 우리에게도 기회인 점은 분명합니다.

    [문재인 대통령(6월 2일 4대그룹 대표 회동) :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이런 최첨단 기술, 최첨단 제품에서 서로 간에 부족한 공급망을 서로 보완하는 관계로까지…]

    하지만 미국은 이내 본얼굴을 드러냈습니다. 반도체 공급망 문제 해결을 이유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영업 기밀 제출을 요구해왔습니다. 탈중국에 동참하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합니다.

    [강인수 /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 중국회사 제품을 못 쓰게 하는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죠. 그래서 그런 것들이 우리한테도 이제 직간접적으로 압력으로 행사가 되고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교역을 할때도 탈 중국을 어느정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미국에 이어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중국입니다. 중국에 97% 의존해오던 요소수가 우리 물류를 멈춰서게 했습니다. 이 역시 미국과 중국간의 공급망 다툼에서 비롯됐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에 호주가 가입하면서 중국과 호주 사이에 석탄 거래가 중단됐고 불똥은 우리나라로 튀었습니다.

    ‘자업자득’이라는 비아냥도 나왔습니다. 중국과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우리 경제는 ‘공급망의 역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주원 /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 미국 중심의 공급망, 중국 중심의 공급망.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보호무역주의보다는 글로벌 경제라든가 통상, 무역 쪽에서 누가 패권을 잡느냐 그 영향이죠. 우리나라가 어느 한쪽에 서기는 상당히 어려워요.]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비롯된 공급망 불안이 실물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3분기 우리 경제성장률은 예상보다 낮은 0.3%에 그쳤습니다. 차량용 반도체 등 공급망 불안이 실제 성장률을 끌어내린 것입니다. 공급망 문제가 수치로 ‘현실’이 됐습니다.

    미국과 중국도 지난 3분기 성장률이 크게 둔화되며 경제 회복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IMF는 글로벌 공급망 차질 문제를 들어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낮췄습니다.

    공급망 차질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면서 각국의 통화정책 불확실성도 커졌습니다. 실물경제의 불안이 금융불안으로도 번지고 다시 실물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의 조짐도 보입니다.

    다음주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중국이 기후대응에서 깜짝 합의를 이뤘지만 패권 경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주원 /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 미국과 중국 간에는 자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그런 기술패권 경쟁이기 때문에 그렇게 남을 위해서 한발 물러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강하거나 약해질 순 있지만 기본적인 큰 흐름, 중장기적인 추세는 상당 기간 오래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헝가리는 반갑게 한국을 맞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국빈방문일 만큼 외교 사각지대였습니다.

    헝가리와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로 구성된 비세그라드 그룹은 미국이 원했던 우리 4대 그룹을 포함해 우리 기업들 650여개가 이미 진출해 있는 유럽 최대 생산기지입니다. 기업들은 빨랐고 정부는 너무 늦었습니다.

    EU 국가들 평균의 2배 성장 속도를 보이는 비세그라드 4개국과 전기차 배터리·인프라 등 미래 유망산업 분야 협력 약속이 이뤄졌습니다.

    늦은감이 없지 않지만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이후 유럽 국가들, 그리고 호주와 적극적으로 양자 외교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른바 ‘세일즈 외교’로 불린 정상회담마다 ‘공급망’ 논의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당장 벗어나긴 어렵다면, 답은 결국 ‘공급망 다변화’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10대 무역국에서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운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이 확대될 필요가 있습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 : (유럽 경제외교가) 적절하다고 평가해요. 지금 우리가 시장은 중국이 크지만 지금은 기술패권 전쟁이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 쪽에 우리의 어떤 통상외교의 시선이 가야 하는 건 분명히 맞고요.]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과 이를 되돌리려는 미국의 패권 경쟁, 그들 앞에서 우리 경제는 아슬아슬한 선택의 위험에 놓여있습니다. 지금은 두 거대 패권국들의 ‘공급망’ 다툼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개방경제국, 한국의 운명입니다.

    지금에 머물러 있다면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이 올 수도 있습니다.


    취재=정원우 기자 / 인터뷰=정호진 기자 (auva@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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