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家 사람들은 '신라면' 먹을까? [이지효의 아이 '돈' 노우]

이지효 기자

입력 2022-03-04 12:43   수정 2022-03-04 12:43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잡은 라면. 라면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있는 제품이 있죠. 바로 농심의 `신라면` 입니다. 신라면 이전의 라면은 순하고 구수한 제품 위주였지만 농심은 맵고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공략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매운맛의 대명사인 신라면이죠. 신라면은 나오자마자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 옛날 출시 석달 만에 30억원 어치를 팔아치웠을 정도니까요. 신라면은 지금까지도 라면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신라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롯데`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번 <아이 `돈` 노우>에서는 매운 맛의 기준이 된 신라면과 롯데와의 기가 막힌 사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 "라면 먹고 갈래요?"…`라면`의 탄생기

    우리는 라면을 얼마나 먹을까요? 세계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한국인 1명이 1년에 먹는 라면은 75개라고 합니다. 5일에 라면 1개씩은 먹고 있다는 말이죠. 2위를 기록한 베트남보다 20개 이상 많습니다.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 만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 만화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라면송은 모르는 사람이 없고요. 영화 `봄날은 간다`의 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로 호감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죠.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을 계기로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접목한 `짜파구리`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고요.

    라면의 원조는 삼양라면입니다. 삼양식품 창업자인 고(故) 전중윤 회장은 1960년대 초 남대문 시장에서 `꿀꿀이 죽`을 사먹기 위해 장사진을 친 사람들을 목격했죠. 워낙 먹을 것이 없었던 시절. 그는 미군이 버린 음식을 끓여 한끼를 때우는 모습을 보고 묘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게 바로 라면이죠. 처음 나왔을 때 가격은 단돈 10원. 누구나 사먹을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시 당시에는 호응이 적었다고 합니다. 꼬불꼬불하고 딱딱한 면발을 사람들이 옷감이나 실로 오해했기 때문이죠. 삼양식품은 직원에, 그 가족까지 동원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료 시식 행사를 벌일 정도로 홍보에 열을 쏟았습니다.

    ● 농심 `신라면`은 사실 롯데에서 나왔다

    `최초의 라면`이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그때 마침 구원의 손길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정부의 혼분식 장려운동이었는데요. 쉽게 말하면 쌀이 귀하고 비싸니까 이것저것 섞어 먹으라고 한 거죠. 이런 정책으로 정부가 라면 섭취를 권장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1966년 한해에 240만개 팔리던 라면은 1969년 1,500만개로 늘어났고, 몇 년 만에 매출액이 무려 300배에 이르는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우리나라의 총 수출액이 3,000만 달러였는데 이 가운데 9%에 해당하는 270만 달러가 삼양라면을 판 것이었다고 합니다. 삼양라면의 인기 속에 후속 라면들이 우후죽순 등장했지만 삼양라면의 아성에 곧 자취를 감추고 말았죠.

    삼양라면의 독무대였던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것은 농심이었습니다. 아니죠, 정확히 말하면 롯데공업입니다. 여기서부터 롯데 얘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농심 창업주인 고(故) 신춘호 회장의 형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롯데그룹의 창업주 고(故) 신격호 회장입니다. 롯데가의 신춘호 회장은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라면에 주목했는데요. 하지만 형인 신격호 회장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극구 반대했다고 합니다. 신춘호 회장은 가출(?)까지 감행하면서 롯데공업을 차려 라면 사업에 뛰어 들었다고 알려지는데 이때부터 형제간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결국 신격호 회장은 동생에게 `롯데`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롯데공업은 지금의 농심으로 사명을 바꾸게 되죠.

    ● `농심`은 어떻게 원조 `삼양`을 이겼나

    신라면은 1986년 태어났습니다. 신라면의 `신(辛)`을 맵다는 뜻으로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만 농심의 신춘호 회장 성에서 따온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들 정도로 애정이 남달랐던 거죠. `사나이 울리는 매운맛`이라는 농심하면 떠오르는 대표 문구도 직접 만들고 개발부터 광고까지 관여했습니다. 그렇다면 신라면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신라면의 인기 비결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맛을 구현했다는 점입니다. 신라면 출시 이전의 라면시장은 순하고 구수한 국물의 제품들이었거든요. 신춘호 농심 회장은 간부들을 불러 모아 그 자리에서 "한국 사람들이 매운맛을 좋아하는데 매운 라면이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하죠.

    농심은 맵고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식습관에 착안했습니다. 서민 음식인 `소고기 장국`을 모티브로 깊은 맛과 매운 맛이 조화를 이룬 라면을 개발하기가 이르는데요. 전국에서 재배되는 모든 품종의 고추를 사들여 매운맛 실험을 했다고 하고요. 국밥 등 국물 요리에 주로 넣어 먹는 다진 양념의 조리법을 적용해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 국물맛을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붉은 포장지에 `신(辛)`라고 크게 적힌 라면이 나왔습니다. 현재 라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그 신라면이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출시 3개월 만에 30억원 매출을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고요. 1991년에는 국내 시장에서 1위에 오르게 됩니다.

    ● 라면 종주국 일본 울린 우리 `매운맛`

    라면의 본고장 일본에는 무려 `신라면의 날`도 있습니다. 4월 10일인데요. 일본어로 숫자 4와 10의 소리를 합치면 `맵다`라는 뜻의 `핫`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죠. 이렇게 농심 `신라면`은 세계 각국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출시 때만 해도 `너무 매운 것 아니냐`는 평가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내는 물론 세계 라면 시장을 대표하는 제품으로 떠올랐죠. 신라면은 중국, 동남아시아, 유럽은 물론 태평양 폴리네시안 국가들부터 중동,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미 칠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신라면은 2021년 3분기 기준으로 해외 매출액이 국내를 넘어섰는데요. 같은 해에는 미국 뉴욕타임스가 세계 최고의 라면으로 신라면을 선정하기도 했죠.

    "롯데의 신격호 회장은 동생 신춘호 회장이 개척한 사업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등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습니다. 업계에서는 "롯데가 라면 사업에 뛰어들지 않는 것은 동생인 신춘호 회장에 대한 배려였다"고 말하는데요. 하지만 신춘호 회장이 사명을 농심으로 바꾼 후로는 형제 간 왕래가 끊겼고 가족 모임에도 서로 참석하지 않았다고 알려집니다. 형 신격호 회장과 동생 신춘호 회장은 끝내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고요. 신춘호 회장이 형인 신격호 회장이 세상을 떠날 당시에도 빈소를 찾지 않은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게 됐죠. 앙금이 말끔히 씻기지는 않은 롯데와 농심. 롯데가 사람들은 과연 `신라면`을 먹을 지도 궁금해지네요. 지금까지 <아이 `돈` 노우> 이지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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